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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인물) 한냇물 행복 빨래방 최윤희씨

원제연 기자 입력 2021.03.12 10:00 수정 2021.03.12 10:00

역경과 고난 딛고 일상의 행복 찾아
“하루 하루 감사하며 살겠다” 밝혀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코로나19로 가게 문을 닫는 자영업자와 직장을 잃는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일 것이다.

지겹고, 귀찮아! 다른 일을 해볼까? 오래되고, 익숙해진 탓에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적어도 최윤희(53)씨 앞에서는 배부른 이야기일 뿐이다.

최씨는 삼례읍행정복지센터 뒤편 한냇물 행복 빨래방에서 일하고 있다.

이 빨래방을 잠깐 소개하자면 담요, 이불 등 대형 세탁물의 자가 처리가 어려운 노인·장애인·아동·경로당, 사회복지 시설의 세탁을 돕는다.

이장, 부녀회장, 요양보호사, 생활지원사,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 등이 세탁물을 수거해오면 깨끗이 빨아서 건조할 수 있는 대형 세탁기와 건조기를 갖추고 있다.

건조를 마친 담요와 이불은 주인에게 배달되는데, 취약계층을 위해서 운영하는 만큼 비용을 받지 않는다.

지난 해 10월 초 개소식 후, 한 달 뒤인 11월 2일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최 씨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냇물 행복빨래방을 혼자 관리하고 있다.

물론 군청으로부터 월급을 받고 있다. 비록 보통의 직장인들에 비해 보수는 적지만 “나는 누구 보다 부자이고, 행복한 사람”이라며 자신 있게 말하는 최윤희씨.

그렇게 말했던 이유가 있었다. 최씨는 20대 초반에 동갑내기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딸 둘을 낳고, 시부모를 모시고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가정에 대한 남편의 무관심으로 생활 형편은 점점 어려워졌다. 결국 10년 만에 이혼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남편이 남긴 빚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거의 맨몸으로 어린 딸 둘을 데리고 나와 삼례에 작은 아파트를 어렵게 얻었다.

두 딸과 갚아야 할 빚을 생각하니, 너무 막막했지만 마냥 슬퍼하고 원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인근 가구점에 들어갔다.

“생활정보신문을 보고 무작정 찾아갔어요. 월급 조금만 줘도 좋으니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30대 초반에 들어가 10년 가까이 일했다. 식당일도 해보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자녀들을 키우고, 빚도 조금씩 갚아갔다.

하지만 개인 생활 없이 오로지 직장과 집을 오가며 일에만 몰두하다보니 대인기피증이 생겼고, 불면증까지 얻게 됐다.

“집에 있는 문이란 문에는 암막커텐을 치고, 수면제 없이는 매일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친구들을 안 만나다보니 연락이 끊기고, 커피 없으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생활이 말이 아니었어요.”

어느 순간 수면제가 일곱 알까지 늘어나자, “이러다 죽을 수 있겠구나! 우리 아이들에게 몹쓸 짓 할 수 있겠구나!”라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 수면제를 줄였다.
↑↑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며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최윤희 씨가 한냇물 행복빨래방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
ⓒ 완주전주신문

40대 초반, 우연한 기회에 지인으로부터 종합검진권을 선물로 받아 서울의 한 병원에서 검사를 해보니, 수술을 서두르지 않으면 자칫 목숨을 잃을 정도로 몸 상태가 심각했다.

“다행히도 암은 아니었고, 바로 전 단계였어요. 그때 가지 않았으면 큰 일 날 뻔 했죠. 하늘이 두 아이와 행복하게 잘 살라고 기회를 준 것 같아요.”

수술은 했지만 다른 한쪽도 상태가 좋지 않고, 갑상선 치료도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일할 기운조차 없을 만큼 몸이 망가져 힘겨워 하고 있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해 10월 군청의 한 사회복지과 직원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왜 병원치료를 받지 않느냐”며 “전북대병원을 알아봐 줄 테니 치료를 받으라”고 권유했다.

그는 “병원비를 감당해 낼 수 없다. 그런 거 필요 없고 지금 일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이에 군청 직원은 삼례읍 맞춤형 복지팀을 통해 빨래방을 소개해 줬다.

일자리를 얻게 된 그는 날아갈 듯 기뻤다. 하루하루 눈 뜨고 일어나면 ‘감사’와 ‘행복’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군청 공무원과 삼례읍장님, 맞춤형복지팀 직원들 덕분에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생겼어요.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직장을 얻은 후 매일 한 시간 넘게 걷는 등 몸 관리에 신경을 쓰다보니 예전에 비해 건강도 좋아졌다. 집안 곳곳에 걸쳐 놓았던 무거운 커텐도 걷었다.

금쪽같은 두 딸도 어엿한 성인이 돼 서울에서 함께 일을 하고 있는 데, 특히 막내 희빈이는 내년에 일본에 갈 계획을 세워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단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 대신,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라고 이야기 해줬어요. 무엇보다 거짓말 하지 말고, 늘 인사를 잘하는 사람이 돼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어요.”

고등학교때부터 소녀가장이 돼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할 정도로 책임감과 생활력은 누구보다 강하다고 자부하는 최윤희씨.

주어진 일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는 끈기 있고 억척스러운 그의 삶의 자세가 고비 고비마다 힘든 순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빨래가 건조돼 나올 때가 기분이 좋아 꼭 껴안아요. 깨끗이 세탁한 이불, 담요를 가져가면서 행복도 함께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최씨는 세탁을 해도 사용하기 힘든 오래되고 낡은 이불, 담요를 새것으로 교환해 주거나, 김장을 돕는 등 사람들과의 소통을 늘리기 위해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고 있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일하라”라고 기자를 채찍질 해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고, 혼자 이겨내려고도 하지 말고 누군가에게 ‘잡아 달라’고 용기 내 도움을 청하면 반드시 도와줄 겁니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불평, 불만보다 감사와 고마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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