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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문 밖 너른 마당(576회-통합 981회) : 1945년 여름에서∼1954년 여름까지

admin 기자 입력 2026.08.13 14:55 수정 2026.08.13 14:56

↑↑ 유하당(柳河堂)=칼럼니스트
ⓒ 완주전주신문
△1945년 8월 15일 해방, 1954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 이 10년간 죽고 다친 사람 많다.

△1945년 8월 15일 정오 지나 어머니와 함께 하지감자 손질을 하는 중 뒷집 조 감독 할머니 “고성리 댁! 평란됐디야”. 우리 어머니 “평란이 무언데요?”. 조 감독 “군대 끌려 만주로 간 우리 손자 대철 돌아 온디야”. 이러고 며칠 지나 여름방학 끝나 학교에 나가니 일인 교장(長久俊雄:나가히사 토시오)은 보이지 않고 부교장 카네무라(金村) 선생이 조선말로 연설을 하여 희한했다.

농한기라 마을 앞 밤나무 그늘 아래 여러 어른 모여 하는 얘기 호기심이 들어 가까이에서 들으면 ‘김일성’-‘장개석’-‘여운형’-‘김구’…가 이렇고 저렇고 신명이 났다. 곧 추석이 오자 나무그늘 아래서 소를 잡자 이웃마을 사람까지 모여 고기 불티 날아가듯 독이 났다.

고산읍내 기타카와(北川)·모리모도(森本) 집 박살이 난 뒤 무엇 주워갈 게 없나 여러 사람 들락거렸고, 고산 기준 두 달 쯤 지난 10월 야아아~! 바퀴 열 개 달린 제무시(GMC)에 탄 미군 대아저수지로 몰리는 날 꼬마였던 우린 4km를 달려가 그들 놀이 구경에 폭 빠졌었다.

그간 독립(獨立)이란 말 익숙해지며 ‘애국가(찬송가 곡)’를 부르고 『한글 첫걸음』을 익히는데 학생↔선생 실력 똑같았다. 징용 간 청년이 오고 귀환동포·만주에서 돌아온 사람 시끌벅적 할 때 38도선 어쩌구저쩌구 ‘죽을뻔했다’는 소리 보통이었으며, ‘이승만 박사’·‘대한독립촉성회’ 등 낯선 말에 해 뜨고 진 그 4년 동안 ‘미군정’ 이때 ‘공산주의’란 말 처음 들었다.

선거(5·10)→국회→헌법…숨 가쁘게 시간 달려 또 더운 여름철→남북전쟁(6·25) 속에 빠져들었고, 탱크-후퇴-한강교 폭파-부상-전사-징병-징용-학도군-따발총-피난-낙오-납치-탈출-포로-총살-참수-인민공화국-중공군-팔로군-학도병-미군기-폭격-UN군-원조-구호물자-의용군-빨치산-토벌-방화-자수-전투경찰-치안대-8사단-백마부대-습격-토벌작전-생포 등…전쟁용어 끔찍하나 점차 익숙해지면서 1954년 7월 27일 정전했다.

이 10년간 듣기 거북한 미망인-상이군경 딱한 소리 많았다. △남북군 민간 및 유엔군 중공군 전사자 250만∼300만 명(6·25전쟁 중 총 사망·피해자 집계 기준 따라 다르나-국군·유엔군 약 78만 명/ 북한군 약 80만/ 중공군 약 123만/ 총 약 281만 명에 달하며/ 민간인 피해 남북한 합쳐 약 249만 명 추산/ 남한 민간인 사망 24만4,663명과 피 학살 12만8,936명 등 포함. AI) 이란다.

아픈 이 10년간 그 어찌 잊을소냐. 물·불 무서워하듯 전쟁만은 꼭 피해야한다. ‘국기 바꿔 걸리는 꼴 보려나?’ 강남 집 가진 사람 사고 나면 물거품 된다. 미사일 잠을 깨우면 절대 아니 된다. 억울한 ㄱ죽음 아나?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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