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에서 아이들이 해가 저물도록 소리 지르며 뛰어노는 모습은 옛날이야기가 된지 오래다.
어쩌다가 젊은 부부가 갓난아이를 데리고 시골로 이사 와 처음 주민들과 마주하게 되면 신기한 듯 쳐다보며 격하게 환영한다.
이처럼 아파트 단지나 읍내를 벗어나 시골마을로 들어서면 길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을 만나기란 이제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밤낮 구분 할 것 없이 시골 마을 풍경은 적막과 고요함, 그 자체다.
우리는 지금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대한민국이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노동력 부족, 정부부채 증가, 사회보장 및 의료서비스 비용 증가 등으로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그래서 오늘 소개할 가족이 더욱 더 존경스럽고, 빛이 나고, 정말 소중하게 느껴진다.
바로 봉동읍 낙평리 보상마을에 사는 승현(24), 서연(22), 태완(19), 재현(16), 서은(8), 5남매를 둔 김철웅(55)·김세희(45)부부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다복한 이 가족의 사는 모습을 글로 담아봤다.
▲다둥이 가족 소개
아빠 김철웅씨는 완주군청 자원순환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올해로 11년째다. 엄마 김세희씨 역시 완주군청 사회복지과에서 일하고 있다.
다음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금쪽같은 자녀들을 소개한다.
첫째 승현 군은 국토정보공사(LX)에 근무하고 있다. 부부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어엿한 직장이 돼 이번 어버이날에 용돈을 두둑이 넣어줬단다. 최근 완도로 옮겨 적응 중이다.
둘째 서연 양은 곧 간호사가 된다. 현재 대학 4학년생으로, 열심히 학업에 매진하고 있다.
셋째 태완 군은 운동을 좋아해서 적성에 맞는 경찰행정과를 선택, 열심히 꿈을 키워가고 있다.
넷째 재현 군은 고등학교 1학년이다. 토목과에 재학 중이만 자연친화적인 건축물을 짓고 싶은 멋진 꿈이 있다. 최근 큰 형의 모습을 보면서 공사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막내 서은 양은 아빠를 닮아 글과 그림에 소질이 있다.
엄마 역시 “색감이 좋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로 재능이 있는 걸 보니 머지않아 멋진 화가의 모습이 기대된다.
이렇게 소개하고 보니 부부가 “세상 부러울 것 없다”라고 한 말이 실감난다. 참고로 자녀들 키가 외가를 닮아 승현 군이 187cm, 서연 양이 174cm, 태완 군 185cm, 재현 군 187cm, 막내 서은 양도 아무것이나 잘 먹으니 언니·오빠만큼 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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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줄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첫째 승현, 셋째 태완, 넷째 재현, 막내 서은, 김세희·김철웅 부부, 둘째 서연. |
ⓒ 완주전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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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에서 결혼까지
남편 철웅씨의 고향은 완주 봉동, 아내 세희씨는 전남 무안이다. 철웅씨의 여동생과 세희씨의 큰 언니가 서울에서 같은 직장동료로 지낼 때, 우연히 서로 점심식사자리에서 만나 1년 연애 후 결혼에 골인 했다.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만나다보니 나를 즐겁게 해주고, 음식을 잘 챙겨주는 자상하고 섬세한 모습에 점점 호감이 갔어요.”
세희씨는 연애 시절 당시 철웅씨의 모습을 이렇게 회상했다.
두 사람은 좋아했지만,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세희씨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로 헤어질 뻔했던 위기도 있었다. “남편이 집에 찾아와 아버지께 승낙을 받아보려고도 하고,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 하지만 아버지께서 만나지 못하게 저를 외딴곳에 보내기도 했어요.”
하지만 쉽게 물러날 철웅씨가 아니였다. 만남을 허락받기 위해 매일 새벽에 전남 무안에 찾아와 장인어른께 “제가 꼭 책임지겠다”며 무릎을 꿇었다. 결국 그런 모습에 탄복하고 교제를 허락했단다.
“나중에 아버지께서 남편이 포기할 줄 알았는데, 매일 찾아오는 걸 보고 ‘내 새끼 굶기지는 않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부모라는 이름
철웅씨는 서울에서 봉제기술을 배워 사업을 꿈꿨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접었다. 그 무렵, 부친이 돌아가시고, 어머니 홀로 지내는 게 마음에 걸려 완주로 내려오게 됐다.
이후 부친의 사업을 물려받아 인삼 등 약제 납품을 하다, 아내를 만난 뒤, 야채청과 가게를 2년 정도 운영했다. 장사가 잘 돼 가게를 인수하려 했지만, 뜻대로 안 돼 다시 접고, 친구의 권유로 견인차를 운전했다.
돈은 제법 벌었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다 보니 위험보다는 안정을 선택, 공모를 통해 군청에 들어가 올해로 11년째 일을 하고 있다.
세희씨는 학창 시절 배구, 핸드볼 선수로 활동하다 몸이 좋지 않아 그만뒀다. 한참 진로를 고민할 때 철웅씨가 조언을 해줘 큰 힘이 됐고, 많이 의지하게 됐다고.
군청은 2018년 1월에 정식 임용됐다. 입사 전에는 의기투합해 만든 협동조합에서 즐겁게 제과제빵 사업에 참여했다. 집에서 아이들 간식을 만들어 주려고 배웠다가 사업으로 이어졌다.
“정말 열심히, 즐겁게 일을 했어요. 그런데 매일 새벽에 나가 일을 하다 보니 몸이 힘들었고, 남편의 반대도 심해 그만두게 됐어요.”
2016년도에 정리하고, 틈틈이 사회복지 공부를 했다. 자격증을 따고 모집공고를 통해 지원, 2017년도에 군청 응급요원으로 입사했고, 이듬해 1월에 정식 임용장을 받았다. 근무하면서 좋은 일도 생겼다. 전국 사례 공모전에서 첫해 장려상을 받았고, 이듬해는 동상, 그 다음해에는 은상을 수상했다.
모든 게 막내가 태어나면서 입사도 하고, 정식 임용장과 함께 큰 상까지 받았으니 ‘복덩이’라고 부를 만하다.
사실 세희씨는 홀로 벌어 가정을 꾸려나가는 남편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 취업을 결정했고, 남편도 응원해줬다.
“시어머니 모시고 8년 동안 살았고, 월세 10만원에 허름한 집으로 이사도 갔어요. 남편이 안 해 본 일 없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일해서 4번 이사하면서 집을 마련했는데, 살면서 단 한 번도 ‘힘들다’말을 하지 않았고, 싫은 내색하지 않은 게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러워요.”
▲친구같은 아빠
아내뿐 아니라 자녀들도 아버지를 존경한다. 지금까지 자녀들과 약속을 어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승현 군이 고 2때, 철웅씨가 “학교에서 가장 어려운 자격증이 뭐냐”고 묻자, “지적”이라고 대답했고, 곧바로 “가장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최신 휴대전화로 바꾸고 싶다”고 답했다.
“그럼 자격증을 따와라, 바꿔주겠다”고 철웅씨는 승현 군과 약속했는데, 어렵다는 ‘지적’은 물론, ‘측량’, ‘콘크리트’까지 무려 3개의 자격증을 따와 부부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때가 4월 16일, 결혼기념일이었단다. 승현 군은 자격증을 내밀며 “결혼기념일 선물”이라며 “축하드린다”고 말해 부부에게 큰 감동을 줬다. 중요한 것은 이후의 일이다.
철웅씨는 아들에게 “너, 진짜 대단하다”며“아버지가 약속했으니 지금 핸드폰가게 가자”고 했다. 당시 저녁 일곱시가 넘은 상황. 세희씨가 “늦었으니 내일 가라”거 했지만, 철웅씨는 “약속했으니 지켜야 한다”며 아들을 데리고 나갔다.
다른 자녀들에게도 한 번 내 뱉은 말은 꼭 책임을 지는 아빠였다. 존중할 수밖에 없다.
철웅씨는 아이들이 진로문제로 고민할 때 친구처럼 다가와 대화를 통해 해결해준다. 지금 자녀들이 걸어가고 있는 길은 거의 아빠가 만들고, 닦아줬다.
진로뿐 아니라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때도 가장 먼저 아빠에게 달려와 상담을 한다. 그러니 친구 같은 아빠다.
“다 같이 밥을 먹을 때 아이들이 숨기지 않고, 고민을 다 털어놔요. 그러면 아빠는 ‘그래? 우리가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고, ‘솔직히 이야기 해줘서 고맙다’고 말해줘요. 애들이 그런 것을 잘 지켜주는 것 같아요.”
이렇듯 평소 자상하지만 훈육에 있어서는 원칙을 갖고 있다. 가령 세 번의 기회를 줬는데 지키지 않으면 회초리를 들지만 이유를 반드시 설명해준다. 특히 거짓말은 절대 용서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녀들이 거짓말로 크게 화나게 하거나 속 썩여 본 적은 없단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삐뚤어지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고맙죠. 한편으로는 좀 더 잘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커요.”
자녀가 다섯이니 티격태격 싸움도 많이 할 것 같은데, 지금까지 주먹다짐 한 번 없었다. 우애가 깊다. 가령 치킨을 먹을 때 항상 막내에게 다리를 양보하고, 새로운 상품은 사와서 막내를 준다.
승현 군의 경우, 학교 다닐 때 급식 메뉴가 맛있으면 챙겨와 동생들을 먹여줬다.
“저는 항상 자녀들에게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으로 풍요로웠으면 좋겠다’고 말해요. 지금까지는 잘 하는 것 같아요.”
▲엄마의 기도
올해 1월부터 철웅씨는 완주군야구소프트볼협회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큰 사고로 어깨를 다쳐 포기할 법 한데 워낙 야구를 좋아하고, 열정이 넘친다.
아내도 걱정보다 격려와 응원을 보내준다. “남편은 추진력도 있고, 잘해낼 것이라고 믿어요. 걱정은 안 해요.”
이 가족은 1년에 한 번씩 가족여행을 다녀온다. 낯선 환경에서 모두 긴장하지만 견뎌내고 버텨낼 수 있는 것이 바로 가족의 힘이라는 여행을 통해 깨닫게 됐다.
“저희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언니, 오빠가 많이 챙겨줬어요. ‘부모가 없을 때 형제들끼리 서로 의지하고 살아라’고 항상 강조해요. 어려울 때 가장 힘이 되어 주는 게 가족밖에 없거든요.”
힘든 과정을 이겨냈으니 더도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앞으로도 살았으면 좋겠다는 세희씨의 간절한 바람이 이뤄지길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이야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