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유하당(柳河堂)=칼럼니스트 |
| ⓒ 완주전주신문 |
오늘은 걷는 이야기. ‘칠행선’→일곱 사람 나란히 걷도록 넓다는 말이다. 온몸 중하지 아니한 곳 없지만 다리 대단하다. 전에 살던 곳 중심으로 ▲고산장 ▲동상면 사봉리 ▲전주시내 ▲논산읍 ▲익산 팔봉면… ▲서울 금호동↔삼천동 ▲장충단↔금호동 ▲마포↔서울역…이 구간 걸어본 적이 있다.
걷는 동안 보는 게 있어 얘깃거리 많으나 나이 들면 설명 솜씨 전만 못하다. 전주도심지 살 땐 기린봉, 중바위, 남고산성, 완산봉, 황방산…즐겨 다녔는데, 지난 추억 다 접고, 기지제(機池堤:틀못) 한 바퀴를 중심으로 적어본다.
오전 여섯시 지팡이 들고 나서면 사방팔방 밝아 낮이나 다름없다. ‘기지제’는 ‘둑’, ‘틀못’은 물 괴어있는 저수지를 이른다. 노인 걸음 한 바퀴 한 시간…마음이 달라진다.
동트는 하늘, (음)스무날께 달빛 따라 평평한 ‘마루다리(테커다리)’ 들어서면 양편 난간이 마치 국군의장대로 보이며, 아직 어스름 원근거리감이 낮아 둥글게 보인다. 제방 끝 운동시설 몸에 맞는 기구에 올라서 ‘하나-둘…’ 200 번씩이면 ‘1천 번’ 몸 거뜬해진다. 여자 반바지 차림 힘차게 잘 달리고, 여러 날 지켜보니 만나던 사람 늘 만나 ‘오늘은 왜 안 보이지!’ 이럴까 봐 출발 거의 같은 시간대이다.
무진한 추억… 화산3거리, 고산3거리, 어우정3거리, 개바우(위), 초포3거리, 반대미… 나그네 기다리는 막걸리와 떡집이 있었고, 20대 안팎 운곡검문소·초포지서 앞 지날 때 유쾌한 기분 아닌 적이 있으며, 익산시 들어서는 만경교(목천포 다리) 입구 경찰관이 서 있었지.
이 모두 6·25전쟁 영향으로 양민증(良民證)·도민증(道民證) 없이는 먼 길 나서기 거북했다. 지금은 자유 평화시대 자동차 있으니 먼 길 쉽게 편히 가고, 민주경찰 ‘도와주는’ 일 많아 반가운 형제 자녀로 보인다.
대한제국 말엽 북하면 박해관(朴海寬) 선비 남해로 귀양 가자 동생 박해종(朴海宗) 걸어 형한테 갔다. 『오계집』한글로 썼기에 읽어봤으나 그 『원전』존재 여부가 궁금하다. 훌륭하고 귀한 근대역사 사료이니 사라지지 않기 바란다. 최승범 교수와 교류할 때 <전북일보>에 현대어로 번안 연재한 일은 천만다행이다(스크랩 필자에게).
걷다 자주 만났던 삼기정 할아버지 서있던 자리에서 머리 하얀 그 손자가 반겨주고, 안채 초가 양옥이 됐다. 그 집 딸 어여뻤는데 나이 추정 90여살…삼삼한 추억 속 고향길이 멀어만 진다. 말 한마디 안했던 처녀 왜 떠오를까.
지루한 더위 지나 시원한 가을… 이도 또한 잠깐. 연말 흰 눈 위에 발자국만 남기겠지. 걷고, 만나고, 보고, 듣던 고향 소멸소리 웬 말이냐. 빗길 우산 없이 걷는 학생 뉘 집 아이일꼬.
순창 용궐산 ‘갈지자(之)’ 마루다리 화산면 박현수 사무관 작품이다. 한약방 집 손자, 위 박해관 진사 현손으로 ‘선비정신+현대지식인+청백한 공무원’ 균형 갖춘 인재이다.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