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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하당(柳河堂)=칼럼니스트 |
| ⓒ 완주전주신문 |
전주시 완산구 모악산자락길에 위치한 ‘○○○ 가마솥 곰탕집’. 자동차나 찾아가지, 평생 전주 산 사람도 물어선 가기 어렵다. 쉽게 말하여 모악산이 가까운 원당동이다. 오전 10시 30분쯤 들어서면 120석 중 절반은 찼고 11시면 빈자리 거의 없다. 마을에서 냇둑 건너 방천 아래 옴팍한 이 집에 큰 손님이 모인다.
식객 왜 많을까? △소머리곰탕-설렁탕-양곰탕 한 그릇에 1만원(전엔 각각 6천원). △배추겉절이와 △무우깍두기 △볶은 왕소금 맛이 좋은데다 △‘귤 크기만큼의 삶은 국수’를 곁들여 준다. 뒤의 네 가지가 손님을 불러 모으는 걸로 보인다.
벽에 붙인 안내문(구호)을 보자. △‘육수·고기 분리 작업으로 정성 가득 깔끔한 맛이 그대로…’ △‘항상 친절하게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반찬 리필(refill:더 먹기)은 셀프(self:손수)입니다.’ △‘여러분께 소중한 한 끼를 정성스럽게 준비하겠습니다.’ 장작불로 밤새도록 끓여댄다.
나의 경우 감기에 입안이 마르고 입맛이 떨어져 수저 들기가 거북한데 아들 권유로 여기에 왔다. 뜨끈뜨끈한 국물을 마시니 속이 개운하다. 수저질이 아니라 마시고 마실수록 기침이 멈추고, 뿜어내는 숨결 고르지 못했는데 달라지기 시작한다.
국 한 그릇 제대로 먹고 나니 몸 가벼워져 기분 좋았고 입맛이 돌아와 병원 거쳐 지은 약보다 효험이 더 빠르며,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뒤따른다. 자주야 아니지만 이 집 다니기 수십 번이나 주인을 포함 종업원들 “우리 김치·곰탕국물 맛있지요?” 이런 질문 한번 없었던 것이 아쉬운 점이다.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용화동에 살던 1931년생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조세형(趙世衡)은 전주고등학교를 다닐 때 일요일 오후 집에서 자전거에 식량을 싣고 15km 전주까지 달려갔다.
이 힘 아버지 조영호 씨 덕택이다. 머슴을 둔 부농 아버지는 소뼈국물 떨어지지 않게 살림을 했다. 조 의원은 어릴 적 먹던 소머리곰탕 생각나면 종로구 청진동에 가 ‘곰탕’ 자주 먹었다. 짐승이나 사람 잘 먹어야 힘이 솟아 일 잘 한다.
곰탕은 한국인 체질에 맞는 음식이다. 의사나 젊은 요리사는 쇠기름 걱정을 하는데, 부엌 손길이 좌우한다. 기름기가 위로 떠 굳으면 살살 거둬내고 말갛게 끓이면 탈이 없다.
우리 민족은 국 문화가 발달하여 밥상에 국 빠질 수 없었고, 이리하여 제사상에 반드시 ‘갱(羹:국)’이 올랐다(羹자-불에 끓인 아름다운 양고기 상형문자).
곰탕 맛있게 먹으며 선거운동을 하라. 수많은 생각 거둬내는 데는 곰탕이 최고다. 주차장이 넓고 먹을 만한 음식 전주 명물집이다. “국물 좀 더 드릴까요?” 이런 인정까지 건네주면 위로받고 싶은 사람 더 많이 모일 것이다. 음식 장사 후덕해야 한다. 4·19세대 힘을 내라.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