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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하당(柳河堂)=칼럼니스트 | |
| ⓒ 완주전주신문 |
논산에 있으니→‘논산훈련소’요, 육군 훈련하는 곳이므로→‘육군훈련소.’ 엎어뜨리나 메치나 그게 그것이듯이…훈련소임엔 틀림이 없다.
1960년대 훈련병 면회 기간이면 전국에서 이고지고 찾아들어 광장에 음식 보따리 펼쳐놓고 먹던, 논산훈련소·연무대(鍊武臺)는 별칭이다. 이리하여 새 지명 ‘연무읍’ 연유가 됐는데 원래 이름 ‘가치말(마산리)’이 차차 전국에 알려져 유명해졌다.
서기 1951년 11월 1일 창설 당시는 ‘제2훈련소’로 불렀다. 여기에 훈련소가 들어선 건 시국 혼란과도 관계가 깊다.
2023년 4월 26일 서울신학대학교 박명수 교수 연구 발표에 의하면 ▲6·25전쟁 초기 논산군(시) 성동면 병촌리를 비롯해 전군에서 1,200명 인명 피해가 있었는데 △성동면내서만 600명 △이 중 기독교인이 140명 △‘병촌교회 교인 66명’이 죽었다. 병촌리에 이성근(李盛根:1908)과 그 부인 문화유씨(1909)가 살았다.
△동생 이석근(石根:1915년생)이 36세(1951)에 죽고, 부인(함평이씨:1914년)은 1950년에 죽어 아들 병록(1934), 병호(1943), 병춘(1937), 병순(1939) 4남매 오갈 데가 없었다. 가까운 사람은 오직 큰어머님 문화유씨이다.
문화유씨 남편 성근 씨, 1950년(42) 날짜도 모르는 어느 날 난리 중에 객지에서 죽어 ‘조카 4인+자기 자녀 3남1녀’ 도합 어린아이 8인을 돌보지 않으면 거지되거나 죽게 돼있었다. 41세 문화유씨는 농사로 먹이고 입혀 한 이불 속에서 8남매를 키워 결혼시켰다.
이 고생 전쟁 때문이고 이 전쟁 사상 갈려 일어났고, 이념 달라 양측 앙갚음이 학살이었다.
유씨 1992년 83세에 돌아가셨다. 1950년 남편 객지에서 참혹하게 죽어 42년간 홀로 가슴 조이며 애들을 길러 성가(成家)시켰다.
한국에 26%가 작은 학교(초등)로 한 학년이 10명 정도란다. 교장·교감·교사·행정실 직원, 기능직이 있고 월급 또박또박 받으면서도 ‘힘 든다.’고 한다. 섬에는 한 반에 두 세 명이란다.
유 여사 장한 여인 아닌가. 미안하지만 지금 여인들이 들으면 ‘세상 왜 그렇게 살았느냐.’ 이럴 것이고 더러는 이 글 믿지 않을 수도 있다.
태평양전쟁과 6·25사변을 겪었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싸움…보도로 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만은 피해야 하며, 정당들 기 싸움 억지 멈추고 함께 잘 사는 길을 외쳐라.
손가락 까닥하면 전쟁 터지니 평화 빌어 딱한 이웃 없어야 하며, 계층 간 다투면 불행이 먼저 알고 좋은 자리 다 빼앗는다. 과거를 잃으면 미래가 없다.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