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작품을 창작하거나 그러한 창작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을 가리켜 ‘예술인(藝術人, artist)’라고 부른다.
예술인들은 자신의 작품 활동하면서 틈틈이 재능과 창의력을 발휘함으로써 지역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도 하고, 소통을 매개로 흩어진 공동체를 하나로 모으는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실례로 예술인이나, 예술인의 작품을 보기 위해 지역을 찾는 방문객들이 인근 음식점이나 카페 등 다양한 상업시설을 자연스럽게 이용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적잖은 도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도시재생이나, 축제 등 자치단체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예술인들이 기획자로 참여해 재능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사람들을 모여드는 명소로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이것이 예술인이 가진 힘이다. 그러니 예술인이 우리 마을에 산다는 것은 주민들로서는 행운이자, 축복인 셈이다.
오늘 소개할 주인공도 예술인으로,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보배’로 불리는 사람이다. 바로 용진읍 신지리 순지마을에 사는 윤대라 작가이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지난 2014년에 완주로 귀촌한 뒤, 10년 넘게 살면서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열정적으로 쏟아 부으며 마을의 정체성 확립과 주민들의 자긍심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 |
↑↑ 윤대라 작가가 인터뷰 후 자신의 작품 ‘도깨비 온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완주전주신문 |
■용진 순지마을 주민되다
전업작가로 활동하며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남편은 홍익대 미대 같은 과 선배로, 현재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미술학부에서 후학 양성에 힘을 쏟고 있는 박종갑 교수다.
결혼 후에도 작품 활동은 계속했다. 이전 보다 더 왕성해졌다. 작업량이 늘다보니 공간이 턱 없이 부족해 작업실 공간 확장이 절실히 필요했다.
결국 서울의 작업실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새로운 작업실을 알아보던 중 용진읍 신지리 순지마을과 연을 맺고, 11년 째 살고 있다.
“남편 고향이 전주라 가까운 완주에 대해서도 잘 알죠. 어느 날 셋째 형님의 전화를 받고 급하게 내려간 뒤, 한참 후에 저에게 ‘완주에 있는 사찰인데 첫 눈에 반했다’며 말하고 나서 고민 없이 그날 구매 계약까지 끝냈어요.”
계약한 곳은 30년 정도 된 봉운사로, 폐허처럼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다. 어째든 지난 2014년 여름에 이사와 트럭 한 대 구입해 몇 달 동안 서울에 있는 짐들을 조금씩 옮겼다. 이삿짐도 이삿짐이지만 당장 잠을 자거나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도 없을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또한 집 안 내부는 물론 마당 곳곳에는 버려야 할 것도 많고, 고쳐야 할 것도 많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 막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예전에 살았던 집처럼 마음은 편안했단다.
“시골에 살아본 적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았어요. 막상 내려와 주변을 살펴보고, 밤길도 걸어보니 ‘살아도 괜찮다’라는 느낌이 오더라고요.”
워낙 터가 넓고 건물이 낡아 공사를 해도 끝이 보이지 않아 언제쯤 마무리가 될지 모른지만 지인들을 초대해 음식을 해먹고, 잠을 잘 수 있을 만큼 조리와 난방 시설은 갖췄다.
사실 두 사람이 완주에 내려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숙식 공간보다 작업실에 신경을 더 많이 썼다. 먼저, 대웅전을 정리해 윤 작가의 작업실로 쓰고, 박 교수의 작업실은 새로 건축했다.
이전 사찰명인 봉운사 대신 ‘완산가(完山家)’로 새롭게 이름도 지으니 비로소 완주사람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단다. 이후 작품 활동을 계속하면서 순지마을 주민으로서 마을사업에도 관심을 갖고 적극 참여했다.
■윤 작가, 순지마을 보배되다
순지마을에서 윤 작가의 역할은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시골마을이다 보니 주민 대다수가 나이 드신 분들이라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아 서류 만드는 일은 늘 윤 작가의 몫이다.
“이장님이 찾아 오셔서 마을 사업을 하고 싶은데 노인들 밖에 없어서 서류를 못 만드신다고 해서 ‘기꺼이 하겠다’고 했어요.”
이후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공모사업을 신청, 선정돼 받은 지원금으로 둘레길 표지판을 세우고, 둘레길 지도도 만들었다. 또한 순지마을의 과거와 현재를 담은 영상을 만들고, 사진을 수집해 전시회도 열었다.
특색 있는 마을 대표축제 공모에도 선정돼, 옥수수 요리경연대회, 미로에서 길 찾기, 옥수수 빨리 먹기, 만경강 습지 생태와 둘레길 걷기 등을 내용으로 ‘꾸불꾸불 옥수수밭 미로축제’도 개최했다.
기획부터 실행까지 모든 과정에는 윤 작가의 땀과 노력이 오롯이 배어있다. 작품 활동에 매진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왔지만, 마을일이라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간다. 그러니 마을 주민들이 그를 ‘보배’라고 부를 만하다.
“귀찮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봤어요. 예술가는 어느 곳에 있든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주 곳곳에 문화예술 씨앗 뿌려
마을뿐 아니라 문화재단, 문화도시지원센터, 도서관과도 연결이 돼 지역의 문화예술이 성장·발전하는데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실제로 윤 작가가 이사 올 무렵, 완주문화재단이 첫걸음을 내디뎠다. 당시 초창기다보니 재단으로부터 부탁을 받아 자문·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2017년부터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완주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통해 완주 곳곳에 문화예술의 씨앗이 뿌려지는데 일조했다.
특히 지난 해부터 관내 도서관에서 시작한 민화수업은 기존의 색칠 위주의 수업에서 탈피해 사람이나 지역의 이야기를 담는 방식으로 진행, 호응을 이끌었다.
실제로 ‘로컬푸드 1번지’라는 글자 안에 완주군의 특산물을 그려 넣는 문자도와 완주군 상징물을 활용한 13개 읍면 주민작가가 제작한 책가도는 윤 작가의 민화수업 방식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윤 작가는 재단의 전문예술창작지원사업 등의 전시회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는 섹슈얼과 유머러스함이 담긴 위트 있는 작업을 선호하는데, 어렵지 않으면서도 재밌는 작업으로 관객들과 가까워지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있다.
또한 완주로 이주해 살면서 느낀 삶의 감흥들과 이야기가 있는 작품들을 전통 채색화 방식으로 그려내기도 하고, 작가와 공존하는 닭과 고양이, 개, 새, 벌레, 나비, 꽃 등의 생명체를 이야기와 그림으로 옮기기도 한다.
특히 완주에 살면서 동물들을 키우며 자세히 관찰한 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이입시켜 글과 그림으로 재미있고, 위트 있게, 때로는 따뜻하게 녹여내는 드로잉 작업을 많이 하고 있다.
■완주에서 이루고 싶은 꿈
윤 작가는 지난 2023년 전주한옥마을에서 개인전 ‘대라쇼 10to10’을 통해 부적을 써주는 퍼포먼스를 선보여, 이목을 끌었다. 실제 색동옷에 선글라스를 쓰고, 방울을 흔들며 관람객들과 소통하면서 마음을 위로했다.
그가 그림과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다. 실제로도 만나보면 따뜻하고, 유쾌한 사람이다. 윤 작가는 마을 입구에 특화된 공간을 만들어 교육도 하고 사진이나 영상자료를 수집해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것 외에도 마을을 위해 이루고 싶은 꿈이 많다.
“일일이 열거 할 수 없지만 이 지역에 사는 예술가로서 이 곳에서 뜻 깊은 일을 하면서 완주 곳곳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싶어요”
순지마을 주민이자, ‘완산가’의 집 주인, 윤대라 작가를 보며 “한 명의 예술가가 그 땅에 자리를 잡으면 큰 힘을 갖게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앞으로의 활약을 응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