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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우주골 바람소리 (8)

완주군민신문 기자 입력 2012.08.31 13:39 수정 2012.08.31 01:39

독립 영웅 ‘양칠성(梁七星)’ 씨

ⓒ 완주군민신문
양칠성(梁七星:창씨명/梁川七星) 씨는 1919년 생 전북 완주 출신이다.

양 씨는 인도네시아의 ‘독립 영웅’으로 자바 섬 ‘국립묘지’에 묻혀있다. 1942년 3월 일본군이 인도네시아를 점령했고 양칠성 씨는 그 때 상륙했다. 인도네시아는 350년 동안 네덜란드의 지배하에 있던 땅이다.

일본군 양칠성 씨는 그곳 포로수용소에서 ‘감시업무’를 맡았고, 당시 한국인 감시원만도 1400명이었다.

양칠성 씨는 ‘팡에란 바팍(왕자부대)’ 게릴라 부대를 이끌어 인도네시아의 독립운동을 도왔다. 1945년 일본 패망으로 독립 전망이 밝게 보일 때 네덜란드군은 ‘인도네시아 식민지’를 되찾으려고 싸움판을 벌렸다.

독립군 편인 양칠성 씨는 1948년 네덜란드군에 붙들려 그해 8월 총살당했으며, 험하게 죽은 양씨의 시신은 공동묘지에 묻혔다.

세월이 흘러 그와 함께 독립투쟁을 벌였던 인도네시아 ‘동료’들이 정부 요직에 오르면서 양칠성 씨를 ‘독립 영웅’으로 인정해 1975년 유해를 ‘국립묘지’에 이장했고, 1995년 그의 묘비 일본 명 ‘양천칠성(梁川七星)’을 당당한 한국 성명 ‘양칠성’으로 고쳐 세웠다.

이 얘기는 김종익이 번역한 책《적도에 묻히다》에 나온다. 1970년대 일본인 원작자 ‘무라이’ 교수와 ‘우쓰미’ 교수가 “동남아에서 근무했던 조선인 군무원의 삶을 추적하다 알아냈다”고 한다.

이들은 “포로감시원 중 일부가 비밀 결사체 ‘고려독립청년당’을 만들어 1945년1월4일 포로수용소에서 의거한 사실도 확인했다”는 것이다.

1975년 현지에서 일본인 3인이 ‘독립 영웅’에 추대 될 때 ‘무라이 교수’는 일본어 통역을 맡았었고, 그중 하나의 신원이 애매해 추적하던 중 ‘조선인’임을 알아냈다.

감시원을 지낸 조선인 단체 ‘동진회’와 유족을 찾아다니며 확인한 사실이다.

완주군 출신이 ‘인도네시아의 독립 영웅’이고, 마침 오늘이 ‘국치일’이다. 그 유족이 궁금하다. 연락이 되었으면 한다.

/이승철=국사편찬위/史料조사위원(esc269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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