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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하당(柳河堂)=칼럼니스트 |
| ⓒ 완주전주신문 |
<오마이뉴스(2025. 8. 13)>에 실린 문운주 씨의 글 ‘전설의 핑매바위, 200톤짜리 어떻게 옮겼을까’가 있다. ‘고인돌’ 얘기이기에 마음이 쏠려 열어보니 관심을 끄는 말 ‘능성구씨 본관’ 이야기로 빠져든다.
“주잠은 1224년(고종 11) 송나라 한림학사일 때, 몽골 침입을 피하여 자신을 포함 8학사와 고려로 망명 능성에 은거하였다. 주잠이 능주(능성)에 숨어살면서 능성주씨로 관적을 한 것처럼, 사위 되는 구존유도 ‘본관을 능성구씨’라 한 것으로 보인다.”
고산 6개면에 능성구씨 많아 글을 요약해 보니 구씨들도 미처 생각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여겨진다.
능성(綾城)은 화순(和順) 땅으로, 고인돌이 많다(도곡면 효산리에서 춘양면 대신리까지, 보검재 계곡을 따라 596기가 밀집해 있다. 괴바위군 47기, 관청바위군 190기, 달바위군 40기, 핑매바위군 133기, 감태바위군 140기, 대신리 발굴지군 46기 등, 각각의 이름에는 저마다의 이야기와 전설이 깃들어있다.)
▲문·사·철(文學·歷史·哲學)은 서로 연결돼있다. 이런 연유로 전남 화순 고인돌은 ‘능성구씨’와 무관하지 않은 걸로 추정이 된다.
△‘具’자는 고인돌 모양이다. 고인돌에 묻힌 사람이나, 3000년 전 고인돌을 만들어 지켜온 씨족을 구씨(具氏)로 본다.
△사물을 세는 단위 사람은 ‘인(人)’이라 하는데, 시체 단위는 구‘(具)’라 한다. 고인돌은 사람이 묻힌 곳(것)이요, 여기 묻힌 사람이 ‘구씨(具氏)라면 셀 때 1具, 2具, 3具,…결국 시체 세는 단위로 고정화됐단 말이다. 고인돌이 혐오 시설이 아니라 아름답게 보여 지명에 좋은 글자로 ‘능성(綾城) 혹은 능주(綾州)’를 썼다고 본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15세기에서 기원전 300년을 전후한 시기로 보고 있다. 민무늬 토기가 사용되었고, 간석기가 더욱 발달하여 일상 도구로 활용됐으며, 농경이 본격화되고, 무덤이 정형화되어 무리를 형성하며, 청동기가 제작 사용되는 문화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화순지역에서는 많은 청동기시대 유적이 발견되며 범위 또한 넓다.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것으로는 ‘집 자리·고인돌·돌무지 널무덤’ 등이 있다.
△고인돌로 봐 능성구씨는 청동기 문화의 주인공이랄 수 있다.
△화순현은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시 왜군의 침입을 받아 참혹한 병화를 입어 민의로 폐현을 결정하고 능성현에 편입되었다가 1611년(광해군 3)에 복현 되었다.(생략) 1895년(고종 32) 개정으로 화순군이 됐다가 1908년 10월 15일 군면 통합에 따라 능주군이 되었고 화순이 편입되었다. 능주군은 1913년 화순군으로 바꾸고 1914년 동복군이 화순군으로 편입됐다.(이하생략)
△1632년(인조 10)에는 능성현이 인조 모후 인헌왕후(仁獻王后) 구씨 관향이라 하여 ‘능주(綾州)라 개칭 목(牧)으로 승격’하였다.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