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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문 밖 너른 마당(542회-통합 947회) : 고산 읍내 기억나는 사람들

admin 기자 입력 2025.12.11 15:42 수정 2025.12.11 15:43

↑↑ 유하당(柳河堂)=칼럼니스트
ⓒ 완주전주신문
△오택선(라디오)·김이ㅇ(대장간)·박형ㅇ(자전거포)는 고산 3대 장인이었다. △박남열 부친 소달구지(구루마:くるま) 잘 만들었고 △고산중학교 정문 앞 옹기가마 유명했으나(ㅇ일용), 1970년대 문을 닫아 지금은 흔적조차 알 수 없다.

△장날이면 이영ㅇ·김한ㅇ 집에서 내놓은 내장과 고기로 비빔밥·국밥 만들어 장꾼 입맛을 사로잡았다. △술집은 군산옥·맨발집이 단연 앞섰고 △이정구 어머니 국수 맛과 양덕권 모친 절편 솜씨 알아줬다.

△목공소 장인은 김종옥과 서수일 아버지였으며, 김종옥·김진회 장로 존경받았고, 김종옥 장로 아버지는 작은 배를 지고 다니며 고기를 잡았는데, 젊은 허연 씨 물속에 들어가 작살로 찍어 여러 마리 쥐고 나왔다.

△포목점은 김진회·두정자(구일상회)가 으뜸이었으며 △쌀장사는 유삼봉·유유식·장순봉이었으나 유유식이 고산 노포로 꿋꿋하게 오늘도 건재하다. △김정자약방(김정자)·신일약방(김석탁)·유약방(유홍식)은 5개면 돈 죄다 훑어 모았다고 봐야한다. △박 한약방·유 한약방·보화당(박헌화)을 알아줬다.

△잡화점은 기다카와(北川)·유노식·영신당(유필열) 백화점 역할을 했으며 △곶감·대추 생산-판매-무역의 달인은 서성수·안흥순·정진태를 꼽았다. △염료(물감)장사는 조중철과 김상호였으며 조중철은 전북일보 보급소장를 오래했다.

△부자로는 고갑준·고만식·고영근·유호준·김진화가 으뜸이었고 △옥천여관(유일동)·만월여관(이대철 아버지)이 있었다. △조선시대 아전은 고씨·이씨·신씨가 많았다. △박오복 우체국 오래 다녔으며 △박건호-박권재-박종갑은 면장 집안이었다.

△고산주조장은 1주일에 술 여러 섬을 빚었으며 밀주 단속 할수록 사업이 잘된 이존형 씨 국회의원에 출마도 했다. △유삼봉·김 정미소(신우섭 남편) 밤에도 기계방아 돌아갔다.

△장날이면 송학이발관 주인 점심할 틈내기 어려웠고, 머리 감아주는 꼬마 쉴 새 없었다. 종리 번대 장병국 책방을 차렸으나 독서인이 적어 재미를 보지 못했다. △옥포 여인들 장날 아침 경천저수지 물고기 이고 나와 팔았다.

△큰돈 뭉치 오가는 소전마당 거간 거친 말씨로 소 주인 구슬려대거나 심한 자는 어른 수염 끌어당겨 매매 성사시키고 구전을 받았다. △근처 술집은 ‘소 잘 샀다’, ‘비싸다’ 왁자지껄 하루 종일 술판이었다.

△닭 전 옆은 장계에서 지고 온 돼지새끼가 꽥꽥∼우글우글 시끄러웠다. 양잿물 석유기름 사려고 주천면 대불리에서도 고산장에 들어섰다. △고무신 가게와 신 짓는 이 앞에는 손님이 줄을 섰다. 부르는 게 값이라는 고산장 발등 밟히기 보통이었으나 지금은 시장바닥이 썰렁하다.

GS·CU·마트·편의점마다 손님이 들어서도 종업원 인사가 부실하니 이리저리 장사 안되면 결국 망하지. 미국 트럼프 3,500억불 내라는 우격다짐이 걱정 될수록 업자끼리 사랑하자.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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