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특집/기획

‘제61회 소방의 날’ 기념식서 ‘소방청장’ 표창 수상

원제연 기자 입력 2023.11.17 10:42 수정 2023.11.17 10:42

(소방의 날 특집 인터뷰 / 고정훈 소방장)
“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중략...) 저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케 하시고,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게 하소서. 그리고 당신의 뜻에 따라 제 목숨이 다하게 되거든, 부디 은총의 손길로 제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아주소서”

‘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제목의 시(詩)다. 지난 9일은 올해로 61번째 맞는 ‘소방의 날’이었다.

완주소방서(서장 전두표)는 이날 기념식을 갖고, 국민의 인명 및 재산 피해 예방을 위해 크게 기여한 유공자에 대해 표창장을 수여했다.

수상자 가운데 동료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한 한 소방관이 있어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나눴다.

주인공은 소방청장 표창장을 받은 고정훈 소방장이다. 완주소방서에 따르면 고정훈 소방장은 119구조대원으로서 투철한 사명감과 희생 및 봉사정신을 으로 화재진압, 인명구조 활동에 앞장서 도민의 인명 및 재산피해 경감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직장 동료들은 그를 가리켜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며, 직원들의 애경사를 꼼꼼히 챙길 정도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두터운 신뢰를 얻고, 끈끈한 의리를 보여주는 멋진 남자”라며 한목소리로 칭찬했다.

이렇듯 성격은 물론 키 182cm, 몸무게 80kg의 다부진 체격에다 건강미 넘치는 구릿빛 피부, 연예인 뺨칠 정도로 잘 생긴 외모까지, 모든 것을 갖춰 동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는 고정훈 소방장.

1983년생으로, 올해 마흔 한 살이다. 그는 2011년 3월, 소방관으로 임용됐다.

이후 전주완산소방서와 임실 소방안전체험센터, 완주소방서 등에서 13년째 119구조대원으로 근무하면서 각종 재난 및 사고 현장에서 많은 활약을 펼쳤다. 또한 전국 최고 소방관을 뽑는 ‘소방기술경연대회’에 잇달아 참가, 2위와 3위를 기록, 도지사 표창을 수상하고, 전북도내 소방기술 경연대회에서도 구조분야 ‘Bes소방공무원’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최근 특수대응단으로 자리를 옮겨 내년 1월 개관을 준비하고 있는 고정훈 소방장을 만나 수상소감과 함께 지나온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 완주전주신문


▲소방청장 표창 받은 소감 말씀해 주시죠.
“큰 상을 받게 돼 어깨가 무겁습니다. 제가 뭔가를 이뤄 놓고서 보상을 받았다기 보다 앞으로 더 발전하고, 소방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격려의 뜻으로 준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방관이 꿈이었나요?
“일반 공무원이 되는 게 꿈이었어요. 진안 용담이 고향인데 수몰되면서 대전으로 이사를 가게 됐어요. 대학을 다니다 휴학하고, 해병대에 입대했다가 수색대 부사관으로 지원해서 선발돼 전역 때까지 근무했습니다. 전역 한 뒤에 복학한 뒤, 4학년 때 친구를 통해 제가 복무했던 해병대 특수수색대가 소방 구조대원 특채 지원 자격에 포함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대부분 특전사 출신이 지원을 많이 하는데, 어쨌든 시험 봐서 운 좋게 합격했어요.”


▲첫 근무지는 어디였나요?
“2011년 3월 7일 소방관으로 임용돼 전주완산소방서 구조대에 처음 근무를 시작했어요. 동기 대부분이 특전사 출신이어서 선배들로부터 소방서에 관한 정보를 많이 얻게 되는데요. 저는 장비 메고 물만 뿌리는 게 전부인 줄 알고, 시험 봐서 합격한 뒤, ‘공무원이 됐다’는 것에 도취했어요. 막상 들어와 보니 너무 달라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어요.”


▲이후 근무는 어디서 했나요?
“전주완산소방서에서 2년간 근무하다가 2013년도 임실 안전체험센터가 개관할 때 저도 자리를 옮겼어요. 구조대원으로서 좀 더 일을 해보려고 마음을 굳게 잡았는데, 근무지가 바뀌어서 아쉽긴 했지만, 센터에서 일반인들에게 위기상황에서 탈출하는 방법 등을 가르쳐 주면서 보람도 많이 느꼈습니다. 그곳에서 2년 동안 근무하다 다시 완산소방서로 발령을 받았어요. 사실 지원을 했어요. 출동이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하고 싶었던 일이라 행복했습니다. 신규때는 선배들 보조만 해주고, 지켜보기만 했는데, 다시 완산소방서로 갔을 때는 현장에서 직접 장비도 만져보고 다뤄보면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최근 특수대응단으로 자리를 옮겼는데요?
“완산소방서에서 같은 관할인 임실 안전센터로 다시 옮겼다가 2년 뒤인 2019년 1월에 완주소방서가 문을 열 때 오게 됐어요. 119구조대원으로 계속 근무하다가 얼마 전에 특수대응단으로 발령을 받았는데요. 기존 완주에 있던 구 소방항공대가 이전하고 공간을 리모델링해 내년부터 119특수대응단을 본격 운용할 예정입니다. 특수대응단은 완주와 전주에 공단이 많이 있다 보니 유해물질 등의 누출 등 특수 사고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설립됐습니다.”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요?
“구조대의 업무 특성상 화재도 진압하지만 현장에서 차나 기계에 신체가 끼어 부상을 입거나 사망하는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요. 처음 소방서에 와서 죽은 사람을 마주하다보니 트라우마가 굉장히 심했어요. 제가 3월에 임용됐는데 ‘한 두 달만 하다가 퇴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이 있어요. 내색은 안했지만 그때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운동을 워낙 좋아해서 축구 등 운동을 통해 극복했던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하는 일이 사고를 다루다 보니 안 좋은 상황이 많아요. 그 중에서도 시골이다 보니 소나 돼지가 상상할 수 없는 곳에 끼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 상황이 우습긴 하지만, 소 주인 입장에서는 애가 타죠. 그러니 구조대원으로서 신속하게 구조하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기억은 아버지가 ‘딸이 연락이 안된다’며 실종신고를 했는데요. 딸은 평소 정신이상이나 우울증 증세가 없어 다른 쪽으로 의심하고 수색을 했어요. 결국 아버지가 전봇대에 차가 부딪힌 흔적을 보고 아래 도랑에서 딸의 차량을 발견해 CPR(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끝내 숨을 거뒀어요. 딸을 품에 안고 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보람된 일도 많을 텐데요.
“많이 있어요. 저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그분들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해 주셔서 전화도 해주시고, 찾아와 응원과 격려를 해주시면 보람을 많이 느끼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됩니다.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소방관이나 경찰, 모두 다 똑같이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을 하는데요. 가끔 TV를 보면 안 좋은 부분을 부각하면서 마치 전체가 그런 것처럼 보도가 되는 것에 대해 속상하기도 합니다. 정말 자신의 위치에서 국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고생하는 분들이 많으니 따뜻한 격려를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요.
“특수대응팀으로 자리를 옮겼는데요. 이 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무엇보다 소방관으로서 항상 사명감과 희생, 봉사정신을 마음속으로 새기면서 도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전북소방 119구조대원 깊은물 수난구조팀의 인력풀이 저를 포함해 13명이 있는데요. 저도 스쿠버 자격증이 있지만 지역 수난사고 발생 시 인명구조 활동을 위해 신속히 구조작전에 투입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새로 배운다’는 생각으로 훈련과 연구를 많이 해서 수준을 끌어올리는데 집중할 계획입니다. 또 틈틈이 책도 많이 읽고, 소방관은 체력 없이는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몸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을 쓸 예정입니다. 제가 평소 많이 읊는 한자 성어가 있는데요. 모두 다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마음에 새기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군민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소방관이다보니 안전에 민감한 것 같아요. 어떤 일을 하던지 ‘안전’을 머릿속에 염두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저희도 사고 나서 출동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더욱이 힘들게 사는 사람이 사고를 많이 당하는데요. ‘조금만 주의를 했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미 사고는 났고, 금전적 손실도 발생했고...후회해봐야 때는 이미 늦습니다. 특히 겨울철이 다가오는데 불조심,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멀리 대전에서 저랑 산다고 전주까지 와서 고생하는 동갑내기 아내(오혜정)에게 ‘고맙고, 사랑하고, 항상 보고 싶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아내가 간호사여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 많이 힘들 텐데요. 그래서 좀 더 잘해 주고 싶은데 생각만큼 잘 안 되는 것 같아 늘 미안한데요. 앞으로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그리고 우리 아들, 아홉 살 은준이도 건강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희망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소방서 직원 모두 다치지 않고, 직장, 가정위에 행운과 축복이 함께 하길 기원드리겠습니다.”


저작권자 완주전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