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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인물탐방) 화산면 종리 용소마을 김오순 이장

원제연 기자 입력 2022.10.14 09:56 수정 2022.10.14 09:56

주민들과의 두터운 신뢰 ‘이장’ 역할 척척
우체국·은행·면사무소 등 ‘1인 다역’ 톡톡

마을 주민들로부터 무한신뢰와 사랑을 듬뿍 받는 행복한 이장이 있다. 바로 화산면 종리 용소마을 김오순(66)이장이 오늘 소개할 주인공이다.

작년부터 용소마을 이장을 맡아 올해로 2년째 활동하고 있는 그는 종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고향을 한 번도 떠나 본적 없는 토박이다.

여기에다 마을 주민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슈퍼를 30년 가까이 운영했으니 숫자 개념이 탁월하고, 집집마다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를 꿰뚫고 있을 게다.

뿐만 아니라 제대로 공부하기 어려웠던 시절, 중학교를 졸업해 각종 서류 정리는 기본이다.
이만하면 마을 이장의 자격은 충분하다. 하지만 처음에는 거절했단다.

“작은 일들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농촌공사와 관련된 큰일은 여자이장으로서 해 나가기 어렵잖아요. 고민도 많이 했지만 주민들이 한 번 맡아서 해달라고 부탁하는데 거절할 수 없더라고요.”

그동안 큰 과오 없이 이장직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을 주민들의 신뢰와 사랑 덕분이라고 말한다.

이 가운데 김영숙(68)부녀회장은 든든한 파트너이자, 지원군이 돼주고 있다.

“부녀회장님이 옆에서 많이 도와줘서 이장을 하는데 수월합니다. 아마도 부녀회장님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거에요.”
↑↑ 주민들과의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1인 다역의 이장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는 화산면 용소마을 김오순 이장.
ⓒ 완주전주신문

그는 현재 화산 초입, 삼거리에서 마을 이름을 딴 ‘용소상회’라는 작은 점빵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1995년부터 가게를 시작했으니 햇수로 28년째다.

처음 문을 연 뒤 십년 넘게 평일, 주말은 물론 명절날이면 음료나 선물세트가 많이 팔릴 정도로 수입이 괜찮았다. 지금은 인근에 마트가 여러 개 생기면서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입은 크게 줄었다.

손님이 줄어 한가 할 법도 한데 김오순 이장의 하루는 바쁘게 지나간다. 직불금·농민수당 신청이나 백신·독감 예방 접종 안내, 마을 애경사 알리기, 공지사항 전달 등 이장 본연의 역할 외에 할 일이 많기 때문.

예를 들면 가게에 찾아와 물건을 맡겨 놓거나, 택배를 부쳐달라 하고, 마을 주민 전화번호를 물어도 보고, 119를 불러 달라 하고, 심지어 돈을 맡기거나, 찾아달라고 하는 등 주민들의 다양한 부탁을 기꺼이 들어준다.

그러니 김 이장은 ‘114전화번호부’, ‘우체국’, ‘은행(농협)’, ‘면사무소’, ‘119’ 등 1인 다역을 하고 있는 셈이다.

“동네 사람들이 해 달라는 것 다 해줘요. 귀찮기도 할 텐데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웃으면서 척척 다 해줍니다.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웬만한 남자보다 똑똑하고 일도 잘 합니다.”

김오순 이장에 대한 김영숙 부녀회장의 특급 칭찬이다.

“밥 못 먹고 지나가는 사람, 혼자 돌아다니는 사람, 밥 먹여 보내고, 돈도 쥐어주고, 환경미화원들 불러 ‘애쓴다’고 음료수도 주고, 좋은 일도 많이 합니다.”

옆에 있던 같은 교회에 다니는 구정희(80) 어르신도 부녀회장 말에 한 마디 더 보탰다.

가게를 오랫동안 하다 보니 주민들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주민들과의 신뢰가 두텁다는 방증이다.

김 이장이 워낙 주민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다 보니 잠깐이라도 안 보이면 마을에 비상이 걸린다.

실제 지난 8월, 무릎 수술을 하러 서울에 올라갔다. 거의 20일 가량 입원해 있다 보니 마을 주민들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걱정했고, 퇴원하고 집에 온 날, 종일 안부를 묻는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집에 찾아와 “못가서 미안하다”며 작은 성의를 표시하거나, 두 손을 꼭 잡고, 기도해 주고, 밥과 설거지를 해주는 등 주민들의 김 이장에 대한 깊은 애정과 따뜻한 마음이 보는 내내 가슴 뭉클하게 했다.

사실 김오순 이장의 얼굴을 보면 늘 행복한 미소가 가득하지만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12살의 어린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스물 여덟 살에 같은 고향 출신인 동갑내기 남편 주종연씨와 만나 결혼 후 아들 하나, 딸 하나 낳았다.

하지만 아들 용선군은 태어나자마자 선천성 심장병을 앓았고, 20년 넘게 고생하다 24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15억 원이라는 막대한 치료비가 들어갔지만 결국 살리지 못했다. 설상가상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남편마저 암 진단을 받고, 5년 치료 받던 중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아들을 살려보려고 땅을 팔고, 빚 속에 살았어요. 남편마저 잃고 나니 포기 하고 싶을 정도로 정말 힘들었죠.”

이렇듯 힘든 상황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유는 굳건한 신앙과 딸 보라(36)씨 때문이다.

보라씨는 오빠의 치료에 전념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어릴 때부터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지금까지 응석한 번 부리지 않았다.

오히려 어려운 가정환경은 보라씨를 일찍 철들게 했고,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초·중·고등학교 때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고,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거의 독학으로 준고시라 불릴 만큼 어렵다는 공인회계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현재 보라씨는 법무무 산하 기관인 정부법무공단에서 회계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모든 관심이 아들에게 쏠려 있으니 딸에게 제대로 사랑을 못줘 늘 미안하죠. 삐뚤어지지 않고, 잘 자라줘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학원 한 번 가지 않고, 스스로 공부해서 큰 시험에 합격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니 모든 게 하나님 은혜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딸이 엄마를 닮아 똑똑해서 공부도 잘하고, 남도 많이 도와준다”며 “지금은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해서 안부를 묻고, 필요한 것은 뭐든지 사주는 효녀”라고 치켜세웠다.
이처럼 보라씨는 김 이장에게 기쁨이자, 행복이다.

보라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엄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내가 만난 어떤 사람보다 강하다. 악의가 전혀 없고 누구랑 싸울 수 없는 분”이라며 “아직 결혼은 안 했지만 결혼을 해서 자녀가 생긴다면 우리 엄마같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엄마는 100점짜리 엄마”라고 덧붙였다.

이런 예쁜 마음씨를 가진 딸과 온 동네 사람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김오순 이장의 하고 싶은 말을 듣는 것을 끝으로 행복한 인터뷰를 마친다.

“항상 힘과 위로가 돼주는 마을 주민들, 그리고 소중한 내 딸 보라에게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부족하지만 마을을 위해서 힘닿는데 까지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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