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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대기업 누르고, 오복이 누룽지가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싶어요”

원제연 기자 입력 2026.04.23 16:22 수정 2026.04.23 16:24

(특집 인터뷰 / 오복이 누룽지 정지애 대표)

‘누룽지’라는 단어를 들으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여러 풍경과 맛이 떠오른다. 실례로 시골 가마솥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를 긁어 주시던 할머니의 손길처럼 ‘정(情)’과 ‘고향’을 생각나게 한다.

또한 입맛 없는 아침, 부드럽게 끓여낸 누룽지탕 한 그릇은 속을 편안하게 채워 주는 등 누룽지에는 따뜻한 정서적 풍경과 함께 구수한 맛이 녹아 있다.

최근에는 소화기능 개선과 변비 예방, 체중관리, 독소 배출, 숙취해소 등 몸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하여 누룽지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에 비례해 전국적으로 누룽지 제조업체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완주군도 예외는 아니어서 꾸준히 늘고 있지만 ‘기업’이라 부를 만큼 규모 있게 운영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다수가 개인이 만들어 판매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완주군에는 누룽지 관련, 기업다운 기업이 없을까? 있다. 바로 봉동읍 봉동로 41번지에 위치한 ‘오복이 누룽지(대표 정지애)’다.

올해로 창립 5주년을 맞은 오복이 누룽지는 직원 수만 10명이 넘고, 가마솥과 스낵을 만드는 시설이 30여 개, 그리고 현미를 비롯 귀리, 흑임자 등 누룽지 제품 종류만 9개다.

쿠팡 등 온라인은 물론 삼육유기농을 비롯한 국내 내로라하는 식품업체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등을 통해 완주군과 전북은 물론 전국적으로 판매되고 있고, 타 제품과 함께 해외 수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달 1일에는 폭주하는 주문량을 해소하기 위해 대지면적 약 800여 평, 연면적 약 100평 규모의 단독 건물 매입을 완료한 뒤, 리모델링을 거쳐 현 위치로 본사와 공장을 이전하고, 한 단계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현재 오복이누룽지는 수많은 동종 업체 가운데 맛은 기본, 시설과 직원 수, 매출 규모 등을 따져볼 때 단연코 전국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지난 15일 정지애(55)대표를 만나 회사 설립 배경과 성장시키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및 목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완주전주신문


■타고난 사업가, 정지애 대표

오복이 누룽지 정지애 대표의 고향은 전북 고창이다. 2남 2녀 중 큰 딸로 태어나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자랐다. 하지만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는 속담처럼, 성공할 사람은 시작부터 달랐다.

정 대표는 고등학교 상과를 졸업한 뒤, 곧바로 법인 회사에 취직해 경리로 일하면서 퇴근 후에는 고깃집 알바로 돈을 모았다. “퇴근 후 시간이 무료했어요. 제가 술이나 운동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마침 집 앞에 고깃집이 있어 알바를 했어요.”

매일 오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4시간 동안 일을 했다. 회사생활도 버겁고, 몸도 힘들 법도 한데, 오히려 즐겁게 일했단다. 그렇게 30대 초반까지 회사에 다니며, 알바를 했지만, 교통사고로 모두 정리했다.

그저 일상에 안주할 정 대표가 아니었다. 이후 경매 공부를 했고, 건물 낙찰을 받아 재산을 조금씩 늘렸다. 경매를 하기 전, 손재주 많은 동생과 음식점을 크게 짓고 운영해보는 큰 그림도 그렸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만, 지인의 소개로 고깃집 알바 경험을 살려 안면도 꽃지에서 처음 식당을 운영하며, 사업가로서 첫 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도전은 계속됐다. 정 대표는 고창에다 직접 건물을 짓고, 60평이 넘는 기사식당을 열었는데, 평일·주말 가릴 것 없이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장사가 엄청 잘됐어요. 돈도 정말 많이 벌어 직원들에게 급여 말고도 수당을 많이 준 것 같아요.”친구의 권유로 호텔 사업도 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접고, 전주 중화산동에서 꽤 유명한 음식점도 운영하며 제법 돈도 벌었다.


■“바로 이거야”…누룽지에서 길 찾다

전주에서 음식점을 하던 중 친구가 준 누룽지를 맛보게 되면서 사업의 아이템을 찾게 됐다. “제가 누룽지를 좋아해서 원래 사먹는 업체가 있었지만, 그 친구가 가져온 가마솥 누룽지는 정말 맛있었어요.”

곧바로 누룽지를 배우기 위해 경기도로 향했다. 하지만 정 대표가 원하던 레시피가 아니었다. 이후로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음식점을 정리하고, 연구에 몰입했다.

여기에다 식당 경영을 통해 얻은 경험까지 더해 제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리고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누룽지 사업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전주에서 하다가 큰 시장을 내다보고 2020년 2월, 서울로 옮겨 20여 평 규모로 사업을 이어갔지만 설상가상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다시 내려오게 됐다.

“코로나 때문에 유동인구가 없었어요. 안되겠다 싶어 1년 만에 내려왔어요.”

이렇게 코로나 여파로 매장을 찾는 사람은 끊겼지만, 전국 택배 물량은 꾸준히 확보하며 사업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전주로 내려와 서서학동 인근에 상가주택을 구입해 누룽지 사업을 계속 이어갔다. 하지만 직원 없이 매일 혼자서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누룽지를 구워서 택배까지 보내고 나서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저 혼자 청소하고, 굽고, 포장하다보니 돈도 싫고 식당할 때보다 너무 힘들더라고요. 솔직히 그만 두고 싶었어요.”

몸은 점점 지쳐갔고, 오직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사업을 정리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을 무렵, 삼육유기농으로부터 납품 의뢰가 들어오게 되면서, 건물을 팔고, 지난 2020년 6월에 봉동으로 들어왔다.

“전주에서는 제가 다 팔았기 때문에 도리상 못하잖아요. 택배도 넘겨주고, 그냥 삼육 하나만 보고 할까? 싶어서 봉동 도로가에 작게 공장을 얻은 거에요.”

자신의 건물을 팔고, 임대로 공장을 얻으려니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사업을 재개했다.
ⓒ 완주전주신문


■봉동에서 도약의 발판 마련

정 대표에게 봉동은 기회와 희망의 땅이 됐다. 바로 이규운(64)부사장과 인연을 맺게 되면서 부터다. 대기업 출신인 이 부사장은 전주 평화동의 한 누룽지 업체 대표로부터 제의를 받아 공장장으로 다년간 일하면서 회사를 크게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대표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어려움을 겪게 돼, 이 부사장이 잠시 쉴 무렵, 정 대표와 만나게 됐다. 이미 이 부사장의 실력은 누룽지 업계에서는 정평이 나있던 터라 정 대표는 꼭 붙잡고 싶었다.

정 대표의 마음이 닿았는지 이 부사장도 흔쾌히 손을 잡았다. 삼고초려 끝에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업과 직원관리는 물론 공장 내 설비 발생 시, 외부업체가 아닌 이 부사장이 혼자서 해결하니 손실은 줄고, 이익은 계속 늘어났다.

정 대표는 이 부사장에 대해 “실력과 성품 모두 갖췄고, 저 보다 더 내일처럼 회사를 아끼시는 내 가족 같은 분이자, 든든한 지원군”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어째든 이 부사장의 합류로 오복이 누룽지는 한 단계 도약을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맞게됐다.


■오복이 누룽지 맛, “중독성 있다”

오복이 누룽지는 100% 수작업으로 만든다. 왕겨만 벗긴 현미를 자체적으로 도정을 새로 하다 보니 쌀눈이 살아있어 타 제품보다 맛이 뛰어나다.

또한 타 제품에 비해 얇게 구워 부드럽게 씹힌다. 이 안에는 정 대표만의 노하우가 숨어 있다.

현재 오복이 누룽지는 효자노릇을 하는 가마솥과 현미를 비롯 귀리, 흑임자, 흑미 등 9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사실 오복이 누룽지의 맛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실제 OEM을 맡긴 회사가 타 제품과 포장지를 바꿔서 맛을 테스트 해봤는데 오복이 누룽지를 금세 찾을 정도로 맛을 인정받고 있다.

또한 쿠팡 등 온라인을 통해 구입해 맛을 본 소비자들도 “오복이 누룽지 맛이 중독성이 있다”는 제품 후기와 함께 재구매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에서 만드는 누룽지를 제치고, ‘정말 오복이 누룽지가 제일 맛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정지애 대표의 꿈이다. 향후 계획과 포부도 물었다.

“기존 제품 외에 생강 등 완주 농산물을 활용한 누룽지 제품도 출시해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지역주민들에게도 사랑받는 기업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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