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은 왜적의 침입을 받을 때마다 백의종군(白衣從軍)의 의병으로서 조선에 충절을 다해왔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활약과 한말 왜적의 침략에 대한 항일의병 활동은 생명보다 절의를 중이 여기는 우리 민족의 긍지가 아닐 수 없다.
이들 9의사는 신분과, 지휘와, 명예와, 공적도 바라지 않고 오직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나라를 위하고 정성을 다해 가훈을 이행했을 뿐 이었다. <고흥류씨일문구의사적비(高興柳氏一門九義士蹟碑)문 요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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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구의사적비(一門九義士蹟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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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억압으로부터 광복을 쟁취하기 위해 활약한 비봉 내월리 출신 고흥류씨가문 9의사의 공훈을 선양하고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사적비.
이곳에서 지난 17일 제73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사)일문구의사 선양사업회(준비위원장 유희태)는 지역주민을 비롯한 민주통합당 정세균 의원, 유광찬 전주교육대 총장, 전주보훈지청 김명한 지청장, 조금숙 광북회전북지부장, 화산중 심의두 이사장, 고기성 완주군기독교연합회장, 이승철 국사편찬조사위원 등의 내외 귀빈을 모시고 ‘일문구의사 추념행사’를 숙연하고 성대하게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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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추념행사는 행사에 참석한 내외 귀빈들의 헌화와 분양, 추모의 시, 추모의 노래, 만세 3창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유희태 준비위원장에 따르면 9의사적비는 1982년 5월경에 건립되었으며, 거북좌대를 기반석으로 3m 높이의 돌 위에 옥계석을 올린 형태이고, 사적비를 좌우로 고흥류씨 집안의 효열각과 열녀각 등이 있어 우리 선조들의 문화와 살아온 발자취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지난해 까지는 현충일에 추념행사를 개최했지만 올해부터는 순국선열의 날에 9명의 의사를 추념하기로 했다.
9의사는 구한말 일제의 억압에서 내나라 내민족 내고장을 지키기 위해 활약한 류중화(자는 치복), 현석, 영석, 준석, 태석, 명석, 연청, 연풍, 연봉 등 9인의 충절을 기리는 비다.
이들 9의사는 모두 비봉면 내월리에서 출생했으며, 고려 말 문하시중을 지낸 류탁의 후예이고, 임진왜란의 공신인 류광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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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거병에 뜻을 둔 동기는 고종 32년에 유인석 장군이 공포한 경문을 실천하고, 고종 황제의 광무 9년에 을사조약이 체결된 이듬해에 시작된 최익현, 임병찬 장군의 의병활동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류치복 선생은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각처에서 봉기하는 의병들과 같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신명을 다할 것을 결심하고, 지역에 거주하는 유지명, 송태식 등과 결의, 친족 8인 등과 더불어 융희 1년인 1907년에 의병을 조직했다.
이때 이들을 따르는 사람은 조카인 이유중과 이태종을 포함해 100여명에 달했다.
한 때는 이규홍 장군의 의병단과 합세하기도 했으며, 각지의 의병단과 연합전술을 펴기도 했지만 주로 류 선생 등 8인은 독자적으로 의병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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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비봉면 소농리 불당동에 병기 제작소를 두고 고산, 익산, 여산, 진안, 금산, 연산에 이르기 까지 활동을 넓혀 많은 적을 격파하는 등 상당한 전과를 올렸으며, 자체 내의 비행을 저지른 이를 숙청하는 한편, 친일파인 일진회를 물리치기도 했다.
유희태 준비위원장은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생각하면 오늘 이 자리에서 무릎꿇고 큰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라면서 “9분의 의사는 고흥류씨의 자랑이기에 앞서 한민족의 혼이요 우리나라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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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양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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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봉양서원은 신독제(愼獨齊) 김집, 관곡(寬谷) 최서림, 월곡(月谷) 유종흥 선생 등 세분의 선현(先賢)을 향사하고 있다.
봉양서원의 효시는 조선시대 숙종 27년인 1701년에 세워진 정읍시 칠보면 동변리에 있는 용계서원(龍溪書院)이다.
초기의 서원은 인재 양성과 선현 배향, 유교적 향촌 질서 유지 등 긍정적인 기능을 발휘했으나 차츰 혈연·지연 관계나 학벌·사제·당파 관계 등 많은 병폐가 일어나자 대원군은 서원 훼철령을 단행해 전국 650개 서원 중 47개의 서원만 남겨지고 나머지는 모두 철폐시켰다.
그 뒤 조선 정부의 서원에 대한 감시가 누그러들자 유림들과 후손들은 용계서원을 다시 중건했다.
그러다 용계서원이 낡아서 무너지자 고흥유씨후손들은 종친회를 열고 조선시대 때 나라에서 문중에 하사한 사패지(賜牌地)가 있는 내월리에 서원을 중창하기로 했으며, 지방 유림들의 승인을 얻어 지난 1966년에 현 위치에 봉양서원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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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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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민들레의 대표이름 ‘민들레동산(민들레 영농조합법인 대표 박길주, 민들레 동산 대표 유희태)’
민들레동산영농조합법인은 민들레 제품을 생산하는 전문기업으로 9의사의 후손인 유희태 대표와 부인 박길주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민들레 동산의 위치는 일문구의사 추모비가 위치한 내월리에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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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동산은 청정지역 완주군 비봉면에서 채취한 민들레를 원료로 해 민들레국수, 민들레 화장품, 민들레 만두, 민들레 엑기스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 최근에는 민들레 카페엔(민들레 커피)을 출시해 농식품아이디어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향후 민들에 동산은 농업기술센터 및 연구 대학과 유기적인 연구 협조를 통해 민들레를 활용한 다양한 상품개발과 체험관광사업 등 다양한 중장기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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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동산영농조합법인 박길주 대표는 “저희 임직원 일동은 친환경농업 도입으로 제조에서 유통판매까지 이어지는 엄격한 위생관리와 순수 국내산 민들레를 사용한 품질보증을 통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민들레 전문기업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할 것을 약속 드린다”고 말했다.
민들레 동산에서는 세미나실과 카페, 숙소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어 기업과 단체의 세미나 및 행사를 치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