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목적지에 닿아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기부여 전문가이자 ‘행복을 그리는 철학자’로 불리는 베스트셀러 작가 앤드류 매튜스(Andrew Matthews)가 남긴 명언이다.
운주면 금당리에 사는 박용민(51)씨. 아들 용준(13. 운주초)군과 수없이 많은 여행을 다녔다.
특히 아들과 손수레를 끌고 섬진강을 여행하는 이야기는 특별한 감동과 함께 이 시대 부모들에게 ‘진정한 자녀교육이 무엇인지?’묵직한 질문도 던진다.
■ 회사생활 정리… 운주로 귀농
지난 2010년도에 운주로 이사왔다. 올해로 귀농 12년째다. 원래 경천면 용복리 석장마을이 고향이지만 운주에서 중학교를 다니다보니 친구들이 많아 어렵지 않게 귀농지로 정했다.
귀농 전 박 씨는 15년 동안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 다녔다. 직장생활 당시 여러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면서 언론에 많이 소개됐다.
실제 공장직원 10여명과 ‘연탄길’이라는 봉사단체를 만들어 연탄나눔, 노숙자 무료급식, 독거노인 유류지원, 장애·보육시설 지원, 장학사업 등 다양한 나눔·봉사활동을 벌였다.
“저는 3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는데, 어렸을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주위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자랐어요. 그러다보니 나중에 커서 나도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고, 직장생활에서 많은 활동을 한 것 같아요.”
연탄길 대표를 맡았던 박 씨는 이후 평택시민신문 대표, 평택시사회복지협의회장과 함께 평택연탄나눔은행을 창립, 어려운 이웃들에게 무료로 연탄을 지원하는 등 나눔 및 기부 문화 확산에 기여했다.
하지만 회사가 2009년 법정관리를 신청, 대규모 정리해고가 있었을 당시, 해고 대상자에서 제외됐지만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끼면서 과감히 회사를 정리하고, 1년 뒤 귀농했다.
고향 완주로 내려와 그동안 모은 돈으로 집을 짓고, 곶감농사를 시작했다. 사실 결혼하고 2개월 만에 남편이 사표를 내고, 그것도 모자라 시골로 내려가 농사짓겠다는 데 쉽게 동의할 아내는 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 이현주(43·완주군귀농귀촌지원센터 근무)씨는 지금까지 그의 선택을 신뢰하고 지지한다. 박 씨가 귀농을 쉽게 결정했었던 이유다.
■ 산을 사랑하는 남자
박 씨는 산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20대 때부터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회사 생활할 때에도 산악회 등반대장을 맡아 국내 웬만한 산들은 거의 등반했단다.
완주로 내려온 뒤에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대둔산을 오르는 게 일상이자, 취미가 됐다.
“어제 밤에도 대둔산에서 잠자고, 아침에 내려왔어요. 산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텐트는 필요 없다. 비닐 하나만 준비하고 산에 오르면 된다. 물론 폭우로 인해 고립되고, 탈진돼 쓰러지는 등 위험에 처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여전히 산보다 좋은 친구를 만나 본적은 없다. 이쯤 되면 아내도 질투할 만한 ‘산 사랑꾼’이다.
그의 지독한 산사랑은 산내들희망캠프협동조합(이사장 이기열)에서 조금씩 꽃을 피우고 있다.
현재 그가 이사를 맡고 있는 산내들희망캠프협동조합은 완주의 전문산악인들로 구성된 공동체로, 청소년 등산교육과 네팔학교 자원봉사, 등산학교, 등산시설 정비사업, 산악단체 협력사업 등을 하고 있다.
■ 불편하지만 행복한 여행
기자가 박 씨를 꼭 만나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다. 바로 ‘손수레를 끌고 여행하는 부자’로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자가용, 기차가 아닌 굳이 ‘손수레’라는 이동수단으로 ‘불편한 여행’을 선택했는지 궁금했다.
“영준이와 걸음을 맞추면서, 천천히 여행하기 위해서 손수레를 택했어요. 어릴 적 아버지가 태워준 기억도 나고 해서요.”
박 씨는 영준 군이 2살 때 귀농했다. 이후 4살 때부터 아들과 함께 여행을 시작했다. 처음 데리고 간 곳은 부안 위도. 첫 여행에서 ‘아들을 데리고 가면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걱정보다는 여행을 하면서 즐거웠어요. 아이를 통해 삶의 동기를 찾아서 보람있었고요.”
지난 1일에도 섬진강에서 출발해 전남 광양까지 무려 6일 동안 아들과 함께 손수레를 끌고 여행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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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주전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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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제목은 ‘박 패밀리의 손수레 여행’으로, 딸 은별(11)양도 합류했다. 거리만 해도 150km가 넘는다.
임실과 순창, 남원, 곡성, 구례, 광양 등 6개 지역의 섬진강을 따라 하루에 30km씩 걷는 셈이다.
낮에는 걷다가 밤에는 텐트를 치고 자다, 다시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또 걷기를 6일 동안 반복했다.
보통의 영준 군과 같은 또래 아이라면 ‘집에 가고 싶다’며 울고불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영준 군에게는 손수레 여행이 익숙했던 터라 오히려 콧노래 부르며 즐겁게 다녀왔다고.
■ 히말라야, 아들을 성장시켰다
영준 군이 4학년이던 지난 2019년 2월, 한 달간의 일정으로 네팔 히말라야로 트래킹을 떠났다.
최연소로 히말라야를 도보로 다녀와 ‘완주 기네스북’에도 이름을 올렸다. 첫 코스인 안나푸르나(4,130m)를 3,230m까지, 그리고 랑탕(4,320m)을 4,200m까지 등반했다.
그동안 손수레 여행을 통해 얻은 자신감이 등반에 큰 힘을 줬던 것. 또 히말라야 여행 당시 네팔지진으로 학교가 무너져 다시 복원하던 날도 영준이는 아빠와 함께 현장에 있었다.
“영준이가 히말라야여행 이후 창의력과 표현력, 문제해결능력이 많이 향상됐어요.”
이처럼 많은 여행 때문일까? 영준 군은 학원 근처에 가지 않았는데도 그림과 음악에 남다른 소질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본 뒤 개인 블로그에 감상문을 빼놓지 않고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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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주전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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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잘 그리지만 제목을 붙이는 걸 보면 깜짝 놀라고, 음악도 한 번 들은 곡은 반드시 피아노로 마스터합니다.”
박 씨는 아들 영준 군이 1학년 때 섬진강을 다녀온 뒤 여느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한 지인이 영준 군에게 “섬진강 어땠니?”라고 묻자, “눈으로 본 건 처음에는 큰 돌이었는데 바다로 가면서 모래가 됐어요”라고 대답했다는 것.
순간 박 씨는 깜짝 놀랐다. 자신은 섬진강을 걸으면서 물 흐르는 것만 보고 걸었는데 아들은 사물을 정확하게 보고 스스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 여행은 행복의 지름길
“본인은 여행을 통해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깨달았다.” 박씨가 아주 감명 깊게 읽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의 일부다.
자식이 영어, 수학을 잘하는 것 보다 여행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현대 사회에서 대다수 부모는 자녀들이 판사나 검사 등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고,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하다고 생각하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인간답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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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주전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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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준 군은 만화 슬램덩크를 수십 번 읽은 뒤 농구에 빠져있다. 남들이 볼 때에는 신체적 조건이 안 돼 고개를 갸웃 수 있지만 박 씨는 아들의 선택을 믿고, 응원해준다.
히말라야 등반 당시 밤에 고산병이 와 2,600m 안전지대로 내려오는데 비가 내리고, 우박까지 떨어지는 악천후에 하산을 시도하는 등의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 아들 스스로가 해야 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들은 자신이 부족한 게 많다고 말해요. 하지만 최선의 노력을 다할 거라는 말도 자주 합니다. 자세가 돼 있는 것 같아요.”
4살 때 위도로 첫 여행을 떠났던 아들은 어느새 초등학교 6학년이 됐다. 키와 몸무게 뿐 아니라 여행을 통해 마음도 이렇듯 훌쩍 자랐다.
■ 꼭 하고 싶은 이야기
“돈이 있으면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겠죠. 그런데요. 어렸을 때만이라도 우리 아이들이 불편함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손수레를 끌고, 길가에서 텐트치고 잠을 자고...앞으로 익숙지 않게 되는 것들을 경험하는 것은 미래 소중한 자산이 될 겁니다.”
부모님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란다. 또 하나, 가능한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면서 지지해주고, 응원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전했다.
“농작물은 올해 잘못되면 내년에 다시 씨를 뿌리면 되는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아요. 이 성장시기가 지나면 부모와 절대 같이 할 수 없어요. 하루하루가 빠르게 성장하고, 자아 정체성이 강해지면 부모 곁을 떠납니다.”
아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얻고, 깨달았던 것들이다.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한왕용 대장. 자연 앞에 자만하지 않고, 늘 겸손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휴머니스트라는 점에서 그를 가장 존경한다는 박용민씨와의 특별한 인터뷰에서 기자 역시 많은 것을 얻고, 깨달았다.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며,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박용민씨의 이야기로 글을 맺는다.
“아이들의 교육은 학교나 학원에서 해주는 게 아닙니다. 가정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나가서도 행복할 수 없어요. 부모님의 시각에서 바라보지 말고, 자녀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하고, 묵묵히 응원해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