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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나눔’이요? 형편 따라 하는 거죠”

원제연 기자 입력 2022.05.27 11:02 수정 2022.05.27 11:02

(특집 인터뷰 / 이형기 대정축산부산물 대표)
올해 국무총리상과 완주군민대상 잇달아 수상
20년 넘게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한 나눔 실천

구이면 평촌리 하척마을에 사는 이형기(61)씨.

대정축산부산물 대표로, 지난 6일 보건복지부가 주최한 ‘제50회 효행실천유공 정부포상’에서 영예의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이 대표는 또 완주군의 명예를 드높이고, 지역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군민에게 수여하는 ‘완주군민대상’에서 ‘나눔·봉사’분야 수상자로 선정되는 겹경사를 맞았다.

특히 지난 12일 완주군청 문예회관에서 열린 ‘제57회 완주군민의 날 기념식’에서 군민대상 수상자로 무대에 오른 이 대표는 다른 수상자들과 비교될 정도로 군청 사회복지과와 구이면 공무원, 지역주민 등으로부터 많은 축하 꽃다발 세례를 받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한때 극단적 선택을 할 만큼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아내 송순자(59)씨와 20년 넘게 손가락이 굽어질 정도로 억척스럽게 땀 흘려 돈을 벌었다. 하지만 통장은 늘 가난했다. 돈이 쌓이기도 전에 경로당 어르신, 독거노인, 저소득 아동·청소년 등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데 많이 썼기 때문이다.

5천 원짜리 백반을 사먹는 것은 아까워해도 몇 백만 원의 장학금은 과감히 낼 줄 아는 등 자신과 가족의 안위보다 이웃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며, 나눔을 지속적으로 실천해온 ‘진정한 나눔 부자’ 이형기 대표를 만나 인터뷰를 나눴다.
↑↑ 대정축산부산물 이형기 대표.
ⓒ 완주전주신문


▲수상소감을 말씀해주시죠.

= 큰 상을 두 개나 받게 돼 영광입니다. 제가 상을 받게 된 데에는 김동준 사회복지과장님과 구이면에 있다가 건축과로 발령 나신 이문희 계장님, 전진엽 면장님과 김영지 부면장님을 비롯한 구이면 총무과 직원, 그리고 정경화 팀장님과 심규리·김현정 주무관님 등 구이면 맞춤형 복지팀 이외에도 많은 분들이 고생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해 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도울 수 있는 구이면 어르신들이 계시기 때문에 이렇게 큰상을 받게 됐는데요. 이분들께 이 상을 바칩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맨 처음에 아내가 작게 시작하다가 2005년부터 사업자를 내고 저와 함께 본격적으로 하게 됐어요.

대정축산부산물은 순대국밥집 등에 돼지 부산물을 납품하는 회사라고 보면 됩니다.

자세히 말씀 드릴 수는 없지만 예전에 제가 몸이 아파서 8년 정도 집에서 쉬었어요.

너무 힘들어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데요. 주변사람들에게 죽었다고 소문이 나고, 별일이 많았어요.

그런데 하늘이 저에게 기회를 주셨는지 기적처럼 살아났어요. 깨어나서 아내에게 ‘나도 같이 하면 안되겠냐?’고 물었고, 아내도 ‘그렇게 하자’해서 지금까지 20년 넘게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 꿈은 무엇이었나요.

= 제가 5남매 중에서 장남인데, 저희 집이 잘 살았어요.

그런데, 제가 열두 살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형편이 힘들어졌고, 어머니께서 혼자 농사를 지어 자식들을 가르쳤어요.

그런 상황이었지만 보건대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하고 싶어 고모들에게 찾아가 도움을 요청 해본 적 도 있어요. 고모들은 도와주려 해지만 어머니께서 반대하셔서 결국 포기하고, 운수쪽으로 방향을 돌렸어요.

전북여객 차장도 해보고. 군대 다녀와서 용달차 운전을 하다가 8톤 냉동차를 구입해 우유, 아이스크림을 배달하기도 했어요.


▲어떻게 나눔활동을 하게 되셨는지요.

=지금 제가 나눔을 하게 된 것도 어쩌면 아버지를 보고 자란 영향도 있을 겁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자식들에게 물려준 게 바로 ‘나눔’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늘 이웃들에게 나눠 주시는 것을 좋아하셨어요.

예를 들면 우리 집 쌀이 떨어져도 이웃집에 쌀이 떨어지는 것은 절대 못 보셨어요. 이렇게 베푸는 삶을 사셨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라다보니 자연스럽게 저도 나누는 삶이 몸에 배고, 익숙해 지더라고요.

사실 저도 5천원 짜리 백반을 사먹는 게 아깝지만 어려운 사람에게 백만원을 주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지금 신고 있는 구두도 한 15년 정도 됐는데요. 장화나 운동화 외에는 신을 시간이 없어서 굽도 그대로에요.

옷도 제가 돈을 주고 사 입어 본적이 없어요. 거의 다 우리 딸과 며느리가 사서 보내 줍니다. 조금씩 바꾸려고 하는데 쉽지 않네요.
↑↑ ▲ 완주군민대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좌측)과 국무총리상 수상 후 기념촬영 모습.
ⓒ 완주전주신문


▲그간 많은 나눔활동을 하셨던데요.

= 2014년도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이전에는 아무도 모르게 이름을 밝히지 않고 힘든 사람들 전해주라고 50만원이 됐든, 100만원이 됐든 면사무소 직원에게 전달해줬어요.

그 뒤로 쌀로, 사과로 하다가 아이들 장학금을 주고 싶어 처음에는 100만원으로 시작해서 200만원, 300만원, 500만원으로 조금씩 금액을 늘렸어요.

관내 경로당에 사과박스, 과일즙, 떡도 수시로 챙겨 드리고, 저소득가정에 난방유와 생필품, 순대, 감귤 등… 지나고 나니 많이 했더라고요.


▲힘든 시기는 없었나요?

=왜 없겠어요? 구제역도 겪어보고,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경영이 어려워 직원도 그만두게 돼 지금은 둘이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거래처들도 장사가 안 되다 보니 수금이 어려워 은행에 빚도 얻게 되고요. 힘들지만 나눔 활동을 안 하게 되면 허전하더라고요.

어려울 때는 조금 줄이고, 형편이 나아지면 다시 올려서 하면 되는 거죠. 감사하게도 베풀다 보니 빚도 갚아지고,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많이 생기더라고요.


▲가족들에게 미안함도 있을텐데요.

=사업 시작하고 하루도 쉬지 않고 일만 하니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어요.

어느 날 이종형님이 저에게 “일요일 하루만 아내를 위해 배달을 쉬면 안되겠냐”면서 “그게 소원이다”고 부탁하더라고요.

그런데 거래처 상황 때문에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고 있어요.

아내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이 많죠. 남들에게는 많이 베풀면서 정작 우리 아이들에게는 제대로 돈도 못 줘 미안하죠. 고맙게도 우리 아들 일택이와 세임이가 잘 자라주고 사회에서 자기 역할을 잘 해서 감사할 따름이죠.
↑↑ ▲ 이형기 대표가 인터뷰를 마친 뒤 아내 송순자 씨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완주전주신문


▲상을 받으니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주민들과 그간 도움을 줬던 시설 등에서 꽃다발과 화분을 보내주시면서 많이 축하해 줬어요.

면사무소에서 현수막도 걸어주시고, 군민대상시상식 때 별도로 현수막을 제작해 사진도 찍고, 다른 수상자보다 꽃다발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받아 정말 눈물 나도록 행복했어요.

‘그래도 내가 세상을 잘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어요. 그런데 일부에서는 ‘군의원 나오려고 하냐?’, ‘조합장 나오려고 하냐?’, ‘장학금 주면 국무총리상 받냐?’ 등 저의 본심을 왜곡하는 말들도 흘러나와 가슴을 많이 다치기도 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지금까지 해온 대로 소신껏 봉사하며 살려고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요

=우리 아이들이 저에게 “아빠도, 아빠 인생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며“옷도 사 입고, 먹을 것도 사먹고, 엄마랑 여행도 가라”고 많이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조금씩 바꿔보려 합니다. ‘행복’은 ‘가족’이니까요. 앞으로 나눔은 꾸준히 하려고 해요. 힘들면 줄여서라도 하고 싶어요.

‘나눔’이란 게 별거 있나요? 형편 따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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