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순교자 유해가 발견된 완주 초남이성지의 역사적 재조명을 위한 작업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완주 초남이성지는 1784년 호남의 천주교가 시작된 곳이자, 복자 유항검의 생가터와 유항검 일가의 묘지터, 동정부부 순교자 복자 유중철과 이순이 부부 생가터가 남아있는 역사적 흔적이 담긴 곳이다.
지난 해 3월, 초남이성지에서 한국 천주교 최초 순교자의 유해와 유물이 확인돼 각계의 주목을 받았다. 1791년 신해박해로 순교한 윤지충과 권상연, 그리고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윤지헌이 확인된 것이다.
이들의 유해에서는 능지처참의 흔적이 고스란히 확인됐고, 윤지충과 권상연의 무덤임을 명백하게 밝혀주는 백자사발지석 이 확인돼 조선후기 사회상을 밝혀주는 중요한 역사적 유물로서 평가되고 있다.
이에 완주군은 초남이성지 역사재조명 연구용역을 통해 총 두 차례에 걸쳐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1차 학술대회는 지난 해 12월 9일, ‘최초 순교자 유해 발굴의 의의와 역사재조명을 위한 과제’라는 주제로, 이어 2차 학술세미나는 지난 달 31일 ‘초남이성지 역사재조명과 종교문화유산으로서의 위상 제고 방안’이라는 주제로 각각 펼쳐졌다. 1·2차 학술세미나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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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학술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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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최초 순교자 유해 감식은 ‘세계사적 연구 표준’
▲국내 첫 사망 후 200년 경과 유전자 검출, 부계 혈연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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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군은 초남이성지 역사재조명 연구용역을 통해 총 두 차례에 걸쳐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먼저 1차 학술대회는 지난 해 12월 9일, 완주문화재단 복합문화지구 누에 커뮤니티실에서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천주교 전주교구 호남교회사연구소와 공동으로 ‘최초 순교자 유해 발굴의 의의와 역사 재조명을 위한 과제’라는 주제로 열렸다.
특히 이날 세미나에서는 순교자의 유해 및 유물에 담긴 역사적 중요성과 초남이성지 종교문화유산에 대한 보편적 가치를 확립했다.
발표자로 나선 윤덕향 전 전북대 교수는 230년 전 전주에서 순교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세 순교자 묘소가 완주 초남이성지에 자리한 것은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신앙공동체 등 집단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면서 초남이성지 신앙공동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윤 교수는 이날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 복자 윤지충(바오로·1759~1791년)과 복자 권상연(야고보·1751~1791년)은 1791년 12월 8일 현재의 전주 남문 밖(현 전동성당)에서 참수형에 처해졌으며, 묘지에는 11개월이 지난 1792년 11월 25일에 안장된 것으로 기록됐다”며 “장례기간이 비상하게 긴 것과 생장지(전라도 진산, 현 충남 금산군 진산면 막현리)가 아닌 완주 이서 초남이에 묻힌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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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는 연못인 유항검 생가터 파가저택(사진 좌)과 유항검 생가터 드론사진. |
ⓒ 완주전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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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교수는 또 “지연이나 혈연에 따른 집단이 두 순교자의 장례를 주도했다면 굳이 초남이를 장지로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직까지는 경위가 분명하지 않지만 초남이로 장지를 선택한 것은 이 일대를 지역적 기반으로 하는 집단에 의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초남이 일원은 유항검 일가가 대대로 살아온 세거지(世居地)였으며, 유항검은 18세기 후반 호남 천주교의 핵심적 지도자”라며 “따라서 두 순교자의 장례에 어떤 형태로든 유항검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의 도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이와함께 윤지충의 동생인 윤지헌(1764~1801년)의 무덤과 관련해 “유배형을 받은 처자식이 매장의 주체는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윤지충, 권상연 순교자 무덤이 있는 곳에 자리하고, 두 사람의 무덤과 비슷한 방향으로 장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두 순교자 무덤의 매장 주체와 직간접적인 접촉이나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윤지헌은 고산면(현재 운주면)에서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고 활동을 하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동료들과 함께 붙잡혀 능지처사 형을 받았으며, 이때 유항검 가족도 모두 순교했다.
윤 교수는 이와 관련 “능지처사된 윤지헌의 주검을 거둬 매장한 주체는 인근 바우배기에 있었다고 하는 유항검을 비롯한 순교자들의 무덤을 축조한 주체와 같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역설했다.
이어 “권상연과 윤지충·윤지헌 형제의 무덤으로 확인된 3호, 5호와 8호를 조성한 주체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유항검 일가의 무덤을 조성했을 주체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된다”며 “유항검 일가와 윤지헌을 매장한 주체는 같은 집단이거나 최소한 상호 교류가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이와 관련, “초남이를 중심으로 유항검 일가의 무덤만이 아니라 신앙공동체의 실체와 관련한 조사가 충실히 이뤄진다면 조선후기에서 개화기로 이르는 시기의 사회상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또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인 권상연, 윤지충과 윤지헌 형제의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은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 체질인류학과 유전학, 고고학적 분석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전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사례로, 향후 다른 유해 발굴 연구의 표준으로 자리할 것이란 주장이 나왔다.
송창호 전북대 교수(의과대 해부학)는 이날 ‘순교자 유해 분석 방법과 성과’에 대한 발제에서 세 순교자 유해의 신원확인을 위한 감식 진행 과정과 전북대병원 생명연구윤리심의위(IRB) 승인, 체질인류학적 접근과 유골의 개인식별 방법, 뼈의 비특이적 변이 연구, 전통적인 뼈의 형태학적 분석, 인구학적 접근, 컴퓨터 단층촬영(CT), 순교자 유해의 나이와 성별·신장 추정, 유해의 부계확인 유전자 검사 등 정밀한 분석방법을 소개했다.
송 교수는 “초남이성지에서 발견된 8구의 유해 중 3호와 5호, 8호의 유해 감식 결과는 유해의 외상소견과 사망 무렵 피장자 추정 나이, 성별, 유전자 검사 결과 등을 종합했다”며 “묘지에서 발견된 묵서명 백자사발 지석과 백자굽다리 접시, 묘지의 위치와 조성 시기, 사료의 고증 등을 종합하여 최종적으로 유해의 신원을 추정했다”고 말했다.
송 교수에 따르면 1791년 신해박해 때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된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의 유해(5호 유해)는 다섯 번째 목뼈의 왼쪽 부분에서 사망 무렵 골절인 예기 손상, 즉 날카로운 칼과 같은 도구에 의해 절단된 것으로 추정되는 외상소견이 관찰됐고, 충치 소견이 4개의 치아에서 발견됐다.
또 윤지충 유해와 해남 윤씨 친족들 사이에 동일 부계 관계의 성립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해남 윤씨 친족들의 Y염색체 부계확인 검사(Y-STR)를 실시해 비교 분석한 결과 윤지충 유해와 해남 윤씨 친족 4명에서 총 17개의 유전자형이 모두 일치해 동일 부계 혈연관계가 성립했다.
송 교수는 사망 무렵 골절(다섯째 목뼈의 예기손상)과 사망 무렵 피장자 나이(29~39세), 성별(남성), Y 염색체 부계확인 검사의 비교분석 결과, 묘지에서 발견된 묵서명 백자사발 지석, 묘지의 위치와 조성시기, 사료의 고증 등으로 미뤄 1791년에 참수형으로 순교한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로 추정됐다고 밝혔다.
함께 참수형을 당한 순교자 권상연 야고보의 유해(3호 유해) 감식은 같은 방식으로 사망 무렵 피장자의 나이(31~41세)와 성별(남성), Y 염색체 부계확인검사의 비교분석 결과(안동 권씨 친족들과 동일 부계 혈연관계 추정, 묘지에서 발결된 묵서명 백자사발 지석, 묘지의 위치와 조성 시기, 사료의 고증 등으로 미뤄 ‘순교자 권상연 야고보’로 추정됐다.
완주군 고산면(현재 운주면)에서 신앙공동체 활동을 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동료들과 함께 붙잡혀 능지처사형을 받았던 순교자 윤지헌 프란치스코의 유해(8호 유해) 역시 둘째 목뼈와 양쪽 위팔뼈 아래부위, 왼쪽 넙다리 아래부위의 예기손상 등 사망 무렵의 골절과 피장자 나이(27~37세), 성별(남성), Y 염색체 부계확인 검사의 비교분석 결과, 묘지에서 발견된 백자굽다리 접시, 묘지의 위치와 조성시기, 사료의 고증 등으로 미뤄 윤지헌 유해로 추정됐다.
송 교수는 이와 관련, “한국 천주교의 첫 순교자 유해 발굴은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유해 감식 참가자와 발굴된 지석, 고증사료, 유해감식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해 유해의 신원을 확인한 모범적인 사례로 향후 다른 유해 발굴 연구의 표준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해의 특이적 외상소견(예기손상)을 통해 우리나라의 참수형 또는 능지처사형으로 사망한 유해를 직접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이 결과는 관련된 법의학과 체질인류학, 역사학 등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 교수는 또 “한국에서 최초로 사망 후 200년 이상 경과한 조선시대 후기 유해(넙다리뼈)에서 유전자(Y-STR)를 검출해 생존하는 후대의 친족의 유전자와 비교해 부계 혈연관계를 확인했다”며 “이런 기법은 사망 후 오래된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는 연구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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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상연 야고보·윤지충 바오로 백자사발지석명문. |
ⓒ 완주전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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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교수는 아울러 유해에서 검출된 유전자와 비교하기 위해 생존하는 친족들을 찾는 데 해남 윤씨와 안동 권씨의 종친회와 족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국내 족보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족보의 보존과 활용 가치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토론에 나선 홍종하 경희대 교수(한국고대사 고고학연구소)는 “이번 연구는 사망 후 200년 이상 경과한 조선시대 후기 유해에서 고DNA를 검출하고 이를 생존하는 후대 친족의 유전자와 비교해 성공적으로 부계 혈연관계를 확인한 것”이라며 “이런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게 보고되고 있어 향후 국내 고고학과 고고과학 연구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학술세미나에서는 또 이영춘 천주교 전주교구 호남교회사연구소 소장의 ‘한국 천주교회사와 초남이성지의 재조명’에 대한 기조강연과 문윤걸 예원예술대 교수의 ‘초남이 종교문화자산의 지역발전 활용전략’ 발표에 이어 유재은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소장과 경희대 홍종하 교수, 윤수봉 완주군의원, 장호수 백제역사도시연구원 원장, 김덕순 유네스코 세계유산해석센터 실장, 이훈상 동아대 명예교수 등이 종합토론과 총평에 나서 관심을 끌었다.
한편 천주교 전주교구는 지난해 9월 1일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1759~1791), 권상연(1751~1791)의 유해가 신해박해 때 처형된 지 230년만 발견됐으며, 윤지충의 동생으로 신유박해 때 순교한 윤지헌(1764~1801)의 유해도 함께 확인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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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학술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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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남이성지 등 전라도, 조선 천주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초남이성지와 바우배기, 세계적 평화의 장 종합정비계획 수립 필요
▲“바우배기 성지, ‘포로 로마노’ 염두 두고 소박한대로 보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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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군과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천주교 전주교구 호남교회사연구소는 지난 달 31일 군청 1층 대회의실에서 ‘초남이성지 역사재조명과 종교문화유산으로서의 위상 제고 방안’이라는 주제로 개최됐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조광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의 ‘조선후기 정치·사상적 변화와 천주교’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1부와 2부에 걸쳐 심도 있는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먼저 조광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날 ‘조선 후기 정치·사상적 변화와 천주교’에 대한 기조강연을 통해 “1791년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의 죽음으로 귀결된 ‘진산사건(珍山事件)’은 조선 천주교사회에 새로운 분기점을 마련해 주는 사건이었다”며 “이 사건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규정하는 작업을 다져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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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남이성지 2차 학술세미나 참석자 기념촬영 모습. |
ⓒ 완주전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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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박해 사건으로 부르는 진산사건은 1791년 전라도 진산(지금의 충남 금산)에서 윤지충이 모친상을 당한 후 모친의 제사를 폐하고, 사판(祠版)에 불을 지른 사건에서 발단돼 윤지충과 권상연은 참형을 당하게 된다.
조 교수는 기조연설에서 “당시 조상제사 거부 문제는 매우 심각한 사회적 반응을 가져왔고,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었다”며 “이런 까닭으로 당시 양반지배층에서는 제사 거부를 혈연중심의 가족주의를 거부하는 패륜 행동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제 진산사건이 가진 향후 과제를 생각하고 역사적 의미를 규정하는 작업을 다져나가야 한다”며 “당시의 천주교 신자들은 조상 제사 폐지를 통해 전통적인 관념과 단절을 시도했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를 자기와 같이 하라’는 가르침을 새로운 가치판단의 새로운 기준으로 삼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여기에서 그들은 신분제적 질서를 무너뜨리고, 평등한 사회를 여는 실천적 행동으로 더욱 확실히 전환되어 갈 수 있었다”며 “진산사건에 관한 연구는 이런 역사적 검토를 심화시켜 나가야 함과 동시에 현대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또 “윤지충과 권상연, 그리고 윤지헌의 묘소 발굴에 따른 유적과 유물의 보전 문제도 함께 언급하고자 한다”며 “이곳을 가꾸려는 사람들은 오늘날 로마 시내 중심부 가까이에 있는 ‘포로 로마노(Foro Romano)’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포로 로마노는 ‘로마인의 광장’이라는 뜻으로, 고대 로마인들이 모여 활발히 활동했던 원로원과 사원, 개선문 등 과거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기둥이나 초석만 남아 있는 곳도 있다.
조 교수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로마 시대 유적을 보전했지 복원하지 않았다. 복원된 건물보다 남아 있는 흔적 자체가 더 소중하다고 건설하게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소박한 무덤은 소박한대로 보존될 때 바우배기 성지는 더욱 성지다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이어 “바우배기에 가득 찰 거대한 건물들로 외적 화려함을 자랑하기보다 내적 충실성을 다져 나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순교자들의 정신을 널리 알고 따르는 일을 촉구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특히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유해 발굴로 각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초남이성지와 바우배기를 종교 차원의 역사적 장소를 넘어 세계적인 평화의 장으로 조성하는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남해경 전북대 교수는 이날 ‘초남이성지의 정비 및 활용계획’ 주제발표에서 “초남이성지는 복자 유항검의 생가터이자 복음을 전파하던 곳이며, 약 1km 가량 떨어진 바우배기는 지난해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 윤지헌의 유해가 확인된 곳”이라며 “이곳의 역사적·종교적 의미가 매우 큰 만큼 새로운 종교적, 문화재적 가치의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 교수는 “한국 천주교사에 큰 획을 긋는 초남이성지에 ‘성지 역사관’을 조성하고 관광자원과 당시 사회의 교육 자료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며 “순교지를 중심으로 평화를 상징하는 광장을 조성하고, 주위에 성직자들의 수도를 위한 공간과 피정센터, 라키비움, 일반인이나 신도들을 위한 치유공간, 믿음살이 체험센터, 체험공간, 순례길, 종교정원(환경생태 관련 시설) 등을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제시했다.
그는 “초남이성지는 천주교의 역사문화 자원이기도 하지만 행정 절차에 따라 단계적으로 국가문화재 지정 절차를 밟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며 “먼저 지난해 시행한 전라북도 건축문화자산 중에서 종교자산에 편입해 건축과 문화재계에 가치를 인식시키고, 관련 사료를 수집해 도지정문화재,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시키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또 바우배기의 성역화 사업 등과 관련, “준비 단계부터 체계적인 마스터 플랜을 세워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 교수는 “초남이성지와 바우배기를 종교 차원의 단순한 역사적 장소를 넘어 세계 평화를 상징할 수 있는 새로운 장으로 조성하고, 문화재로 추진해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관리를 추구해야 할 것”이라며 “이들 성지를 단순히 천주교 성지가 아닌 세계적인 평화의 장으로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또 전라도 지역의 신앙공동체가 조선 말기에 ‘서양선박 청원’에 나선 것은 전라도가 조선 천주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곳임을 강조하기 위해 교회 설립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수태 충남대 교수는 ‘복자 윤지충·권상연·윤지헌의 삶과 신앙, 그리고 순교’ 주제발표에서 “신해박해(1791년)로 최초의 순교자가 나온 전라도 지역의 신자들은 교회를 어디에 어떻게 만드느냐의 문제를 논의했다”며“이후 전라도 지역의 신앙공동체가 추진한 서양선박 청원은 서양인 선교사와 주교의 영입과 함께 교회의 건립을 통해 조선의 천주교회를 보다 완전한 교회로 만들기 위한 공통된 바람에서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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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남이성지 교리당(사진 좌)과 초남이성지 순교자 유해 안치실 모습. |
ⓒ 완주전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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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선박 청원’은 1796년 당시 윤지헌을 비롯한 조선 천주교 신자들이 서양인 신부의 영입과 서양인 주교의 영입을 바라며 북경 주교에게 서양선박을 청원했던 사안을 말한다.
김 교수는 “서양선박 청원을 통해 주교와 신부의 영입, 성상과 성유 등의 획득을 바랐던 조선의 신자들이 지향한 최종적인 목표는 조선에 교회를 세우는 일이었다”며 “이들은 서양선박이 조선에 들어옴으로써 조정과 접촉해 천주교에 대한 박해를 멈추고, 교회의 설치와 함께 자유롭게 선교하고 믿게 되기를 바랐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1795년 4월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 입국한 후 전라도 고산 신앙공체를 방문했을 때의 일화를 소개하며 “전라도 지역이 조선의 천주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곳임을 강조하기 위해 교회 설립을 서양선박 청원의 목적으로 분명히 밝혔던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 교수는 또 전라도 지역의 신앙의 초석을 놓은 세 복자와 유항검 등의 천주교 수용과정의 차이를 제시하며 “윤지충이 가장 먼저 천주교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윤지충은 천주교의 수용이란 그 자신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것으로 파악하였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 천주교 박해사건인 1791년의 진산사건(신해박해)의 발단이 되는 유교식 조상제사의 거부에 대해 “유교식 조상제사 거부는 진산의 윤지충과 전주의 유항검이 함께 읽고 공부한 천주교 교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유교식 조상제사의 거부와 함께 보유론적 천주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에 이어 이석원 수원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은 ‘천주교 박해시기 순교자 시신의 수습, 안장, 이장에 관한 자료 연구’라는 주제로 관련 기록 자료를 종합하여 정리한 내용을 발표했다.
이 연구실장은 “자료를 통해 수습과 안장이 확인된 경우는 물론 시신이 수습되지 못한 경우까지 포함하여 순교자 273명을 확인했다”며“이러한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앞으로 순교자 시신의 수습, 안장, 이장에 대한 본격적 연구가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3월 16일, 순교자 유해가 발견된 초남이성지(바우배기)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순교자 무덤 터에 대한 정밀조사와 순교자의 유해가 추가적으로 발견될 가능성에 대한 조사로서, 이후에는 유항검의 생가터에 대한 조사도 진행될 예정이다.
이러한 조사는 초남이 일대 신앙공동체 형성과정에 대한 규명과 조선후기 정치사회상에 대한 연구로서 확장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