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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긍정의 아티스트, 희망을 연주하다

원제연 기자 입력 2021.05.20 15:46 수정 2021.05.20 03:46

(특집 / 피겨 플루티스트 윤수연)

얼음 위에서 피겨스케이팅을 하며 플루트를 연주하는 세계 최초 ‘피겨 플루티스트’ 윤수연(47)씨.

한때 플루트 지도자로 독주회, 앙상블, 오케스트라 협연 등 많은 무대에 섰고, 국내 손꼽히는 음악 잡지 표지모델이 될 만큼 연주자로 이름도 날렸다.

그런 그가 갑자기 피겨스케이팅을 하면서 플루트를 연주하는 다소 엉뚱한 도전을 결심하게 된다.

그런데 넘어지고, 일어서고를 수없이 반복하는 등 끈질긴 노력 끝에 대회에서 금·은·동메달을 따내며 기량을 인정받았다.

이후 그는 전국 군부대 등을 돌며 강의와 공연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 주면서 ‘긍정의 아티스트’라는 또 하나의 수식어를 얻게 된다.

최근에는 인라인을 타고, 플루트를 불며 코로나19로 힘든 전북도민들에게 희망과 열정을 선물하고 있다.

아버지를 따라 얼마 전 완주 상관면 내아마을 주민이 된 그의 지난 이야기와 앞으로의 꿈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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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루티스트 명성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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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재 전주 서곡에서 플루트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로 16년째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음대에 진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며 공부했다.

졸업 후에는 독주회와 오케스트라 협연은 물론 ‘해피앙상블’을 만들어 큰 무대에도 서봤다. 또한 방송사 프로그램에도 다년 간 출연해 연주도 했다.

뿐만 아니라 국내 유명 음악잡지 ‘음악저널’ 표지모델을 장식하고, 커버스토리로 소개 되는 등 아티스트로서 돈과 명예도 얻었다. 당시 나이 삼십대 중 반. 인생 최고의 봄날을 만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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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숙에서 ‘수연’으로 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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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름은 ‘현숙’이었다. ‘수연’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 사건이 있었다. 가장 믿고 따랐던 선배로부터 배신을 당한 이후였다. 충격으로 2년 동안 우울증을 겪었다.

“사람을 못 믿겠더라고요. 그때부터 무기력증, 대인기피증이 생겼어요. 약을 먹고 자살까지 시도했죠. 다행히도 제 친구가 발견해 병원에 치료를 받았어요.”

2년간 경제·육체·정신적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어느 날, 3가지 꿈을 꿨다. 첫 번째는 준비한 칼로 언니를 죽이는 , 두 번째는 아무것도 없는 백지, 세 번째는 햇살이 비치고, 음악소리가 나며, 아이가 방긋방긋 웃는 꿈이었다.

꿈에서 깬 뒤, 오랜만에 플루트를 잡고 자신처럼 억울하고 분해서 누군가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한테 ‘그러지 말라’고 전해주고 싶은 강한 열망이 생겼다.

곧바로 부친의 화실로 들어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고마워”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라는 곡을 연주하며, 눈물, 콧물을 쏟아냈다. 연주를 하고나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그리고는 마음을 비우고 다시 시작하기로 다짐하며, ‘현숙’이라는 이름에서 ‘수연’으로 개명했다.

“내 인생에 전반전은 뭣 모르고 살았다면 후반전은 다시 한 번 음악이라는 것도 알아보고, 강해지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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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 힐링센터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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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의 긴 터널을 벗어난 그는 부친에게 힐링센터 건축을 제안했다. 부친은 한국화의 맥을 잇고 있는 백당 윤명호(80)화백으로, 전북도전 초대작가,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31년 전 상관면 내아마을로 이사와 ‘청우헌’이라는 작업실을 짓고 그림에 전념하고 있다.

아버지와 합류해 힐링센터를 세운 뒤,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부친은 그림으로, 자신은 음악을 통해 다시 일으켜 세워주고, 상처도 치료해주고 싶었다.

2016년 6월 12일, 한 순간에 모든 꿈이 와르르 무너지는 큰 사건이 벌어졌다. 화재로 인해 힐링센터가 전소 된 것. 부친의 피와 땀, 눈물, 혼이 담긴 작품 80여점이 모두 잿더미로 변했다.

이듬해 60주년을 기념해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딸 수연씨의 공연과 함께 그림을 전시할 계획이었지만, 화마로 물거품이 됐다.

“정말 황당했죠. 더 황당했던 것은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데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인생 공수래공수다. 저 재물은 내 것이 아니다. 신의 것이다. 내 나이가 시작할 딱 좋은 나이다. 이제 내가 시작할 수 있겠구나!’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아버지와 멋진 꿈을 그리며 만든 힐링센터가 뼈대만 앙상하게 남고 흔적도 없이 타버린 그날, 밤새도록 울었다.

그런데 문득, 부친이 살아 있고, 마을이나 산으로 옮겨 붙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는 화재가 난 다음 날 현장에 나와 플루트를 꺼내 ‘Raise me up’을 연주한 뒤, 부친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이번에 확실히 느꼈네요. 아빠의 긍정과 열정을...제 몸에도 긍정과 열정의 피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자리에서 수연씨는 긍정과 열정으로 빚도 갚고, 아버지 전시회도 꼭 열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화재 이후 ‘초긍정 부녀’로 인터넷 신문에 소개됐고, KBS1 TV 인간극장에도 일주일간 ‘윤화백이 웃던 날’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되면서 전국적으로 부녀의 이름이 알려지고,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도 많이 받았다.
ⓒ 완주전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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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초 피겨 플루티스트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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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티스트인 그가 ‘피겨 플루티스트’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김연아 선수의 아름답고 환상적인 연기에 매료됐던 것.

“태극마크를 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하는데 얼마나 긴장됐겠어요. 그런데도 멋지게 소화하는 모습을 보며 강한 멘털과 자신감이 부러웠어요.”

중계를 보면서 ‘나도 피겨스케이팅을 하면서 플루트를 연주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 주저 없이 도전했단다. 주변 사람들은 새로운 도전에 응원보다는 부상 등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포기할 수연씨가 아니다.

“피겨 스케이트를 신고 스핀을 돌다가 수도 없이 넘어져 병원에 실려간적도 많아요. 근데 될 때까지 연습했어요.”

그 결과 문체부장관배 빙상대회에서 값진 메달을 목에 걸었고, 2019년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 아이스링크장에서 정식 데뷔 무대를 갖기도 했다.

“정주영 회장이 남긴 어록 중에 ‘불가능하다고? 해보기는 했어?’라는 말이 늘 저를 깨웁니다. 노력해서 안 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걸릴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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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주는 강사로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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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13년도부터 전국을 돌며 강의를 시작했다. 절망 끝에 선 사람들에게 희망을 건네주는 ‘나부터의 캠페인’이 강연의 주제다. 멘토로부터 배신을 당해 자살을 시도할 만큼 우울증, 대인기피증에 빠졌다가 훌훌 털고 다시 일어섰던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전국에 있는 수많은 군부대를 돌며 강의를 하고, 연주를 통해 마음의 위로를 선사했다. 실제 그의 사무실 한켠에는 강연에 화답하며 군부대와 교육·공공기관으로부터 받은 감사패와 기념 메달이 전시돼 있다.

특히 지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내내 문화도민 시민강사로서 강원도에 상주하며, 비인기 종목, 비인기 국가, 취약 시간대에 이동하게 되는 화이트 서포터즈들의 인솔과 교육을 담당하는 등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되는데 한몫했다.

자신의 일을 뒤로 한 채 무작정 올라가 올림픽과 패럴올림픽이 끝날 때 까지 강원도에 머물면서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에 조직위는 박수를 보냈고, 언론들은 올림픽 성공 개최에 ‘일등공신’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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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새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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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이 전국에 알려지면서 방송, 군부대 등으로부터 강의 요청도 늘어났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코로나19사태가 터지면서 강의가 끊겨 버렸다. 돈을 벌어 자신과 아버지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또 다시 사라졌다.

하지만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 코로나19로 힘든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위해 다시금 신발끈을 동여맸다.

이번에는 ‘여러분 힘내세요’라는 문구를 가슴에 새기고, 피겨스케이트가 아닌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전주한옥마을과 남부시장, 전주역, 전북대 등을 전주 시내 곳곳을 다니며 긍정에너지를 전파했다.

“마스크 안에 플루트를 넣어 부는 데 힘들기는 했지만, 내내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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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주에서의 꿈,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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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씨의 꿈은 세계 최초 피겨 플루티스트 답게 전세계 링크장 무대에 서는 것이다. 그래서 여니(Yeony)라는 영문 이름을 만들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어려워졌다. 사태가 진정되면 도전할 계획이다. 최종 꿈은 아버지가 살고 있는 상관면 내아마을을 완주, 전북을 넘어 대한민국에서 가보고 싶은 마을로 만드는 거다. 그래서 주소도 옮겼다.

“내아마을 딸이 되고 싶어요. 눈물, 콧물 흘린 곳이 내아마을이잖아요. 하나하나 다시 시작해서 아버지와 저의 꿈도 이루고 싶어요.”

그림과 음악이 있는 마을, 편안하게 쉬고,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 싶단다. 일단 시작이 좋다. 내아마을이 생생마을만들기 사업에 선정돼 완주군으로부터 지원을 받게 됐다.

사업 내용은 마을 담벼락을 벽화로 예쁘게 채우는 것이다. 부친 윤명호 화백이 붓을 들었고, 딸 수연씨도 거들었다. 주민들도 마을을 위해 땀흘리는 부녀에게 먹을거리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무엇보다 산간오지마을이 ‘긍정부녀’덕분에 활기를 띠고, 주민들끼리 소통이 이뤄지면서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열정과 노력이 있으면 반드시 기회는 오고, 꿈도 이뤄지리라 확신합니다.”

끝으로 ‘희망과 긍정 아티스트’ 윤수연씨가 가장 좋아하는 징기스칸(1161~1227)의 시를 소개하며 인터뷰를 마친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 목숨을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일이었다...(중략)...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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