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드라마 ‘왔다 장보리’와 tvN 드라마 ‘스타트 업’에 각각 작품을 협찬, ‘토끼 시리즈’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송지호(47)작가.
토끼 한 마리가 꽃내음에 취해 있는 ‘햇살 좋은 날’, 두 마리 토끼 커플이 다정하게 포옹하고 있는 ‘행복’,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워 있는 ‘선데이’ 등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오면서 행복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학창시절, 대회란 대회에 참가해 각종 상을 휩쓸며, 한국 전통 수묵화가로서의 이미지를 나름대로 구축했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익살스런 ‘토끼’를 그렸다.
처음엔 시선이 두려웠지만, 그는 용기를 내 도전했고, 인정을 받았다. 앞으로 일상 속 대중과 소통하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송지호 작가를 작업실이 있는 둔산리 렉시안 아파트에서 만났다.
■ 어려서부터 내 꿈은 화가
전남 고흥에서 2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워낙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꿈도 화가로 정했다.
“배고팠던 시절이라 지금처럼 책과 인터넷이 없어 달력 그림을 보고 신문지에 그린 다음 벽에 붙이며 놀았어요.”
그의 아버지는 화가라는 직업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그림 그리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만 어머니는 적극 응원해줬다. 그러니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어머니에게 힘이 되고 싶어 방과 후에는 매일 책가방을 벗어 놓고 집안일을 도왔다.
■ 지독한 연습 벌레
중학교 때 미술선생님으로부터 그림 재능을 인정받아 광주예고 입학을 추천받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가정방문 당시 어머니를 만나 “예고를 보냈으면 좋겠다”며 적극 권유했다.
예상대로 어머니는 반대하지 않았고, 아들에게“하고 싶은 것을 하라”며 어깨를 두드려줬고, 그 덕분에 꿈을 향해 한 걸음 더 내디딜 수 있었다.
예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신과 실기 시험을 봐야했다. 그런데 시골에 살다보니 학원 근처에도 가보지 않아 걱정이 많이 됐다. 소묘와 수채화를 독학도 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서 “기본적인 것은 해야 된다”라는 생각에 처음으로 고흥 읍내 학원에 가 2~3개월 공부하고 시험을 치러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고등학교에 입학, 발묵(潑墨), 먹향이 좋아 한국화를 선택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시험을 봤는데, 맨 처음에는 친구들과 실력차가 커 수업을 따라가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저는 산골짜기에 살다보니 학원에 못 다녔는데, 친구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광주 시내 학원에 젖어있다 보니 힘들 수밖에 없었죠.”
다른 친구들은 방과 후에 입시학원을 다녔지만, 20만원이 넘는 학원비를 감당해 낼 수 있는 여건이 안됐다. 대신 학교 뒤편에 1·2·3학년이 뒤섞여 작업을 할 정도로 공간이 크고, 시설도 잘 갖춰진 건물이 있어, 매일 정규수업을 마친 5시부터 9시까지 그림을 그렸다.
체계적으로 배운 친구들을 따라잡기 위해 그곳에서 선배들이 그리다 버린 채본을 보고 지독할 정도로 연습을 반복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3~4개월 만에 따라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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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밖에 난 몰라
고등학교 1학년 후반부터 3학년 때까지 각 대학에서 주최하는 실기대회에 참가했다. 상금과 장학금을 받을 수 있고, 대학입시 가산점도 붙었기 때문.
그는 참가하는 족족 큰상을 휩쓸었다. 그러자 학교 명예를 빛냈다며 학교 복도에 그의 이름이 새겨진 액자를 걸어 놨다. 무엇보다 부친이 직접 표현은 안했지만 동네 어르신들과 술 한 잔 하면서 아들 자랑을 했단다.
실력이 있다 보니 졸업 후 서울에 소재한 대학으로 갈 수 있었지만, 가정 형편 등을 고려해 포기하고, 가까운 원광대에 진학했다.
“그 때 당시 우리 집에 4명이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어요. 시골에서 대학생 4명을 가르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아쉬웠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대학에 들어가 모두가 꿈꾸는 ‘캠퍼스 잔디’는 밟아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데에만 집중했다.
■ 시련은 있지만 포기는 없다
1학년 마치고 군입대 했다. 그런데 2학년 복학을 앞두고 큰 사고가 났다. 제대 후 부친 기일에 내려와 차를 타고 물건을 찾으러 가는 과정에서 앞으로 달려오는 차를 피하다 가정집 벽을 들이 받은 것.
당시 조수석에 앉아있던 그는 차 유리가 깨지면서 얼굴에 큰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다. “아버지 제삿날에 사고가 났으니 가족 모두 놀랐어요. 모두 죽었다고 했는데 살았으니 기적이죠.”
7번의 대수술을 한 뒤, 사고 두 달 만에 얼굴에 감아놓은 붕대를 풀었다. 순간 자신의 얼굴을 보니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는 붕대 풀고 옥상에 올라가 떨어져 죽고 싶었어요.”
하지만 군생활 할 때 부친을 여의고 시골에서 홀로 자식들을 키우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마음을 추스렸다.
“뒤돌아보니 어머니가 지금 내 나이보다 어릴 때 홀로 되신 거에요. 그러니 제가 나쁜 생각을 가질 수 없죠.”
이후 모친은 시골 일을 친척에게 맡겨놓고 무작정 광주로 올라와 시장에서 장사하며 5남매를 가르쳤다.
■ 딸 현지 통해 토끼 만나다
대학으로 돌아온 그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죽기 살기로 작품활동에 매진했다. 그 무렵 지금의 아내 이수현(45)작가를 캠퍼스 커플로 만났다. 얼굴을 수술한 탓에 햇빛을 보면 안 돼 모자를 꾹 눌러쓰고 다녔는데도 그 모습이 나쁘지 않았던지 아내도 그의 연인이 돼주었다.
졸업 후 조교를 하다 익산에 교습소를 차렸다. 몇 년 하다 결혼을 결심하면서 마침 교직을 준비하던 아내에게 학원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이후 학원 자리를 알아보던 중 우연히 봉동읍 둔산리에 사는 고등학교 후배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인근에 비어있는 2층 상가 건물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다음 날 계약했다.
그렇게 둔산리에 터를 잡고, 몇 년 동안 학원을 운영을 하면서 과도기가 찾아왔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그림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고, 늘 제자리만 걷는 것만 같은 생각을 갖게 된 것.
이와 맞물려 우진문화재단이 주최한 청년작가 공모에서 3~4년 계속 낙선하다 보니 ‘정말 그림을 계속 그려야하나?’, ‘그만 둬야하나?’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됐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이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하며 청년작가에 응모했는데 당선 된 것이다. “놓지 말고 계속 그림을 그리라는 하늘의 암시였나 봐요.”
또 하나의 기회는 아내 이름과 그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지은 딸 현지(14)가 생긴 후 얻었다. 현지는 토끼해에 태어났다. 송 작가 역시 토끼띠다.
“‘토끼띠’라는 딸과의 공통분모로, 일상의 이야기들을 책으로 만들면 재밌겠다 싶었죠. 그래서 토끼 시리즈를 시작하게 됐어요.”
■ 새로운 소재에 눈 떠
처음에는 작게 그렸다. 그러다 시리즈화 하면서 커졌다. 송 작가는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을 토끼에 인입해 하나의 장면처럼 그려냈다. 작품에서 토끼는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먼저, 토끼의 이름은 ‘행복’이다. 또한 아빠 토끼는 파란색 스카프를, 아기 토끼는 빨간색 스카프를 각각 목에 두르고 있다. 어느덧 토끼 시리즈 작품이 200여 점이나 모아졌다.
딸 현지가 성인이 됐을 때 성장기처럼 이야기책으로 엮으려 한다. 토끼를 그리기 전에는 여느 작가와 똑같이 무거운 소재로 이상적인 것을 그렸다.
당연히 사람들은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고, 자신조차 어려워 소재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그 무렵, 딸 현지가 생기면서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에서 재미를 찾고, 아이와 가족이 연관된 새로운 소재에 눈을 떴다.
■ 송지호, 세상에 이름을 알리다
완주에 사는 작가와 인연이 돼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에 작품을 협찬하게 됐다. 방송 이후 송 작가의 블러그에는 ‘작품을 사겠다’는 댓글들로 넘쳐났다.
원작은 팔지 않고, 그의 보물창고에 보관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아기가 그 작품을 안고 울어서 눈물 자국이 많았어요. 닦고 보수하느라 힘들었지만 의미가 있는 그림이라 안 팔기 잘했어요.”
이후 tvN드라마 ‘스타트 업’에도 작품을 협찬했는데, 방송을 본 지인들이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 대답해 주느라 바빴단다.
송 작가는 원래 아트 상품에 관심이 많다. 방송이후 아트상품 만드는 곳에 찾아가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사실 ‘토끼’라는 캐릭터를 처음 내놓았을 때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고, 겁이 났다. 한국의 전통적인 수묵화를 그려 나름대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했는데, 갑자기 이상한 토끼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혀 다른 작품을 그려 낯설고 두려웠는데 생각해 보면 그러한들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굳이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더라고요. 나한테 도움도 안되고요.”
■ 성실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는 ‘미래소년 코난’, ‘이웃집 토토로’ 등을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일본 애니메이션 작가를 좋아한다. 그처럼 어른, 아이 모두 좋아하고, 감동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단다.
또한 편안하고 대중적인 그림, 즐거움을 주면서 선한 이미지의 작가로 남고 싶은 게 그의 바람이다. 전시회에도 욕심이 많다. 익산 원갤러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등록된 갤러리에서 개인전 26회를 개최했지만 “1년에 한 번씩은 개인전을 꼭 열겠다”는 계획은 앞으로도 변함없다.
그렇다고 대충 작품 수 채워서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제 그림 그리는 스타일은 공이 들어가는 겁니다. 나를 보여주는 건데 소홀히 할 수 없죠.”
그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실천한다. 특이한 것은 ‘멍’때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순간에 생각이 정리가 되기 때문이란다. “멍 때리는 것도 작업의 연장이죠. 멍때리다 뭔가 생각 나면 노트에 드로잉합니다. 나중에 작업에 중요한 바탕이 되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최종목표를 물었다. “동화책을 만들고, 작업실을 갖는 것입니다. 동화책은 곧 이뤄질 것 같아요. 성실히, 꾸준히 하다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