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면 천호로 460번지에 위치한 ‘알로이 F&B’. 유통회사로, 이 회사의 대표는 경천면 출신 김문구(57)씨다.
현재 유통업에 종사하지만 1990년대 이후 세진여행사를 운영하며 30년 가까이 전국에서 ‘신혼여행’하면 손꼽힐 정도로 업계 단연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 여행업에서 유통업으로 도전장을 내밀고,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여행업에 첫 발을 내딛다
김문구 대표의 고향은 경천면 오복마을이다. 김윤근(90)·이창순(86)부부의 2남 3녀 중 넷째로, 가천초와 고산중, 고산고, 원광보건대를 졸업하고, 현재 우석대 창업컨설팅학과에 재학중이다.
산과 들이 펼쳐진 시골에서 나고 자라 평범한 농사꾼이 되겠다는 어릴 때의 소박한 꿈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뀌게 됐다.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오토바이 사고였다. 20살 때였다. 이 사고로 크게 다쳐 100일 넘게 입원했다.
입원했을 당시, 병실을 함께 사용하며 친해졌던 환자 중 하나가 학교 다닐 때 디제잉을 했을 정도로 활발한 그의 성격과 재능을 알아보고, 익산의 한 여행사를 추천해줬다.
“회사도 작고, 월급도 적었지만, 일단 어디든 취직해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여행사에 들어가 영업부에서 가이드를 하면서 견적도 뽑고, 여러 업무를 경험했다. 일은 생각보다 재밌었고, 적성에도 맞았다. 특히 신혼부부들을 버스에 태워 부곡 하와이 온천 구경을 하고,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다녀오는 아이디어 상품을 개발, 히트를 치기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각자 알아서 신혼여행 갈 때여서 토요일, 일요일에 모아서 한꺼번에 리무진 버스를 타고 움직이니 그런 게 센세이션 했죠.”
더욱이 5쌍, 10쌍을 모으니 단체 신혼여행이어서 항공료가 저렴했고, 신혼부부 입장에서도 비용을 줄이고, 회사에서도 매주 버스를 운행할 수 있어 매출도 급상승했다.
■세진여행사로 사업 시작하다
김 대표가 만든 상품이 알려지면서 도내 여러 여행사에서도 하나둘씩 도입했다. 이렇듯 즐겁게 열심히 일하다보니 성과가 났고, 덩달아 승진과 함께 회사도 쑥쑥 커나갔다.
그렇게 5년 정도 근무하다가 26살 무렵, 전주의 중견 여행사 대표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마침, 결혼도 해야 하고, 주변이나 여행업계에서 제가 신혼여행 관련한 일을 잘한다고 소문이나 그 회사에서 신혼여행 사업부를 만든다며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해서 전주로 나오게 됐어요.”
직장을 전주로 옮겨 과장급 대우를 받으며 일했다. 하지만 여행사의 부도로 1년도 채 근무하지 못하고 다시 다른 회사의 신혼 총괄로 스카우트 됐다.
그마저도 업무 지원이 좋지 않아 결국 6개월 만에 회사를 나왔다.
직장을 과감히 정리한 뒤,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토대로 전주영동병원 인근 빌딩 4층에 자신의 이름을 대표로 내걸고 세진여행사 전주지점을 냈다.
세진여행사는 서울에 본점을 둔 그 당시 전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여행사였다.
“여행사를 직접 운영하고 싶어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전주지점을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의 실력, 자신감과 신뢰에 세진여행사도 흔쾌히 전주지점 계약서에 사인을 했고, 대표로 인정했다. 서울에 있는 여행사가 지방에 지점을 내준 전국 최초의 사례였다. 당시 28살 무렵이었다.
■대박을 터뜨리다
세진여행사 전주지점은 본사의 일간지 등 매체 홍보 지원 덕분에 신혼여행 관련 문의가 끊이지 않고, 계약 성사로 이어져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신문광고 하단에 전주지점 전화번호가 적혀 있으니 전화가 불날 정도로 많이 왔고, 다른 사람이 생각도 못한 지점을 내면서 효과를 톡톡히 봤죠.”
세진여행사 전주지점의 성공적인 여행 시장의 안착은 다른 여행사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실제 온누리를 비롯 전국 내로라하는 여행사들이 잇달아 전주에 지점을 내고 경쟁에 뛰어들었다.
김문구 대표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정확히 맞아 떨어진 셈이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세진여행사 전주지점 맞은편에 푸른여행사 전주지점을 개점하고 고급 신혼여행 상품을 출시·판매하는 등 저가와 고가의 투트랙으로 시장을 공략했다.
하지만 잘 나갈 줄만 알았던 여행사는 IMF외환위기를 맞고,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버렸다. 설상가상, 전북대 정문 입구에 무려 80평을 임대, 스튜어디스 학원을 개원했지만, 외환위기로 직격탄을 맞아 결국 문을 닫게 됐다.
최고가 되기 위해 거액을 들여 몸집을 키우려 했으나 IMF의 파고를 견디지 못했다.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됐고, 살고 있던 아파트도 내다 팔아 익산 왕궁의 1천 만 원 짜리 전셋집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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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으로 다시 일어서다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는 특유의 성실함과 자신감을 무기로 다시 한 번 도전에 나섰다. 발품을 팔며 사무실을 알아보던 중, 마침 IMF한파로 비어있던 전주의 옛 한진고속 인근 빌딩 6층 약 60여 평의 사무실을 월 25만원의 저렴한 가격에 얻은 후 책상 하나 놓고 혼자서 세진여행사를 다시 시작했다.
어느 날, 우연히 길을 걷던 중 생활정보신문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라 곧바로 아시아나항공 전주지점을 찾아갔다.
그리고 여행사와 항공사가 윈-윈 할 수 있는 사업을 제안했다. 매주 신혼부부 8쌍, 16석을 채워주는 대신 방콕, 파타야 항공료를 싸게 달라는 것이었다. 어째든 그간 여행사를 운영하며 항공사 직원과 친분이 두터웠던 덕분에 흔쾌히 승인을 얻었다.
그 다음으로 생활정보신문사의 임원을 만나 전면광고 게재를 요청했다. “한 달 광고비로 400만원을 달라고 했는데, 돈이 없어 판매 되는 대로 절반을 주겠다고 했어요.”
이후 ‘제주도 보다 더 싼 3박 5일 방콕-파타야 특급호텔 신혼여행’이란 상품을 만들어 신문광고를 매일 게재했다. 완전 파격적이었다. 광고가 나간 이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평일에는 전화 문의, 주말에는 여행사를 찾아 상담하려는 예비 신혼부부들이 줄을 이을 정도로 북새통을 이루면서 돈도 제법 벌었다.
■내 사전에 만족은 없다
재기에 성공한 그는 1년 뒤, 새로 직원을 뽑아 여행사를 처음 시작했던 사무실로 옮겼다. 금의환향이었다.
여기에서 안주할 김 대표가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가 ‘대한민국 초고속 인터넷(ADSL)보급’을 대표적 IT정책으로 내놓은 것에 힌트를 얻어 홈페이지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천리안에 접속했는데, 홈페이지를 만들 줄 안다는 강원도 한 고등학생과 연결이 돼 여행권 보내주면서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했고, 열심히 배워서 홈페이지를 만들었어요.”
하지만 그림 없이 텍스트로만 보여주다 보니 갑갑한 마음이 들었다. 마침 우석대 창업관련 홈페이지를 만드는 사무실에 문을 두드려 80만원에 제작을 맡겼다.
홈페이지에 김 대표가 발리, 파타야, 푸켓 등 전세계를 다니며 촬영했던 리조트 사진과 동영상을 업로드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홈페이지의 이름은 ‘리조트 세상’. 세진여행사의 허니문 전문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직접 여행을 가지 않고도 전세계의 리조트와 관광지를 한눈에 보여주고, 내가 갈 호텔과 방을 확인할 수 있으니 예비 신혼부부들이 당연히 좋아할 수밖에 없었죠.”
전주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이런 형태의 홈페이지는 없었다.
■여행사를 접다
홈페이지가 알려지자,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시험 삼아 한 달 간 무료로 광고를 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이어 ‘네이버’에서도 제안이 왔고, 광고를 게재하자 상담이 폭주했다.
이후 서울에 사무실을 둘 정도로 성장했고, 본사의 부도로 전국 지점 회의를 거쳐 김 대표가 세진여행사 본점 대표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면서 전국 여행사로 우뚝 섰다.
세진여행사는 직원 20여 명으로 조직이 커졌고, 본사도 전주 시내 중심가로 옮기면서 사업도 확대했다. 하지만 여행사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면서 과다 경쟁으로 인한 매출이 점점 감소했다.
그 돌파구로 해외 현지에 리조트를 지어 직접 보내는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자연스럽게 여행사를 접게 됐다.
■유통업으로 제2막을 열다
코로나19로 회사를 정리한 뒤, 2년 동안 쉬면서 새로운 사업구상을 했다. 고민 끝에 여행사 네트워크를 활용해 청과 수입을 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2022년 초였다.
가장 먼저 회사 이름을 ‘알로이 F&B’로 짓고 본격 사업을 시작했다. ‘알로이’는 태국말로 “맛있다”란 뜻이란다. 이후 미니 파인애플을 수입했는데, 젊은 엄마들에게 알려지면서 히트를 쳤다.
“미니 파인애플이 작아서 깎아 먹기 불편한데, 현지에서 예쁘게 깎아서 팩에 담아 판매하다보니 먹기 편리하고, 맛있어 주문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미니 파인애플 외에도 슈가 애플 등 다른 곳에서 판매하지 않는 특이한 과일만을 수입,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게 김 대표의 사업 전략이다. 2023년 말에는 망고 젤리를 만들어 역시 대박을 터뜨렸다.
“태국에 가면 망고 젤리가 많은데 다 똑같아요. 우연히 망고를 응고시켜 만들어봤는데, 입에 달라붙지도 않고 과일향도 나면서 맛있더라고요. 망고 젤리를 만든 뒤 태국의 우리나라의 롯데백화점과 같은 센트럴백화점에 납품했는데 불티나게 팔렸어요.”
청과와 함께 김 대표가 전국의 만두를 맛본 후 개발한 ‘전주한옥만두’도 ‘알로이 F&B’의 시그니처 상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종류만 7가지로, 맛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이외에도 핫도그, 떡볶이, 삼계탕 등 밀키트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절찬리 판매되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망고월드’라는 카페 브랜드도 고산면에 오픈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세진여행사를 운영하며 ‘2003~2009년 7년 연속 대한민국 허니문 판매 1위 여행사’, ‘다음 추천여행사’, ‘마이웨딩 선정 베스트여행사’, ‘아시아나 항공 최우수 판매 대리점’, ‘코란코브 전세계 판매 1위 여행사’ 등 수많은 타이틀을 얻었다.
여행업계에서 늘 ‘처음’,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을 정도로 평범하지 않았던 그가 유통업에서는 어떤 수식어로 사람들에게 기억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끝으로 김문구 대표의 하고 싶은 말 한마디로 인터뷰를 마무리한다.
“뒤돌아보니 죽도록 노력했던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엎어지지 않고 진정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너져봐야 달콤한 성공이라는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