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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 칼럼니스트 |
ⓒ 완주전주신문 |
삼례 장은 3·8일, 고산 장은 4·9일. 생선 가게 얘기입니다. 삼례는 전북에서 부자 많은 면이지요. 그러니 생선 장수는 생선 잘못 가지고 가면 볼기를 맞으니 좋은 걸 지고 옵니다.
삼례 분 초장에 사면 싱싱하나 오후에는 좀 달라집니다. 팔고 남은 건 그 이튿날 고산 장에 옵니다. 살림 형편이 삼례 분들과 달라 별 말이 없지요. 어제 낮 밤을 새운 걸 좌판에 놓고 햇볕이 드니 푹푹 썩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운주-화산-비봉-동상면민은 부지런히 걸어와야 정오. 생선가게에 들어서면 코를 찌릅니다. 이거라도 사야 비린 맛을 봅니다. 사들고(지게에 매어) 걸어 집에 가면 그 상태 짐작이 오지요.
저는 먹어 봤습니다. 울타리 밖 거니는 사람마다 이 집 뭘 끓이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이라면 개도 이런 걸 먹이지 않습니다. 처절한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썩은 생선이야 먹고 살았지만 고산면을 중심으로 잘 뭉쳤지요. ▲제헌국회의원 유준상(비봉:6,683표), 2대 박양재(고산:3,672), ▲3∼4대 이존화(비봉:9,270/15,636) 이 세 사람 국회의원을 냈습니다.
고산향교가 있지요. 어른들이 모여 △성씨 집안 △인물 어쩌구 저쩌구 하면 표가 쏠려 국회의원에 쉬 당선됐습니다. 대대손손 고산읍내 한 장을 보고, 윗동네 아랫동네 혼인을 하면 사돈에 8촌까지 쭉 꿰어집니다. 동행하며 아니 나오는 말 없으니 들은 대로 행동 팍팍 찍어 국회의원을 시켰습니다.
삼례 여러분! 여러분은 좀 달랐습니다. 기차(통학차)가 다니니 솜리(이리-지금 익산)나 전주 통학이 됩니다. 재산도 있습니다. 지식수준이 동산촌과 함께 최고였지요. 제2대 국회의원선거(1950. 5. 20). 입후보자 23인 중 삼례에서 열 분이 출마했습니다. 결국 고산읍내 37살 박양재가 당선됐지요.
한 예를 들어볼까요. 해방 후 첫 서울시장을 한 김형민을 떨어뜨렸습니다. 아버지는 한약방을 했고, 본인은 신흥학교를 나왔으며 미국 유학을 했습니다. 돌아와 개성고보에서 교편을 잡았을 때 항일교육을 하다 감옥에 갔지요. 영어를 우리말보다 더 잘했고 우리말이 서툴러 호가 눌정(訥丁/말 더듬는다는 뜻)이었습니다. 남상훈 장로도 도전을 했다가 실패했습니다.
개인의 능력이나 운도 있어야 하지만 지역성이 중요합니다. 정치뿐만 아니라 뭉치는 세력한테는 당할 재간이 없습니다. ‘万+戈 +工 +力’를 합치면 ‘성공(成功)’입니다. ‘만 개의 창끝에서 나올 이길 힘을 만들어야(길러야)한다’는 뜻입니다.
뭉쳐야 이깁니다. 힘을 합해야 이룹니다. ‘선거’는 골라 내세우는 것이지, 표 달라고 주는 게 아닙니다. 많은 선거가 코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고산 장 생선선거를 기억 하세요.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 ‘대문 밖 너른마당’이 이승철 칼럼니스트의 개인사정으로 인해 연재를 잠정적으로 중단합니다. 애독자 여러분의 많은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