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이 아닌 사람이 이장협의회장을 뽑는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도 모자라 추천한 후보가 당선되는 웃지 못 할 촌극이 최근 삼례읍에서 벌어져 지역사회가 떠들썩하다.
삼례읍이장협의회장 선거이야기다. 삼례읍 70명의 이장 가운데 대표를 뽑는 이장협의회장 선거가 지난 달 6일 삼례읍행정복지센터에서 ‘2023년 이장 임명장 수여식’ 후 실시됐다.
이날 선거는 구와리 전와마을 유모 이장과 후와마을 권모 이장 등 2명이 후보로 나섰고, 삼례읍 직원들이 서명 확인과 투·개표 등을 도왔다.
총 68명(공석1, 입원 불참1)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개표 결과, 유 이장이 33표, 권 이장이 35표를 각각 획득했다.
선거는 2표차로 권 이장이 당선돼 소감인사를 하고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날 선거에 이장인 형 대신 동생이 선거에 참여한 게 문제의 시발점이 됐다.
확인해보니 곰멀마을 일란성쌍둥이 형제로, 이날 형이 오후 근무하느라 얼굴이 똑같은 동생을 대신 내보내 투표했던 것.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쌍둥이 동생이 협의회장에 당선된 권 이장을 후보자로 추천까지 했다.
이번 선거가 ‘불법선거 개입’, ‘부정선거’라는 말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런 사실이 선거 사흘 뒤인 9일, 모 이장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자 지역사회가 술렁였다. 즉각 유씨는 투표 무효를 주장하며, 권씨에게 ‘이번 선거에서 똑같이 물러 날 것’을 제의했다.
하지만 권씨는 대리투표와 관련, 자신과 무관하다는 점을 들어 당선에 하자가 없음을 강하게 주장하며, 법적으로 따져 가리자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렇게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지난 달 11일 삼례읍장실에서 유씨와 권씨, 읍장 등 3명이 만나 대리투표와 관련, 의견을 나눴지만 여전히 주장이 서로 엇갈리자, 급기야 법률자문을 얻자는데 동의했다.
자문 요청사항은 △투표권이 없는 대리 참석자의 추천과 투표에 의해 선출된 협의회장 선출에 대해 절차상 하자에 따른 무효로서 재투표를 시행해야 하는지 △대리참석자의 투표를 무효표로 제외하더라도 투표 결과(34:33)는 변하지 않으므로 선출 효력을 인정해야하는 지 등이다.
개인 자격이 아닌 삼례읍 차원에서 법률자문을 받아본 결과,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있고, 기망행위임은 물론 이장협의회 구성원이 아닌 사람은 대리권을 가진다고 볼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4군데 모두 ‘선거무효’의견이 나왔다.
이로써 사태가 일단락되는가 싶었으나 설 명절을 앞두고 권씨와 일부 삼례지역단체 이름 앞으로 내건 현수막이 논란이 됐다.
법률 자문 결과, 선거무효임이 드러났고, 관련자 고발 등 법적 절차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삼례읍 발전과 화합을 위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등 마치 당선자로 착각하게 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지역 곳곳에 게첨한 것.
앞서 선거가 끝난 직후에도 한 차례 관내 주요 도로, 마을 초입 등에 현수막을 게첨했는데, 당시 유씨 측이 강력 항의하자, 행정에서 급하게 내려줄 것을 권씨 측에 요청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름 앞에 ‘이장협의회장 당선자’라고 써 붙이고, 행정이나 상대후보와 아무런 상의나 검증 절차 없이 ‘이번 사건과 관련 전후 맥락을 소상히 소개한다’는 3페이지 분량의 글을 삼례 이장들에게 등기 발송해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권씨는 삼례 이장들에게 보낸 글에서 “이번 이장협의회 투개표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새로 선출하는 것은, 그날 신성한 한 표를 던진 유권자의 권리를 무참히 짓밟는 행위”라며 “그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가 낙선되었다고 해서 손바닥 뒤집듯 선거 결과를 무효화 하는 것은 그간 우리가 지켜온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및 삼례읍의 화합과 발전을 무너 뜨리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입장에서 이장협의회장 당선자로서 제게 주어진 업무를 묵묵히 진행할 것”이라며 “저의 직무를 방해하는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적극 대응할 것임을 밝힌다”고 덧붙였다.
글 뿐 아니라 삼례읍이 아닌 개인명(완주로컬푸드 이사장)으로 자문한 법무법인 한 곳의 회신 내용을 첨부했는데, 하자있는 대리참석자의 추천에 이뤄졌다고 해도 삼례읍에서 확인한 이상 선거효력자체는 무효로 볼수 없고, 당선된 회장이 법적으로 자격을 유지하는데도 문제가 없다고 기록돼 있다.
권씨는 또 도내 한 일간지에서 ‘쌍둥이 형제 불법 선거 개입으로 지역사회 시끌벅적’이란 제목으로 자신의 인터뷰 등 이번 선거와 관련 한 내용이 보도되자, 페이스북에 ‘이 땅에 더러운 기레기들이 없어져야 이 나라가 제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라며 보도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듯한 글을 올려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이에 대해 권씨는 “기레기 언론은 도내 일간지를 지칭한 게 아니라 조·중·동을 말한다”며 “기자와 통화해서 오해를 풀었다”고 해명했다.
유씨는 권씨가 이장들에게 보낸 서신 내용에 대해 바로 잡아야 할 부분이 있다며 27일 A4 2장 분량의 글을 삼례이장들에게 우편 발송했다.
유씨는 ‘삼례읍 이장님 귀하’라는 제목의 글에서 “(권씨가 보낸)서신 내용 중에 ‘신성한 민주주의를 운운하며 마치 자신을 해하려는 의도처럼 묘사했지만, 저는 사실은 대리투표가 왜 진행됐는지를 묻고 싶다. 대리참석을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얘기하는 것은 대리 참석을 지시한 사실을 희석시키는 괴변이라고 생각한다”며 권씨의 주장에 반박했다.
유씨는 이어 “누가 봐도 문제가 되는 사람을 애초에 참석시키지 않았으면 시시비비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 아니냐. 그렇다면 불법 대리투표 지시를 과연 누가? 왜? 누구를 당선시키기 위해서였을까?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유씨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글과 함께 ‘선거무효’의견을 내놓은 4곳의 법무법인 자문 결과를 참고 자료로 첨부, 이장들에게 보냈다.
지난 달 26일 권씨는 전화통화에서 “내가 사임할 이유가 없다. 법으로 하려면 당선무효소송이나 이장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넣든가 하면 된다”면서 “추천과정에서 문제없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었고, 내가 이장에게 (후보자 추천)부탁을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행정에서 잘못한 것은 신분증 확인 없이 검인과정을 제대로 안 한거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사태는 지난 달 26일 오후 4시쯤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쌍둥이형제가 유씨와 삼례읍장 앞에서 ‘양심고백’을 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내용을 요약해보면 선거 전날(5일), 임모 이장이 이장인 쌍둥이형 박씨에게 전화를 걸어 투표를 부탁했는데, 박씨가 근무 때문에 못한다고 하자, 동생에게 대신 투표장에 내보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임씨를 삼례읍장실로 불러 사실 확인을 했는데, 임씨가 “형 인줄 알고 투표를 시켰다”고 말하자, 쌍둥이 동생이 “사실관계를 제대로 이야기 하라”며 발끈했다.
이 같은 쌍둥이형제의 양심고백으로 이번 선거가 명백한 대리투표에 의한 불법·부정선거라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앞서 지난 달 19일 이장인 쌍둥이형 박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제대로 일해보지 못하고 이장직을 사임 했다. 나는 솔직히 내 동생에게 위임장을 써서 보낸 것뿐이다”면서 “물론 과정은 잘못됐다. 시인을 한다. 금품이 오간 게 아니고 억지로 한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6일 뒤인 25일 동생은 전화통화에서 “형이 책임지고 이장을 사임하면 됐다. 어떻게 하자는 거냐. 뭐가 죽을죄를 지었냐. 재투표를 하던지 하면 된다. 내가 선생님(기자)에게 굳이 말씀드릴 이유가 없다”고 대리투표 의혹을 일축했다.
이렇듯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모르쇠’로 일관했던 것과 달리 최근 쌍둥이형제가 사태의 전말을 밝힌 것을 두고, 심적 압박과 함께 이장직 사임 등으로 자신들에게 죄를 덮어 씌우는, 이른바 ‘꼬리 자르기’로 마무리하려는 모습에 큰 분노를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선거와 관련, 삼례읍 주민 A씨는 “이장협의회장이 뭐길래 이렇게 삼례읍을 시끄럽게 하는지 모르겠다. 부끄럽다”며 “주민 화합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이장협의회장을 뽑는 선거가 오히려 주민들 간에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주민 B씨도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어떠한 행위도 용납되어서는 안된다”며 “다시 한 번 이장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이번 이장협의회장선거가 대리투표에 의한 불법 부정선거임이 드러난 가운데 관련자 처벌과 함께 공모 여부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더욱이 정치인과 기관장까지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지역 내 확산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