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기르고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체험, 관광과 연계하는 6차 산업으로 키우겠습니다.”
서른 두 살, 젊은 농사꾼 이강훈씨의 당찬 포부다.
이 씨는 봉동읍 구미리 소재 화훼 농장 ‘청운농원’ 이기성(64)·김분홍(60) 부부의 2남 중 장남이다.
부친은 35년 넘게 꽃을 재배하고 있고, 현재 한국백합생산자협동조합 이사장, 완주화훼연구회장 등을 맡고 있을 만큼 화훼 분야에서는 잔뼈가 굵다.
또래 친구들은 탄탄한 지원군인 아버지를 둔 덕에 비교적 좋은 환경 속에서 안정적으로 농사를 짓는다며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에서 화훼분야 만큼은 최고가 되싶다며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해 놓고, 열심히 달음질하고 있다.
■ 한농대에서 화훼농 첫 발
젊은 화훼농 이강훈씨의 집은 봉동읍 구미리다.
집 근처 4500여 평 규모의 온실 속에서는 부모님이 평생을 일궈 자식과도 같은 백합, 튤립 등 다양한 꽃들이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사실 부친의 권유도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꽃을 보면서 자란 탓에,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졸업 후 전북대 원예과에 입학했다.
화훼분야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어 원예과를 선택했지만 과수와 채소까지 광범위하게 배우다보니 혼란이 왔다.
더욱이 자신처럼 부모님이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친구들이 없고, 대다수 다른 과로 편입을 생각하다보니 학업도 점점 흥미를 잃었다. 결국 2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군 입대를 했다.
전역 후 진로에 대해 부모님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끝에 2학기 복학을 포기하고, 화훼만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국립 한국농수산대학교 입학을 결정했다.
그렇게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기숙사에서 나와 부모님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열심히 일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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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중한 만남 ‘일곱색깔 무지개’
2016년 2월 학교를 졸업했다. 남들은 취직이나 진로를 고민해야 했지만 그는 다른 선택지 없이 부친의 농장에서 일을 계속했다.
그 해 지(知), 덕(德), 노(勞), 체(體)를 이념으로 하는 4-H에 가입했고, 이듬해에는 ‘작지만 강한 농업’을 표방하는 농업기술센터의 강소농 교육에도 참여했다.
활동을 하면서 완주의 젊은 농사꾼들을 알게 돼 친목도 쌓고 농사와 관련해 다양한 정보교류도 이어갔다.
“다른 분야에서 농사를 지었지만, 비슷한 나이 또래라서 말도 편하게 하고 서슴없이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정말 친형제처럼 끈끈했죠. 여러모로 강소농 교육이 제가 성장하는데 도움을 많이 줬어요.”
강소농교육에 참여하면서 만난 30~40대 젊은 농부 7명이 모여 만든 ‘일곱빛깔무지개’는 2019년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다 지난해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만남보다는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챙기고 있단다.
■ 완주4-H회장, 사회생활 밑거름
농업기술센터 소개로 지난 2016년 완주4-H에 가입했지만 본격적인 활동은 2017년부터다.
회원으로 활동하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회장을 맡았다. 취임 당시 회원이 20여명이었으나 현재 45명으로 늘었다.
“회원으로서 자부심을 갖도록 현판을 달아 주고, 연탄봉사로 지역사회 환원에도 관심을 갖고, 그리고 인력이 부족할 때 품앗이로 짐을 덜게 하는 등 함께 땀 흘린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연시총회를 끝으로 회장직을 내려놓는다. 지나고 나니 아쉬움도 남는다.
공동과제포로 토지 500~600평정도 임대해서 농산물을 재배한 뒤, 수익금을 지역사회에 기부하려 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이다.
■ 수기 공모, 최우수상 받아
연초부터 이씨에게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한국농수산대학교에서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극복 수기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
그는 실제 화훼 농사를 지으면서 느꼈던 것들을 토대로 코로나19 시대를 이겨내는 여러 방법을 수기에 담았다. 먼저, 홍수출하를 피하고 분산출하로 변화해야한다고 제안했다.
“꽃이 졸업식을 즈음해 집중출하 되는데 이 시기에 맞춰 화훼농가는 많은 양의 꽃을 수확합니다. 그런데 작년에는 코로나19가 터져 판매도 못하고 가격도 폭락해 농가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한 번에 5만송이를 졸업이나 입학 시즌에 출하하지 말고, 일주일에 1만송이씩 나오게 하는 등의 분산출하에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행사가 줄고, 대면접촉이 어렵게 되는 만큼 온라인 판매를 통해 소비를 촉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씨는 코로나19상황이 지속되자 지난해 5월부터 농산물 카페,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등 온라인 판매에 집중했다.
“제 나름 대로 구성한 박스를 제작해 온라인에 올려 놓으니 하루 평균 100개 이상은 판매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올린다고 바로 늘어나는 게 아니라 좋은 꽃을 꾸준히 판매하다 보면 언젠가는 소비자들이 알아줄거라 확신합니다.”
이 씨는 이제 온라인에서 어엿한 ‘사장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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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땀방울 수기에 담아
온라인 뿐 아니라 로컬푸드 매장 판매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기존에는 완주군 내 2개 매장에서만 판매했지만, 반응이 좋고, 지인들의 권유도 있어 지금은 전주 소재 매장까지 15군데로 늘렸다.
물론 소포장하려면 품이 많이 들고, 배달하려면 시간도 많이 소요되지만, 코로나19시대에 농부는 부지런함을 장착, 다양한 판매처를 확보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수기에 기록했다.
무엇보다 이씨는 “남들이 내놓지 않는 시기에 출하하는 등의 방법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해야한다”고 수기를 통해 조언했다.
예를 들면 튤립의 경우 온실에서 빠르면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볼 수 있는데, 자신은 8월에 나올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8월에는 튤립을 볼 수 없다. 하지만 부친과 함께 3년간의 시행착오를 겪고 난 끝에 8월 출하에 성공했다.
“이 시기에 수입꽃 외에는 국내에서 출하가 될 수 없어요. 남들이 출하하지 않을 때 저희는 출하할 수 있으니 수입꽃을 대체할 수 있고, 그 만큼 경쟁력도 갖추게 되는 거죠.”
■ 면적보다 기술개발 우선 둬야
이씨의 농장에서는 백합을 비롯 튤립, 후리지아, 히야신스, 코아니 등 10여 종류의 꽃이 생산된다.
백합은 한 번 심어서 수확을 한 번 밖에 못한다. 또 수입을 해야한다. 가격이 안 맞으면 리스크도 크다.
반면 튤립과 후리지아가 효자 품목이라는데, 후리지아의 경우 씨앗을 자체 생산할 수 있고, 한 줄기에서 다섯 번까지 수확한다. 단위면적당 심는 개수도 많다는 게 강점. 튤립도 비슷해 소득을 올려주는 작목이다.
이렇듯 중요한 것은 작은 면적에서도 적게는 2번에서 많게는 4번까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술이 개발돼야 한다는게 이씨의 주장.
예를 들면 1천평의 하우스에서 4번을 농사지으면 4천평을 가진 것과 같다는 것이다.
■ 내 꿈은 6차 산업 인증
품질 좋은 상품을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시장에 내놓은 상품이 소비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면 반드시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게 지론이다.
두 번째 목표는 꽃을 생산하고,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와서 체험하고, 음식도 먹고, 관광하는 6차산업 인증이다.
“사계절 관계없이 온실에서 꽃을 구경하고, 구입도 하고, 커피와 식사도 즐기고, 인근 토마토와 딸기, 생강 등 농특산물과 연계해 다양한 체험을 하는 코스로 만들면 일자리도 늘고, 지역도 활성화 될 것입니다.”
이 씨는 3~5년 계획을 세우고, 현재 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좌우명으로 삼는다는 젊은 농부 이강훈씨.
가는 길에 시련이 있어도 좌우로 흔들리지 않고 게으름 없이 묵묵히 홀로 정진하다보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특별히 꽃을 판매한 뒤 수익금 일부를 적립해서 취약계층 아이들을 위해 기부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도 밝혔다.
끝으로 자신과 같은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도 전했다.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르니 저는 긴터널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터널 끝은 있으니 처지를 비관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뒤바뀐 만큼 무엇보다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부지런히 일하다보면 힘든 시기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