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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동상골에 문화예술의 꽃을 활짝 피우겠습니다”

원제연 기자 입력 2022.02.18 11:56 수정 2022.02.18 11:56

(특집 / 연석산미술관 박인현 관장을 만나다)

동상면 동상로 1118-22에 위치한 연석산미술관. 전북대학교 미술학과 박인현 교수가 병풍처럼 펼쳐진 천혜의 비경을 뽐내는 연석산에 반해 지난 2016년 10월 말 경, 문을 열었다.

미술관은 개관 이후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 청년작가들의 활동 무대를 넓히고, 동상면을 널리 홍보하는데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이는 박 관장 자신이 가진 재능을 사회에 환원코자 하는 큰 뜻이 있어 가능했다. 올해 8월 정년퇴직 이후 미술관 운영에 집중할 생각이어서 앞으로 가 더욱 기대된다.


■ 그림은 나의 운명

박인현 관장의 고향은 김제다. 7살 때 전주로 나와 학교를 다녔다. 현재 전북대 미술학과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지만 어릴 때는 그림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축구선수를 꿈꿀 정도로 운동을 좋아했단다.

잠재돼 있던 그의 그림 능력을 깨워준 사람은 금암초 시절, 미술선생님이었다.

“미술수업시간에 인물을 잘 그리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 주셨는데요. ‘뻣뻣하게 그리는 것은 운동감이 없어 넘어질 때 찰나의 모습을 표현하면 재밌는 작품이 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런 그림 한 점을 과제로 내주셨어요.”

곧장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 공을 ‘뻥’차는 순간을 역동적으로 그려 제출했다. 그림을 유심히 본 선생님은 “네가 그렸니? 그림에 재능이 있다”며 칭찬했고, 끌려가듯 반강제적으로 미술반에 들어가게 됐다.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무엇보다 그림에 대한 관심이 하나도 없었는데, 칭찬을 들으니 어깨가 올라가고 기분이 좋았어요.”

이후 소년한국일보 주최 전국대회에 나가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대회 참가 족족 큰상을 휩쓸며 그림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때 받은 월계관은 보물 1호로 잘 보관하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하지만 당시 그림을 계속 그릴만한 가정형편이 안됐고, 부모님 반대까지 더해져 유야무야 시간을 흘러 보냈다.

금암초를 졸업하고, 전라중학교에 입학했다. 사실 초등학교 이후로 그림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접어뒀다.

그런데 2학년 때, 담임 교사가 환경정리한다며 교실을 꾸미는데 필요한 스크랩 등 좋은 자료를 가져오라는 말에 밀레의 ‘저녁 종’을 그려 냈다. 역시나 담임교사는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고, 그의 그림은 작품이 돼 태극기 밑에 자랑스럽게 내걸렸다.
ⓒ 완주전주신문


■ 그림의 길을 걷다

본격적으로 그림의 길을 걷게 된 사건이 있었다. 수학교사가 수업 도중 판서하다가 밀레의 ‘저녁종’을 보면서 “그림이냐? 사진이냐?”고 물었고, 반 친구들은 “박인현이 그린 그림”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그림을 잘 그린다”며“수업 끝나고 따라오라”고 말했다. 방과 후 수학교사는 그에게 “너 그림에 아주 소질이 있다.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며“전라북도에서 가장 그림을 잘 그리는 선생님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편지를 써 줄 테니 그 분을 한 번 찾아가라”고 덧붙였다. 시키는 대로 전주 동문사거리에 있는 선생의 화실을 찾아가 만났다.

바로 故 박남재 화백이었다. 잠깐 소개하자면 그는 전북 구상화단을 주도해온 대표적 원로작가로, 자연과 인물에 대한 탐구와 예술 혼을 담아 70년 가까운 화업을 일구고, 전북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국내 예술분야 중 가장 권위 있는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했다.

어째든 장문의 편지를 건네자마자 박 화백은 화실에 있는 각면 석고상을 그려보라고 말했다. 그냥 보이는 그대로 그렸다. 그림을 보면서 박 화백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건이 되는지 등을 물었다.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말에 박 화백은 “너는 내가 지도를 해줄 테니 와서 그림을 그리라”며 흔쾌히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림을 배우면서 진로에 대한 확고한 목표가 생겼다. 중학교 졸업 후 전주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때는 학원대신 미술교사의 각별한 배려로 미술실기실을 활용해 입시를 부지런히 준비했다.

홍익대학교에 입학, 서양화로 시작해 2학년 말에 동양화로 전공을 바꿨다. 이유는 우리 것에 대한 동질감이었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으로 동양화 사군자를 수업시간에 배웠어요. 사군자를 배우면서 화선지와 먹이 만났을 때 화선지에 스며들며 번지는 느낌이 아주 좋았어요.”


■ 동상면과 인연을 맺다

결혼을 하고, 대학교수가 돼 여름이면 동상면 계곡에 와 가족들과 물놀이를 했다. 지금 동상면에 살게 된 데에는 전주와도 가깝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에다 가족들과 좋은 추억을 만든 곳이기도 했지만 은사였던 남천 송수남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사실 퇴직 후 작업실이 있는 경기도에서 정착하려 했다. 그런데 문득 송수남 선생님이 떠올랐다.

“고향인 전주를 떠나 서울에서 오랫동안 생활하셨는데, 결국 고향을 잊지 못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고향쪽으로 거처를 알아봤죠.”

낯설지도 않은 곳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5년 동안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시내와 가까운 곳에 오지를 경험하고, 자연 친환경요소가 그대로 남아있는 곳은 전국 어디에서 찾아볼 수 없어요. ‘바로, 이곳이 적소다’라고 판단해서 동상면으로 온겁니다.”

처음에는 미술관은 꿈도 꾸지 않았고, 그저 작업하는 공간 정도로 얻으려 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와서 보니 문화 소외지역이라는 생각이 점점 커지면서 책임감도 더욱 더 느끼게 됐다.

“내가 그동안 그림을 통해 먹고 살았고, 직장을 잡고 혜택을 봤잖아요. 그러지 못한 작가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래도 나는 혜택을 받고 살아왔는데, 내가 그냥 받고만 해서 되겠는가?라는 질문을 제게 던졌어요.”

곧바로 박 관장은 자신이 가진 재능을 사회에 환원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문화공간을 지어 지역 주민이나 방문객들에게 문화예술을 통해 소통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게 바로 나의 역할임을 깨달았죠.”

생각과 동시에 실천에 옮겼다. 맨 처음 반대했던 아내도 그의 추진력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모아 무작정 건물을 지었다.

건축에 ‘건’자도 몰랐던 그는 곁눈질 해가며 하나씩 기술을 배우다 보니 웬만한 것은 기술자 도움 없이 혼자 척척 해냈다.

이렇듯 우여곡절끝에 토지 계약한 이후, 1년 만에 연석산미술관 문을 열게 됐다.
ⓒ 완주전주신문


■ 개관 후 5년간의 성과

“젊은 예술인들을 위한 문호개방과 활동무대 확장, 그리고 지역민들에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삶의 질 향상과 동시에 지역활성화에 기여한다는 것입니다.” 연석산미술관의 설립 취지다.

개관후 미술관은 설립취지에 걸맞게 동상면을 널리 알리고, 작가들과 주민들의 소통 및 체험공간으로서 톡톡히 활용됐다.

실제 젊은 청년작가들이 중심이 된 기획초대전을 120여회 열었고, 지난 2018년부터 전북문화관광재단 창작공간(레지던스 프로그램)지원을 받아 미술관 사업을 진행, 도내 5명, 도외 12명, 외국 8명 등 총 25명의 국내외 입주작가를 배출했다.

이들은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 창작활동은 물론 서로 간 소통을 통한 현대미술의 다양한 정보교환 및 네트워크 구축 등으로 서로의 발전을 도모했다.

이는 연석산미술관이 이들 활동에 축이 돼 명실공히 글로벌 창작산실로 자리매김하는데 나름의 역할을 했다는 평가로 이어졌다.

또한 지역민들을 위한 예술교육사업으로 ‘우리그림민화무료강습’을 하고 난 뒤, 결과물을 전시하고 수료증도 수여했다. 아울러 지역어르신 공경프로젝트 사업으로 3년 동안 39명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초상화를 제작하고, 삶의 이야기를 기록화 했다.

이어지는 사업으로 동상골의 명소와 인물을 조명하기 위해 ‘동상골의 삶-어제와 오늘’전을 열었다.

시공간을 초월해 동상골의 자랑거리들 중 동상골 발전을 위해 일찍이 공헌하신 분들과 진취적 사고로 솔선수범하신 현존 인물들, 그리고 역사성 짙은 대표적 명소와 명물, 특산물 등을 화폭에 담고 기록으로 정리했다.

참고로 지난해 선정된 대상 중 인물로는 전 김진갑 동상면우체국장, 현 꿈나무체험관찰학습장 박영환 대표, 임진희 열린마을농촌유학센터장이, 명소로는 만경강발원지 밤샘과 대아·동상 저수지, 명물로는 동상곶감 시조목과 학동 300년 느티나무, 학동교회 등이 있다.

이외에도 지역의 유일한 초등학교인 동상초와 협업으로 ‘동상골 어린이 그림잔치’전을 열어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의 심어주는 계기를 마련했다.


■ 앞으로의 계획

“퇴직 이후 연석산미술관 운영에 전념할 생각입니다. 앞서 밝혔듯 미술관 설립취지에 맞게 지역 주민의 삶의 향상과 젊은 청년 작가 활동무대 확장, 그리고 동상면을 전국에 알리는데 계속해서 노력할 계획이고요. 특히, 전북권 아트스탁 선정 작가로서 미술품 거래의 대중화를 통해 미술시장 전반의 규모가 확대되고 신진작가에 대한 미술시장 투자 활성화를 위해 보다 많은 관심을 쏟을 생각입니다. 참고로 아트스탁은 회화, 조각, 서예, 공예 등 각종 미술품을 온라인에서 분할 공모를 개시해 여러 명이 공동으로 구매·소유할 수 있는 투자 방식의 온라인 미술품 거래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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