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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문 밖 너른 마당(385회-통합 790회) : ‘풍남문(豊南門)’ 이정기(李廷麒) 글씨!

admin 기자 입력 2022.10.07 09:32 수정 2022.10.07 09:32

‘풍남문(豊南門)’ 이정기(李廷麒) 글씨!

↑↑ 이승철 = 칼럼니스트
ⓒ 완주전주신문
필자 서예가나 금석문연구자가 아니고 일개 서생(書生)입니다. 그러기에 남의 글을 비꼬거나 부정하지 않는 소박함이 있어 다행이지요.

전주 ‘풍남문’ 모르는 분 없습니다. 안쪽의 ‘호남제일성(湖南第一城)’은 서기순(徐箕淳) 글씨이나 바깥쪽 ‘풍남문(豊南門)’ 석자 쓴 이는 모른답니다. 그런데 책에서 그 필자(筆者)를 봤습니다. 대박입니다.

▲서기2000년 전주 충경사(忠景祠)에서 낸 『충경사지(忠景祠誌)상하권』 중 ▲상권 125면에 ▲‘이정기(李廷麒) 박학필원(博學筆苑) 전주풍남문서(全州豊南門書)’가 뚜렷합니다. ▲하권 104면의 『충경사지 편찬좌목』에 도유사 김환재, 부유사 홍두현-이산석-서준용, 교정 구연건-김종섭-안태석-최근무-김만곤-이하영 이렇습니다. 호남을 대표하는 유림 교수 학자들이지요.

▲모르거나 체면상 묵인할 석학들이 아닐진대 믿어야 합니다. 학문은 학자들의 영역으로 석학의 주장이라면 믿고 따르는 게 후학들의 도리입니다. 단군왕검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국조(國祖)로 믿지 않습니까?

ⓒ 완주전주신문
이 기회에 ‘풍남문 서자=이정기’ 확신합시다. 자신 있고 떳떳하게 소개합시다. 이정기는 임진왜란 때 전주성을 지켜낸 충경공 ‘이정란(李廷鸞)’ 4형제 중 둘째입니다. 전주유씨-전주이씨-전주최씨가 먼저 믿고 찬사를 보내야 합니다. 한자를 모르는 이나 붓글씨를 쓰지 못하는 분에게 확신을 줘야합니다.

풍패지관(豊沛之館)이나 어느 집안의 망모당(望慕堂) 글씨를 주지번(朱之蕃:1595년 장원 급제)이 썼다고 마냥 자랑을 하면서 ‘풍남문 이정기’ 글씨 이 말을 시큰둥 한다면 사대주의란 그말 그치지를 않습니다.

“전주 최명룡[崔命龍:1567(명종 22)∼1621(광해군 13)]이 처사 이정기(李廷麒) 선생의 학행을 듣고 찾아가 ‘스승으로 섬기기를 청하니’, 이공(李公)께서 그 뜻을 기특하게 여겨 가르쳤다. 그곳에 머문 지 얼마 안 돼 경전과 역사를 모두 통달했다. 이공은 언제나 공을 보면 기뻐 크게 웃으며 ‘내가 너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네가 나를 가르친다.’하였다.”[사계전서(沙溪全書 제6권)-김장생(1548-1631) 인용] 이렇습니다.

최명룡은 그림에 능통했답니다. 그림 잘 그렸다면 글씨도 잘 썼겠지요. 이정기 스승이 명필가로 서로 연이 맞습니다. 이로 보아 ‘풍남문’ 3자 이정기 글씨 확실하다고 봅니다.

이정기 선생의 다른 글씨만 있다면 서로 비교하여 확언하겠는데 이 점이 아쉽다고 합니다. 이정란은 이정기 장형이고 이정란 행장을 최명룡(전주)이, 신도비명 병서(竝書)는 이정구(좌의정), 묘지는 정염(광주목사), 묘표는 송시열(우의정)의 글입니다. 이쯤이면 공감해 주시겠지요?

서울 ‘光化門’ 임태영 글씨임을 근래 알아냈습니다. 문화의 달에 ‘400년 전 풍남문’ 필자가 이정기임을 알립니다.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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