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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 수필) 시월, 기다림의 시작

admin 기자 입력 2021.10.08 09:15 수정 2021.10.08 09:15

시월, 기다림의 시작

↑↑ 이영화 작가
ⓒ 완주전주신문
인디언 부족 중 클라마트족의 달력에 의하면 8월은 엄지손가락 달이자, 산딸기 말리는 달이고, 9월은 검지손가락 달이자, 춤추는 달이라고 한다.

8월까지는 봄과 여름의 마무리를 잘하고, 습한 마음도 쨍한 햇볕에 날려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9월부터는 지난 한 해를 잘 마름질하고, 수고한 자신과 가족 등을 위해 춤도 추고 기뻐할 줄 아는 마음을 갖는 것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라는 뜻이리라.

10월을 맞이하며 인디언 부족의 달력을 들추다 카이오와족의 혜안을 만났다. ‘10월은-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 말하는 달’, 19세기 말, 조상 대대로 살던 텍사스에서 쫓겨나 오클라호마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당한 카이오와 족이 일구던 땅을 두고 떠나야 했던 마음이 10월과 같았을까?

1년을 하루라 치면 10월은 딱 아름답게 저무는 시간이다. 일생을 하루라 치면 차오르기만 하여 서글펐던 우리네 나이도 급히 뜨는 해와 달리, 서서히 번져가는 석양만큼 아름답게 물드는 딱 10월 같은 때이다.

기다림의 다른 이름을 그리움이라 치면, 이 애틋함은 일상을 사느라 놓쳐버린 것들에 대한 회한일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떠나고 있지 못하는 여름의 작별 인사 일 수도, 어느 순간 계절과 함께 후둑 떨어질, 꼭지가 따인 열매들의 움푹 팬 자리만큼 아플 기다림과 그리움들...

살면서 마음은 기다려 주길 원하나 말로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기다려 달라는 마음은 ‘노력하겠다’, ‘진실하겠다’는 뜻이요. ‘늦더라고 꼭 돌아오겠다’는 의미를 안고 있을 것이다. 노력은 함께이고 싶을 때 생기는 힘이요, 진실은 자신이 행한 것의 결과를 바로 보고자 하는 것이기에 겸허하다.

그리고 꼭 돌아오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자신이 속한 곳에 대한 숭고한 사랑이 없이는 가질 수 없는 다짐이겠다. 더군다나 마음을 가지는 것은 나 하나만의 문제이지만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발화(發話)되는 순간, 그 기다림은 단순히 애틋한 정서가 아닌 나와 다른 존재와의 약속이 된다.

그런데도 기다리라, 말 하는 것, 누가 뭐래도 그 자리에서 그리워하는 것. 결실에 정직해야 하고 겸손해져야 하고... 한 해를 보낼 준비를 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눈인사라도 해야 할 존재들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 이렇게 가을은 점점 짧아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는 시절에 주춤하던 마음도 가을을 잘 건너고 나면 하얗게 채워질 순백의 시간이 있을 것을 알기에, 다시 뛰기 전 머뭇거리는 마음을 헐렁해진 운동화 끈을 단단히 여미는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또, 기다리자고 10월이 말을 건네 오고 있다.


■소요 이영화(48) 시인은 완주군 용진읍에 살고 있으며, 현재 문학고을 자문위원 및 이사, 신문예 자문위원, 아태문인협회 윤리위원, 한국신문혜문회 상임이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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