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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칼럼니스트 |
ⓒ 완주전주신문 |
사전에 ‘훌륭하다’가 ①매우 좋다(splendid) ②칭찬할만하다(admir able) ③퍽 아름답다(wonderful)이다. 영어는 제쳐두고 음력 섣달이니 함께 알아두자고 소개한다.
황(黃) 아무개가 서울생활을 접고 고향에 왔다. 당시는 ‘귀농(歸農)’·‘환농(還農) 소리 없던 때라 보는 대로 서울서 ‘내려왔다’라고 했다.
처음 손 댄 게 논을 파 미꾸라지 가르기. ‘미친 짓’ 소리가 나왔다.
비 많이 내리면 어디론가 빠져나갔고, 가물면 물이 모자라는데 사료까지 사 나르자 미치기는 미친 짓, 진짜 미칠 일이었으나 점차로 기술력이 늘고 단골이 생겨 이젠 ‘귀신같은 사람’ 소리를 듣는다.
메기도 길러 추어탕·메기탕 업계에서 알아주는 전문인이다.
밭엔 과목을 심었고 벼농사도 잘 해 가을이면 형제와 어머니께 골고루 보내니 이게 진짜 ‘로컬푸드’이다.
모친 생일이면 서울 식구 내려오라 하고 고모·내사촌(內四寸)도 불러 고기 굽고, 지져내며, 헤어질 땐 이것저것 들려 보낸다.
애경사 찾아다니며 금초 사초 동네일 잘하니 이장(里長)에 추대되어 명인(名人)대접을 받는다.
시·군마다 이런 인물이면 △좋은 사람 △옳은 사람 △아름다운 사람 △쓸모 있는 사람 △‘훌륭한 사람’ 소리 따른다.
황군(黃君)에겐 가정사 남 다른 점 하나가 더 있다. 실은 미꾸라지 키우러 온 게 아니라 ‘큰어머니 봉양(奉養)’ 때문이었다.
아버지 장가들어 여러 해인데도 아내 출산이 없자 어른들이 서둘러 새장가를 보내어 새 부인이 4형제를 낳았고 이 식구 서울로 이사하자 시골엔 큰 어머니만 홀로 남아 늙는데 이 모습을 본 셋째 아들인 내외가 ‘외로운 시골 큰어머니를 어떻게…?’ 결국 부부는 어린 애 둘을 데리고 ‘내려왔다’.
어려서 나갔기에 논밭 구별조차 어려운 초보 농부가 ‘미꾸라지를 키운다’하니 ‘미쳤다’ 소리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무모한 도전 이런 험로에 들어섬은 오직 ‘큰어머니 봉양’ 때문이었다.
큰어머니는 살판났다. 자기 배 아파 난 아들 아니며 며느리는 더욱 더 그렇다.
그런데 손자가 할머니 할머니 불러주니 사람 사는 집안이 됐고, 부엌에 들어갈 일 줄었으며, 병나면 모시고 다니니 효자(孝子) 효부(孝婦)소리가 온 고을을 덮었다. 인정이 밭아 생모(生母)도 모르쇠 하는 집안 있고, 명절증후군 미친 병마가 들끓어 며느리들 달아나는 세상에서 황군 내외는 보기 드문 은군자(隱君子)이다.
전엔 이런 인물을 위해 나라에서 정문을 세우라 명했다. 완주군에 효자·효부·열녀 많은 집안은 전주유씨(全州柳氏)더라. 인후동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 전주최씨 닮아서인가?
화산면 가양리 유길자는 서른둘에 남편과 사별, 이번 설이면 여든두 살 50년을 혼자 버티며 살았다. 이런 인격 인물들이 훌륭하지 않나? 설날 절 받아 마땅하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