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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칼럼니스트 |
ⓒ 완주전주신문 |
“교하후인 노춘봉 여사는 전북 김제 부량면에서 1905년 3월 1일 출생하여 조양 임공 영희씨와 혼인, 슬하에 딸 여덟을 두었다. 천성이 영특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주로 이거하여 일제의 강제합병의 수많은 고난을 겪어냈다. 부 임공께서 53세를 일기로 별세하자 혼자 힘으로 딸 8자매 모두를 고등교육까지 시켰다. 근검절약을 신조로 일관해 오던 중 뜻한바가 있어 전 재산을 쾌척하여 1971년 3월 4일 학교법인 ‘춘봉학원 근영여자중·고등학교’를 설립·개교하여 별세할 때까지 초대 이사장을 맡아 후학 여성교육에 심혈을 기울이셨다. 이에 정부에서 여사의 높은 뜻을 기리어 국민포장을 수여하였다. 마침내 기거하던 집 한 채 마저 학교에 헌납하고 1984년 12월 19일 78세를 일기로 별세하셨으니 여사의 장한 육영의 뜻을 오래 기리고 후손이 본받고자 이 비를 세우다.”
‘유인 교하노씨 춘봉지묘(孺人交河盧氏春逢之墓)’ 비석 전문이다.
남편 임영희는 1899년생으로 부인과 여섯 살 차이, 1951년 작고하니 여사는 그 때 46세요, 홀로 33년을 이처럼 훌륭하게 살았다.
이 공적은 서울의 요정 ‘대원각’을 시주해 길상사를 연 김영한 보살에 못지않다. 그런데 사람을 챙겨주는 대접이 서울과 전주가 너무나 다르다.
근영여자중·고등학교 교직원과 이사들이 노춘봉의 공적을 선양하고 들어내야 한다.
학생들에게 여사의 부덕을 심어주고 대학입학수학능력고사가 끝났으니 교사(장)는 곧 바로 학생들과 함께 참배하며 성역화를 해나가야 한다.
개교 50년이 가까워진다. 그동안 근무하며 받은 월급을 생각해서라도 노춘봉 이사장을 잊으면 도리가 아니다.
학교 안의 여러 곳에 개교 이념을 나타냈듯이 묘소를 통해 참사람 정신을 심어보면 어떨까.
공자, 석가, 예수 님 물론 훌륭하다. 그러나 이 뒤에는 믿고 받드는 후학과 교도가 있었기에 세상 억만 사람의 스승으로 존경을 받지 않나? 사람을 챙겨 받드는 전주가 돼야한다.
간재 전우 선생은 전주 청석동에서 태어났고, 김가전·배은희 목사는 호남에서 유명했으니 그 이름을 더 들어내야 한다.
충청남도 홍성은 해마다 인물 잔치를 한다. 최영, 성삼문, 김좌진, 한용운, 이응로를 떠받든다.
완주는 어떤가. 최양, 이문정, 이방간, 오몽을, 심효생, 황거중, 정여립, 이성중, 이상진, 소세양이 책 속의 사람일 뿐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산 사람들 탓이다.
시제의 철 묘 앞에서나마 짤막짤막하게라도 소개를 하고 넘어가라.
회안대군의 신도비명 가운데 1408년 이야기. “상왕지상 서불부도‘한수…’(上王之喪 誓不復渡 ‘漢水’…)” 이 대목이 가슴을 친다. 여기 ‘한수(漢水)’가 사수(泗水;만경강) ‘한내’ 곧 ‘막은내’ 일수도 있다. 전주 송천동 솔빛중학교(교장 박경철)는 ‘호연지기’ 학습으로 세상의 이목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