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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하당(柳河堂)=칼럼니스트 |
| ⓒ 완주전주신문 |
지금은 녹음(錄音)이 수월하여 천만다행 입니다. 바람소리, 노래, 웃음, 재담, 새소리…신비하고 귀 있어 뇌에 전달되면 발끝까지 감동을 시키며, 이 감흥 오래토록 귀에 쟁쟁한 경우가 있다.
△뒷집 어린이 3형제 울음소리 각각 다르고 △대문 앞 지나가는 방울소리로 옥자네 소임을 알며 △가을 하늘 높이 나는 기러기 떼 울음소리 좀 처량하게 들린다.
△마을 들어서면 왁자지껄 짖어대는 개소리도 여러 가지이다.
△초저녁 앞집 다듬이소리에 까딱까딱하던 고개 짓 잊혀지지 않으며, 추수 후 이웃 동네 기계방아 밤새도록 통통거리는 소리, 시골의 진풍경이었다.
△일요일 밤 느지막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가 450장(내 평생소원 이것 뿐:꿈같은 헛된 세상 일 취할 것 무어냐, 이 수고 안만 하여도 헛된 것뿐 일세∼) 애잔한 풍금 소리에 발걸음이 멈춰진다.
△열 살 먹은 아이가 상여 뒤를 따르고, 동구 밖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는 늙은 시어머니 앞을 떠나는 상여 소리 ‘가네∼가네∼나는 가네∼옥분 엄마 구만리 장천 한을 안고 떠나가네.∼’ 뜨거운 눈물을 훔치게 한다.
△가을철 시골 운동회 오후 줄다리기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하늘을 찌르는 응원 소리에 구경꾼도 힘이 저절로 써지던 그 날이 그립구나.
△모내기철 가문 여름 저수지 수문 열어 앞내 보(洑) 흘러넘치는 물소리 듣기 좋았다.
△어머님은 라디오 방송 장소팔-고춘자 만담이나, 황금심 노래 유독 귀 기울이시었고 △나는 고복수·김정구·남인수 유행가 좋아 흥얼거려 봤으나 노래 부르는 자리는 늘 두려웠다.
△봄이면 종달새, 밤이면 두견새, 때때로 까치·까마귀·꾀꼬리 소리 흉내를 내봤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더라. △1990년 며느리 예수병원에서 분만 ‘손자’라는 소리 기뻤다.
△2023년 1월 제11회 변호사 시험 날 혼자 말로 ‘시험 잘 봐야 할 텐데…’하니 아내의 반응 ‘오늘 시험 안 친대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이었다. 까닭을 확인하기 전 충격 어이할 수 없어 홧김에 찬 막걸리 거듭 두 잔을 마신바 당장 병이 나 죽을 지경에 이르러 침대를 빼냈고 1년 넘게 병상 생활을 했는데, 그 이듬해(2024년) 4월 아들의 전화 ‘ㅇㅇ시험 합격이래요.’ 이 소리에 이불 걷어차고 일어나 ‘만세!’ 부르며 몸 살아나 숨 쉬고 말을 한다.
△‘소리↔귀↔뇌’의 연관반응이 이런 것이다. 옆집 순옥이 살아있으면 95살. 처녀시절 이름 한 번 직접 못 불러 봤고, 대답 일언반구 못 들었으나 울타리 너머로 들려오는 웃음소리 지금도 귀에 선하다. ‘남편 있을까. 자녀는 몇이고…예쁜 얼굴 그 웃음소리 여전한지.’ 괜한 망상에 사로잡혀본다. 그 집 앞에서 ‘함 사시오!’ 외쳐대던 소리도 역력하다.
초등학교 졸업반 담임선생님 “너 같은 사람 ‘중학교 안가면’ 누가 가냐!” 이 말씀 잊지 못한다. 살아갈 가치를 주는 분이 난세의 영웅이다.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