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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보물창고 같은 여행길

김성오 기자 입력 2012.08.22 16:26 수정 2012.08.30 04:26

송광사·위봉사 등 전통사찰의 보고
위봉폭포·위봉산성 등 볼거리 풍성

막바지 피서나 가족나들이를 계획하고 있다면 역사와 전통 그리고 문화를 한 곳에서 만끽할 수 있고 즐거움이 있는 소양면을 소개하고 싶다.

특히나 소양면에는 천년사찰 송광사와 위봉사 등 전통사찰이 위치해 있어 시간이 허락한다면 자녀들과 함께 탬플스테이를 참여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아울러 수려한 산세에서 쏟아지는 계곡물은 손만 담가도 뼈 속까지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맑고 깨끗하다.

또 인근에는 ‘순두부’ 등을 비롯한 음식점들이 즐비해 가족단위 나들이객들이 최고의 추억을 만들기에 안성맞춤이다. 이 여름이 지나가기 전에 꼭 한 번쯤은 가볼만한 나들이 코스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송광사

송광사는 전통역사의 산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보물과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는 천년고찰이다.

이 절은 통일신라 경문왕 7년(867)에 도의가 처음으로 세운 절인데, 그 뒤 폐허가 되어가던 것을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가 제자를 시켜서 그 자리에 절을 지으려고 했지만, 오랫동안 짓지 못하다가 광해군 14년(1622) 응호·승명·운정·덕림·득순·홍신 등이 지었다고 한다. 이후 인조 14년(1636)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절의 확장공사가 있었고 큰 절로 번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송광사 전경
ⓒ 완주군민신문

보물 제 1243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기록에 따르면 조선 인조 14년(1636)에 벽암국사가 다시 짓고, 철종 8년(1857)에 제봉선사가 한 번의 공사를 더해 완성했는데,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고, 내부에는 보물 제 1274호의 석가여래삼존불이 안치되어 있다.

경내에는 보물 제 1244호로 지정된 종루가 있는데 십자형 건물 모양의 종루에는 범종을 가운데 두고, 그 둘레에 물고기형 나무조각과 북, 구름무늬 철판을 매달려 있다.

이외에도 송광사에는 보물 제 1255호인 사천왕상을 비롯해 금강문, 나한전, 목조삼패전, 일주문 등이 도지정유형문화재로 등재되어 있다.

또한 송광사의 뒤편으로 기암괴석과 울창한 잡목숲을 헤치고 오르면 해발 617m의 종남산 정상에 다다르고 이곳에서 서쪽을 향해 소양면 일임마을로 내려서면 중간 지점에 전주제지 임산관리소가 있는데 이곳 석간수는 약수중의 약수로 정평이 나있다.



■위봉산성

위봉산성은 송광사를 지나 동상면으로 향하는 길을 재촉하면 처음으로 만날 수 있는 석성이다.

국가지정 사적 471호인 위봉산성은 현재는 서문에는 높이 3m 폭 3m의 홍예문과 일부 성벽이 남아있다.
↑↑ 위봉산성
ⓒ 완주군민신문

이 산성은 1675년 7년의 세월동안 인근 7개 군민을 동원하여 쌓은 것으로 국토방위라는 목적보다는 전주의 경기전에 있는 태조영정을 피난시키기 위해 만들어 졌다. 결국 동학농민혁명때 태조 영정을 이곳으로 피난, 산성축조의 목적을 달성한 바 있다.

당초의 성 규모는 길이 16Km, 높이 4∼5m, 폭 3m의 석축이었고 3개소의 성문과 8개의 암문이 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극히 일부의 성벽과 동서북문 중 전주로 통하는 서문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무지개문을 빠져나와 위봉마을을 지나면 옛날 52개의 말사를 거느린 호남의 모사(母寺) 위봉사가 있다.



■위봉사

위봉사는 604년(백제 무왕 5년) 서암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1359년(고려 공민왕 8년) 나옹화상이 중창했다고 한다.
↑↑ 위봉사
ⓒ 완주군민신문

현재의 건물들은 조선시대 건물이며 조선 세조때 포연선사가 쓴 극락전중수기를 보면 당시 규모가 전각 28동에 암자가 10동에 달한다고 되어있는데 지금은 보물 제69호인 보광명전과 지방 문화재 제698호인 요사와 삼성각만이 남아있고 백의관음보살 벽화가 자랑거리이다. 현재는 조계종 비구니의 수련장으로 중창되고 있다.

인근 주변에는 산내 암자인 태조암과 숙종 원년에 축조한 위봉산성과 행궁터 그리고 전북 9경의 하나인 위봉폭포가 있어 역사적인 문화유적지로도 매우 의미있는 곳이다.



■위봉폭포

위봉사를 지나 위봉터널을 지나면 길 오른편으로 위봉폭포를 만날 수 있다. 60m 높이에서 2단으로 휘어져 쏟아져 내리는 장관은 오래전부터 완산8경의 하나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 위봉폭포
ⓒ 완주군민신문

현재는 데크를 이용한 계단이 완성되어 폭포 바로 밑까지 걸어서 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어 폭포의 색다른 절경을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한 기존의 8각정에서는 폭포의 모습을 한눈에 감상할 수도 있다.

위봉폭포의 물은 북쪽으로 흘러 관광명소인 동상을 거쳐 대아저수지로 흐르며, 위봉폭포를 지나면 동상면 수만리 수만천과 이어진다.



■화산서원

신원리에 위치한 화산서원은 1624년(인조2년)에 본래 전주시 중화산동에 창건하여 1662년(현종3년)에 사액되고 왕명으로 송시열이 비문을 지었으며, 송준길이 쓴 묘정비를 세웠다.

그 뒤 1869년(고종6년)에 훼철되었다가 1988년에 전라북도내 유림들의 발의와 옥천 경암공파 자손들의 협조로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에 사우를 이전해 새롭게 그 모습을 갖췄다.
↑↑ 화산서원
ⓒ 완주군민신문

사원은 외삼문을 지나면 사당이 나오고 왼쪽 내삼문을 지나면 사우로 이어지도록 만들어져 있다.

사우는 전면 3칸, 측면 1칸으로 되어 있고, 강당은 전면 4칸, 측만 3칸이며, 전주시 중화산동에 있는 묘정비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산서원에서 모시고 있는 이언적 선생은 국가의 근본과 정치강령을 논하여 왕의 찬탄을 받고 가선에 올라 예조 참판, 의정부 우좌찬성 등을 역임하였고, 송인수 선생은 수찬·장명·대사성·이조참판·대사헌을 지내다가 윤원형의 미움으로 전라감사로 좌천되었는데 선정을 베풀어 풍속이 순화되고 각관에게 사서삼경을 개간케하여 흥학(興學)에 힘쓴 인물이다.



■웅치전적지

완주군과 진안군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762m로 사람들은 부처산 또는 만덕산 이라 부르고 있다. 이 만덕산의 봉우리인 웅치재(곰티재)에 임진왜란 당시 전주성을 사수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왜군에 맞서 싸운 관군과 의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웅치전적지가 위치해 있다.
↑↑ 웅치전적지
ⓒ 완주군민신문

왜군은 해로를 통해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장악하려고 했으나, 이순신의 활약으로 해로가 막히자 육로로 침공할 계획을 세웠다. 왜적은 무주, 금산, 진안 등지에 군대를 집결시키고 선조 25년(1592) 7월 8, 9일에 웅치로 쳐들어왔다.

김제군수 정담, 나주판관 이복남, 의병장 황박 등이 왜적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였다.

싸움이 끝난 뒤 왜군은 조선군의 충성심과 용맹성에 깊이 탄복해 시체를 모아 큰 무덤을 만들고, 표목(標木)을 세우고 “조선의 충신 의사들의 영혼을 조상하노라(弔朝鮮國忠肝義膽)”라고 써 놓았다고 한다.

왜군은 싸움의 승리로 전주로 들어갈 길을 뚫었으나, 조선군의 기개에 눌려 전주성 밖에 머물다가 성을 공격하지 못하고 물러갔다고 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었던 선열들의 혼이 가슴 깊이 느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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