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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특집 인터뷰) 화산면의 보배 강은아부녀회 총무

원제연 기자 입력 2022.07.01 09:30 수정 2022.07.01 09:30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 내게 좋은 사람이 오도록”

아주 귀중하며, 꼭 필요한 사람이나 자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보배’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화산면 운곡리 돈의마을에 사는 강은아(51)씨가 오늘 소개할 주인공이다. 박도희 면장을 비롯한 화산면 직원들과 부녀회원, 그리고 지역 주민들은 강 씨를 가리켜 ‘화산면의 보배’라고 부른다.

강씨는 지난 2009년 동갑내기 남편 김진만씨와 귀농했다. 돈의마을은 남편 고향. 서울에서 제일은행에 근무할 당시 인근 기업은행에 다니던 남편과 업무로 인연을 맺은 후 2년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딸 선민(23)양까지 얻었다.

은행에 다녔던 터라 부족함 없이 도시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남편 김 씨는 각박한 일상에 염증을 느끼며 귀농을 꿈꿨다.

강 씨는 자녀의 교육 등을 앞세워 남편을 설득했지만 결국 1년 만에 두 손 들고 귀농을 결정했다. 마흔 살의 나이에 귀농한 뒤 돈의마을 부녀회장과 화산면부녀연합회 총무를 10년 넘게 맡고 있다.

알다시피 ‘총무’라는 직책은 기관이나 단체에서 전체적인 사무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꺼린다.

하지만 젊은데다 은행에 근무한 경력이 있으니 꼼꼼한 일처리는 물론 타고난 친화력과 리더십까지 갖춰 임원진과 부녀회원들 간 소통과 화합을 잘 이끌어 내니 붙박이 총무가 됐다.

부녀회뿐 아니라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에다 주민자치위원회 총무, 기초생활거점 사무국장까지, 화산면 기관·단체에 거의 다 이름을 올렸다.

이름만 올린 게 아니라 일도 잘한다. 그러니 ‘화산면의 보배’라고 부를 만도 하다. 지칠 법도 한데 힘든 내색 없이 맡겨진 일을 모두 척척 소화해 내는 강 씨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지난 22일 화산면행정복지센터에서 만나 비결을 물어봤다.
ⓒ 완주전주신문


▲고향은 어딘지요

=서울에서 2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전남 강진이 본적이고요. 서울에서 살다가 퇴직하셔서 지금은 어머니랑 고향에 내려가 텃밭 일구며 살고 계세요.


▲은행에 근무했던데요.

=어릴 적 꿈은 변호사였는데 오빠가 축구선수를 하다 보니 집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줬죠. 그래서 그냥 저는 여상을 졸업해서 은행에 들어가 돈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선택을 잘 한 것 같아요. 제일은행에 10년 정도 다니다 그만 뒀어요. 이후에 아기를 낳고, 키우면서 학교도 데려다 주고, 여느 엄마처럼 생활했어요.


▲귀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요.

=남편이 기업은행에 근무했는데요. 본점에서 승진하고 나오면 좋을 텐데 본인은 정작 직장생활이 행복하지 않아 그만 두고, 고향에 내려가겠다는 겁니다.

남편은 “아이에 대한 욕심,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편안하게 살자”며 계속 저를 설득했어요. 1년 동안 옥신각신하다 결국 선민이가 6학년 때 귀농하게 됐죠.


▲처음 귀농하니 힘들지 않았나요.

= 시골에 오면 경로당에 가서 어르신들이랑 이야기도 하고, 함께 놀아주고, 적당히 농사짓고 살 줄 알았죠. 그런데 내려오자마자 시간적 여유 없이 땅 사서 집짓고, 축사 짓고,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는데...저의 환상이 깨졌어요. 거의 ‘묻지마 귀향’이었어요.

여기 와서 농사를 지으면서 초록색고추가 익어 빨간색고추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전에는 따로 따로 있는 줄 알았어요. 무지했죠. 마을 주민들과는 잘 지냈어요. 아무래도 고향에 오면 절반은 먹고 들어가잖아요.

처음 와서 스파게티 해드리고, 만두랑 간식도 함께 만들어 먹고, 어르신들이 잘해 줬어요. 젊은 사람들이 고향에 와 사니 어른들 보기에 얼마나 좋았겠어요.

사실 저희가 사업에 실패하거나, 먹고 살기 힘들어서 내려왔으면 돈 버는데 집중 했을 텐데요. 저희는 그런 게 아니라서 마을어르신들도 챙기면서 시골 생활을 조금 여유 있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남편은 항상 제게 “나눠라. 나누는 게 좋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했어요.


▲부녀회 활동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남편이 이장을 맡고 있었는데요. 남편은 “한집안에서 이장과 부녀회장을 모두 맡으면 안된다”고 말했지만 그때 당시 부녀회장이 그만 두셔서 저에게 꼭 맡아 달라고 신신당부하는 겁니다.

그래도 남편은 “부녀회장은 절대 안된다”며 만류했어요. 그러자 마을 분들이 남편에게“이장 안할 거면 이사를 가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한 거죠. 그렇게 해서 부녀회장을 맡게 됐어요.


▲부녀회 총무로서 보람도 느꼈을텐데요.

=보람된 일은 ‘부녀회 조직의 시스템화’죠. 아무래도 농사일도 많고, 회장님들께서 연세가 있다 보니 체계적으로 부녀회를 운영하기 힘들죠.

사실 부녀회가 친목단체가 아니라 봉사를 기본으로 하잖아요. 부녀회 사업을 하다보면 물건을 팔고, 때로는 협찬도 받아서 어르신들을 위한 나눔 행사를 하는데 쓰고, 봉사활동에도 참여하려면 연락도 수시로 주고받아야 하는 등 총무 일이 많아요.

지금은 어느 정도 시스템이 돼있어 조금 수월합니다. 그래서 힘이 들긴 하지만 막상 일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고 뿌듯합니다. 나누며 살다보니 행복은 덤으로 얻는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지요.

=어르신을 초청해서 삼계탕 나눔행사를 매년 해왔는데요. 코로나 때문에 초청이 어려워 삼계탕 레토르트(간편식)와 계란, 라면, 생필품을 함께 포장해서 화산면 43개 마을 75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각 마을 부녀회장님들을 통해서 배달해 드렸어요.

이전에는 몸이 불편해서 직접 오시지 못해 삼계탕을 못 드시는 분이 많았고, 남겨도 포장해서 집으로 가지고 가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며 그냥 집에 돌아가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직접 배달해 드리니 한 마리를 다 못 드셔도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드시고 싶을 때 꺼내 먹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어르신이 계셨는데 “정말 고맙다. 일주일을 먹었다”며 편지를 써 보냈고, 금일봉도 함께 넣어주셨어요. 올해는 축협에서 후원을 받아 1인당 두팩 씩 사골곰탕을 드렸는데, 한 팩만 갖고도 2~3일을 드실 수 있을 겁니다.


▲완주체험누리협동조합의 대표를 맡고 계시던데요.

=협동조합에서는 농어촌체험지도, 전통놀이 지도, 농촌관광 팸투어 등의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마을통에서 체험지도사 교육을 받고, 마실길 행사, 버스투어 등 완주군 행사를 우리 체험지도사들과 참여하고 진행했어요.

문제는 우리가 행사 때마다 부스를 운영해도 임의단체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완주체험누리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돈을 많이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우리 체험지도사들의 이름과 수고하는 부분들을 알리기 위해서였어요.

현재 협동조합은 12명의 체험지도사들로 구성돼 있는데 주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나 경천애인권역 농촌사랑학교 등 문화관광시설에서 전통놀이를 가르치고 있어요.

학교수업에서 전통놀이를 인문학과 연계하는데요. 예를 들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독립운동과 관련한 거고, 딱지놀이는 일제강점기와 연결하는 겁니다.

단순한 놀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죠.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을 만나고, 돈의마을 뿐 아니라 화산주민들도 만나게 돼 외롭지 않고 즐거웠습니다.


▲기초생활거점 사무국장으로도 활동하던데요.

=기초생활거점 육성사업은 새로 짓는 화산면행정복지센터와 연계한 것으로, 교육과 문화, 복지 등 중심 기능을 강화하는 사업인데요. 주민의견을 듣고 공모에 참여했어요.

부족하지만 사무국장을 맡았는데, 앞으로 청사가 들어서면 부녀회가 운영주체가 돼 빨래방 사업을 하고, 다쉼 카페도 운영할 예정입니다. 모두 공익사업이죠. 이를 위해서 먼저 ‘스마일 화산’이라는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는데요.

그동안 1년에 한차례씩 저소득 독거 어르신을 위해 빨래방사업을 해왔는데 중단할 수가 없어 청사가 건립되기 전에 현 센터 옆 건물 창고를 리모델링해서 빨래방을 8월부터 운영합니다.

면장님께서 사회공헌사업으로 가져와 부녀회에 맡겨 주셨어요. 청사가 건립되면 다쉼 카페 수익금을 빨래방 운영에 활용하고, 남으면 지역 아이들을 위해 장학사업 등에 쓸 계획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요.

=직접 농사지어보니 먹거리의 중요성도 알게 됐어요. 또 서울에서는 우리 아이 교육만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앞으로 나누고 봉사하면서 지역주민들과 어우러져 행복하고 건강하게, 편안하게 늙어갔으면 좋겠어요.

2년 뒤에 기초생활 거점이 될 ‘화려강산센터’가 들어서면 문화, 체험 등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공간으로 쓰일텐데요.

특히 야외무대에 놀이마당을 만들어 아이들이 무대에 오르면 박수도 쳐주고 주민들이 함께 모여 밤하늘을 보면서 옥수수, 감자 먹는 상상을 하니 정말 행복합니다. 꼭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무엇보다 내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하고,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 내게 좋은 사람이 오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늘 곁에서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남편과 딸, 그리고 사업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박도희 면장님을 비롯한 공무원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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