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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문 밖 너른 마당(320회-통합 725회) : 사진보고 울었네요

admin 기자 입력 2021.02.26 09:52 수정 2021.02.26 09:52

사진보고 울었네요

↑↑ 이승철 = 칼럼니스트
ⓒ 완주전주신문
‘왜 울었느냐’ 묻지 마세요. 졸업 사진 보며 울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졸업식은 있었고, 학교 어렵게 다닌 사람일수록 ‘졸업하면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서운해서 울었지요.

운동장에서 졸업식 마치고 졸업장 받아든 적은 있으나 학생 없는 졸업식은 신문 사진보고 알았습니다.

빈 교실에 달랑 ‘축 졸업’ 석자를 붙여놓았네요. 선생 님 혼자 서서 고개 숙이고 있네요. 혹 우는 게 아닌지요. 아마 저라도 울음 터져 나올 것 같습니다. 사진 속 선생님은 분명히 우실 것입니다. 졸업장을 들려 보낸 여러분 미안해요. 부끄럽습니다. 안타깝네요.

‘비·걸레·양초·노랑물감·헌책·빈병·쇠붙이·환경정리비용·졸업사진 값·풀씨·뗏장·꽃씨·퇴비 만들 잡풀·쥐꼬리·육성회비 가져오라’, ‘언제 가져 올레. 약속하라’, ‘부모님 모셔오라’ 성경에 나오는 세리보다도 더 못난 짓을 많이 했습니다. 고개들 체면이 아니네요.

졸업여행에 돈 없어 따라나서지 못한 학생 있었습니다. 공과금 못내 학교 졸업 못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교원노조도 없어 질문이나 학생 편에서 바른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했지요.

아이들 보기에 선생은 무서운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어렵게 공부했던 저였지만 어려운 학생 졸라대며 무섭게 굴었던 일을 생각하면 목 놓아 울고(목매고) 싶습니다.

“순희야! 영희야! 철수야! 만수야!…제발 나더러 ‘선생’이라 부르지 마라.” 이게 진심입니다. 졸업할 무렵이면 담임 모르게 졸업비 명목으로 돈을 걷었지요. 이 돈 못 낸 학생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런 사은품(?) 받은 시절을 회개합니다.

당시 학생이나 학부모 편을 들어 ‘학생 위하는 체’했더라면 이 목 남았을까요? 무능하고 무력하고 담력 없어 학생들을 옥죄었습니다. 변명 말라 해도 달게 받으렵니다.

상급학교 진학원서 내지 못하는 학생 앞에서 할 말 잃은 아픔이 있습니다. 소한 대한에 양말 신지 못하고 다니는 학생 적지 않았습니다. 죽어야 잊을 일이 많습니다.

금초하고 식당에 들어서니 인사하는 중년이 있었고, 계산대에 이르자 이미 받았다고 합니다. 학창시절 비과(과자류) 하나 못 사줬던 그 학생이 냈습니다. 그도 나이 70이상 이 글을 읽으며 허공을 바라볼 것입니다.

좋은 옷이 수거함에 들어가고, 큰 길에 자동차가 넘쳐나네요. 빈 교실 졸업식에 맘 아프네요. 저는 너무 앞서 태어난 게 부끄럽습니다.

만천하 학생들이여! 미안해요. 너무 변한 학교풍토와 교육환경이 더 이상 안쓰럽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제의 아픈 기억을 딛고, 오늘을 자신 있게 사는 분들에게 희망의 문이 열리소서.’ 휘어지고 굽어지고… 인생 길 여기까지 산 것 부끄럽습니다. ‘교무실 청소가 인권 침해라면서요?’ 허허허 허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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