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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 칼럼니스트 |
ⓒ 완주전주신문 |
완주군민과 내년 봄 지방의원이나 자치단체장에 꼭 뽑히고 싶으면 늘 열려있는 역사의 창문 안에 들어가거나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서기 바랍니다.
2021년 11월 20일 무렵 대둔산 동쪽 이치(배재) 마루 터 너른 자리에 ‘의병장 황박 추모비(追慕碑)’를 세웠습니다. 이는 11명의 군의원과 완주군수(박성일)의 최대 공적입니다.
임진왜란(1592) 때 △곰치(熊峙:웅치)에서 1000인 △금산싸움에서 700인 △이치(梨峙:이치, 배재)에서 400인이 죽었습니다. 모두 며칠 사이의 일이지요.
왜장 고바야시가와 다가가게(小早川隆景)는 배재(이치·이현)를 넘으려고 진산을 거쳐 재에 기어오릅니다. 고개만 넘으면 호남과 호서가 주먹 안에 들어오는 대승리 의기가 충천했습니다. 이를 안 우리 선봉장이 가로막았으나 부상을 입었고, 오직 후비군 황박 부대만이 남았습니다.
황박 장군은 하늘과 군사에게 외쳤습니다. “나와 우리 군이 죽으면 나라를 건지고, 우리가 살면 200년 종묘사직과 조선은 사라진다.”
정오부터 해질 무렵까지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총소리가 멈춰 살펴보니 황박 장군(전라 방어사)이 보이질 않습니다. 전사했습니다. 그 때 나이 스물아홉. 세상에 남긴 건 50대 과부 어머니(전주최씨), 20대 아내(전의이씨)와 열 살 아래 두 아들(수억·수백)뿐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430년. 씨족 일부를 빼고는 전북 도민, 군민, 운주면민도 잊어 가는데 관계자들이 추모비(追慕碑)를 세워 이치 고개가 환해졌습니다.
황박의 본관은 우주, 우주는 왕궁-삼례-봉동이지요. 완주산업단지가 옛 우주현(紆州縣)의 노랑자위입니다. 가정인데 완주와 전주가 통합을 하는 경우 그 이름을 ‘우주시(紆州市)라 해야 맞다’는 의견까지 나돕니다.
남북 대화가 잘 되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남한에 오는 경우 ‘이치와 모악산’을 거쳐 갈 것이랍니다. 그의 할아버지 김일성은 유격 대장이었습니다. 일본군에 몇 겹으로 포위됐을 때 “나는 살아야 한다. 내가 죽으면 부대는 사라지고, 부대 없으면 일본군과 싸워 이길 수 없다. 그러면 독립은 불가능하다.” 이 때 29세 황박 장군과 비슷한 나이였습니다. 김정은은 천지연시를 열 번이나 갔답니다. 죽고 살기만 다르지 황박-김일성은 같은 점이 많습니다. 이치를 거쳐 모악산 전주김씨 시조(김태서) 묘에 성묘하고 돌아가도 북한 일찍 들어갑니다.
박성일 군수는 군수 두 번만 하는 좋은 관례를 남긴답니다. 완주 역사의 창틈으로 그 안쪽을 들여다보면 감동할 일이 많습니다. 곧 진주소씨 소제(蘇濟)의 추모비도 서겠지요? 새 역사가 자꾸 나옵니다. 추모비 제막식에 정충신 황진 후손이 초청돼야 합니다. 추모비 건립 사실을 알면 일본 기자 현장에 당장 뛰어 올 것입니다. 일본 수상 ‘기시다 후미오(きしだふみお, 岸田文雄)’ 그 얼굴을 보시오. 누구 닮았나요?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