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 봉동읍 은하리 추동마을(추동로 51-5)에 소재한 영농조합법인 푸드인 완주마더쿠키(대표 강정래).
‘마더쿠키 쌀빵’으로 유명한 회사다. 지난 2010년 7월에 첫 걸음을 내딛었으니 올해로 창립 8년째를 맞고 있다.
소외계층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과 함께하는 공동체라는 목적의식으로 오롯이 한 길만 걸어온 결과, 안전행정부로부터 전라북도 완주군 마을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값진 열매도 많이 맺었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우리쌀 건강한 빵’으로 요약되는 푸드인 완주마더쿠키의 지나온 8년, 그리고 앞으로 달려갈 미래의 모습에 대해 강정래 대표와 얘기를 나눴다.
■ 다문화, 빵과 인연 맺게 해
강정래 대표의 고향은 봉동읍 율소리. 결혼 후 평범한 주부로 살다 완주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다문화방문지도사로 활동하면서 빵과 인연을 맺게 된다.
“다문화방문지도사를 하면서 다문화 아이들에게 빵을 가르치는 시간이 있었는데, 완주농업기술센터에서 함께 배우다 보니 나름 재미있었어요.”
계속 배우다 보니 제법 실력도 늘었고, 가장 자신 있었던 카스테라 빵을 만들어 개인적으로 어르신들이나 다문화 가정에 나눠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9년 당시 완주군농업기술센터에 근무했던 황국진(공동체활력과)씨로 부터 장애우를 대상으로 하는 희망근로프로젝트 사업을 맡아 운영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사업 경험도 없고, 처음에 못한다고 했죠. 그런데 자꾸 사업이라는 부담 갖지 말고 봉사라 생각하고 해보라고 얘기해서 하는 수 없이 지도사를 접고, 결국 이 길을 걷게 됐어요.”
■ 영농조합 법인으로
배우는 실습생에서 사업가라는 명함을 갖고, 군의 창업보조금을 지원 받아 2010년 7월 본격적인 첫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제품 종류라고는 카스테라와 쌀쿠키가 전부.
강 대표의 월급은 고사하고, 직원 먹여 살리기 빠듯했다. 결국 쿠키만으로는 사업 대응을 못해 제빵을 알아보기로 했지만, 많은 시간이나 배우는 과정이 힘들다며 주위 사람들이 만류했다.
결국 영업, 마케팅 등 개인회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11년 8월 새롭게 이사진을 구성, 푸드인 완주마더쿠키 영농조합법인으로 출발했다.
제품 종류도 늘렸고, 홍보와 마케팅도 강화했다. “돈도 돈이지만 ‘마더가 있구나’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완주군의 행사라는 행사는 다 쫓아다녔어요.”
지금이야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당시 힘들어 눈물을 흘렸던 경험도 많았단다.
2011년 12월 겨울,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봉동주공아파트에서 생강차와 빵을 가지고 갔는데, 그날따라 춥고, 눈까지 펑펑 쏟아져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된 심정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 로컬푸드 만나다
제품 홍보 하느라 매일 발이 닳도록 뛰어다녔지만, 매출은 제자리 걸음. 그야말로 힘든 나날이 계속됐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황을 즐겼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듯, 2012년 4월 ‘마더쿠키’에 기회가 찾아왔다.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에 들어가는 행운을 얻게 된 것.
물론 행운은 그냥 얻어지지 않았다. 오픈 1년 전 용진농협 앞 길거리에서 홍보·판매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던 농협 한 임원이 와일드푸드축제 참여 때 강 대표를 만나 로컬푸드 직매장에 빵을 넣어 줄 것을 제안했다.
“정말 그 분에게 감사했죠. 그 분 아니었으면 오늘의 마더쿠키도 없었을 겁니다.”
어째든 용진농협 로컬푸드직매장에 쌀 빵을 내놓는 족족 불티나게 판매됐다. 지금이야 쌀빵이 많이 알려졌지만 당시에는 쌀빵이 흔치 않았던 이유도 판매에 영향을 줬다.
“저희 빵 자체가 쫄깃하고 맛있다보니 소비자의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나 빵 매출이 계속 올랐어요.”
당시 ‘빵 때문에 로컬푸드를 찾는다’고 할 정도로 마더쿠키의 인기는 상승했고, 덩달아 매출도 고공행진을 달렸다.
강 대표가 ‘그 때가 재밌었다’고 말하는 게 사뭇 이해가 간다.
■ 새 둥지 마련, 제2도약
강 대표의 열정과 완주군·용진농협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2013년 12월 1일, 완주군농업기센터 가공실에서 봉동읍 은하리로 새롭게 둥지를 마련하고 제2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앞서 그해 9월 안전행정부로부터 전국 최우수 마을기업으로 선정, 확보한 인센티브와 회사 자금을 보태 2015년 2층 체험장을 건축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라북도지사 표창, 2015~2016년 2년 연속 전라북도 마을기업고도화사업 지원기업 지정,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융복합산업 사업자 인증, 완주진로교육지원센터·전주교육지원청 진로직업체험 협약기관 지정 등으로 이어졌다.
이와함께 농식품가공사업 추진 공동협약, 건조식품 가공과 관련 사업 업무협약, 인재양성과 기술교육 연계 협약 등 도내 산학연과의 협약체결도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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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주마더쿠키 강정래 대표(맨 우측)와 직원들이 인터뷰를 마친 뒤 손하트를 그리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 완주전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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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마더쿠키의 성장에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준비한 강 대표의 안목도 한 몫했다. 예상이라도 했듯, 2011년부터 우리 지역 농산물과 쌀빵을 고집, 로컬푸드 컨셉과 맞아 떨어지면서 2012년 4월 용진로컬푸드직매장 파트너로 함께 참여할 수 있었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2015년 하반기부터 매출이 주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무렵 6차 산업 인증을 받아 체험장을 짓게 되고 자유학기제와 맞물리면서 초·중등학생의 체험이 늘어났다.
하락곡선을 긋던 로컬푸드 매출을 체험에서 메우게 된 것.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줬다.
■ 우리 어머니 권덕순 이사
강 대표는 마더쿠키를 ‘행복한 빵 굼터’라고 자칭한다. 직원 12명 모두 3~4년 이상 함께 근무했다. 가족이나 다름없다.
이 가운데 완주로 시집온 다문화여성이 4명. 그러니 강 대표는 때에 따라 회사 사장, 때로는 언니, 시어머니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빵을 만드는 데는 사장, 직원 따로 없다. 함께 만들고, 운전도 강 대표가 판매처에 직접 배달한다. 집안 일 때문에 직원이 부득이하게 나오지 못할 때는 사장이 대신 메워준다.
직원들 가운데 강 대표가 ‘어머니’라고 부르는 임원이 있다.
바로 권덕순(70)이사다. 회사 창립부터 지금까지 강 대표와 함께한 유일한 분이다.
앞서 말했듯 추운 겨울 주공아파트에서 손 부비며 빵을 팔고, 농업기술센터 가공실에서 빵을 굽던 당시 매일 새벽 6시에 숙직실을 두드리며 가장 먼저 공장문을 열었던 분이 권덕순 이사다.
강 대표는 사례 발표 때마다 빼놓지 않고 권이사를 소개하며, ‘내 평생의 은인이고, 나의 어머니’라고 자신 있게 말한단다.
“아마 권이사님 아니었으면 저는 벌써 사업을 포기했을 겁니다. 정말 숨은 공로자죠. 계속 제 옆에 계셨으면 좋겠어요.”
■ 강 대표의 고집
“철저히 우리 농산물을 이용하는 것이죠.”강 대표의 경영 원칙이다. 이익만 생각했다면 수입밀을 반반 섞었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3배 이상 가격 차이가 나더라도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고, 박리다매로 수익을 올리겠다는 생각은 사업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내 가족이 먹는 빵’이라는 생각을 갖고, 앞으로도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고 판매하겠다는 강 대표.
현재 제품 가짓수도 20여 품목으로 늘었지만, 서울에서 발품팔아 천연발효빵을 배운 것도 소비자의 건강 때문이다.
“천연발효빵은 설탕, 버터가 들어가지 않아 아무 맛이 나지 않지만, 당뇨, 성인병 환자들도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드는 일이 앞으로 우리가 해야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 길이 마더쿠키가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
■ 계획, 그리고 바람
이제 판로 고민은 없다. 용진, 효자, 혁신, 삼천, 둔산, 소양, 봉동, 상관, 평화동, 도청, 팔복동 등 판매처가 확보됐기 때문이다.
올해는 판매처를 늘리기보다 안정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강대표의 목표다. 즉 매출 보다는 직원 복지를 강화하는 등 내실을 기하기로 스스로 다짐했다.
또 하이트, 현대자동차, KCC를 비롯한 공단 기업이나, 단체, 학교 등의 체험도 늘릴 계획이다. 이와함께 사회복지시설 후원, 재능기부도 지금보다 더 늘려 회사의 마지막 목적사업인 ‘사회 환원’에도 관심을 기울일 방침이다.
완주의 대표 공동체로 자리매김한 영농조합법인 푸드인 완주마더쿠키. 인터뷰를 통해 무한 성장하는 마더의 미래가 그려졌다.
강정래 대표의 바람을 끝으로 행복한 데이트를 마친다.
“마더가 잘못되면 완주군에서 못살고 다른 곳으로 가야한다 고 말할 정도로 완주군의 도움이 오늘의 마더쿠키로 성장시켰습니다. 분에 넘치게 받은 사랑과 관심을 앞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되돌려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