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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문 밖 너른 마당(341회-통합 746회) : 고산 장날 5 두식(斗植)

admin 기자 입력 2021.07.23 09:20 수정 2021.07.23 09:20

고산 장날 5 두식(斗植)

↑↑ 이승철 = 칼럼니스트
ⓒ 완주전주신문
19세기 고산 장날 5 두식(①고두식 ②구두식 ③오두식 ④유두식 ⑤이두식)이 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면 공정거래가 확립됐습니다.

①고두식은 주장 주인을 찾아가 “우리 농민 평생 농사짓고 살다 부모님 회갑, 지가 쌀로 술 해 손님 대접 잔치하는데 이를 탓하면 아니 됩니다.” 주인 무슨 뜻인지 얼른 알아 차렸습니다. 이래서 고산 5개면은 잔치가 푸짐했습니다.

②구두식은 생선가게에 나와 “다음 장부터 정오를 넘겨 생선이 남아있으면, 앞으로 고산 장에서 비린내를 없애버리리다.” 50여리 먼 장꾼도 생선 맛을 보게 했습니다.

③오두식은 감고가 쓰는 되와 말(斗)에 조짜가 붙어있음을 확인하고 장정들과 함께 거둬들여 장바닥에서 불태웠습니다.

④유두식이 점심을 마치고 장에 나가니 유독 팔리지 않은 게 땔감이었습니다. 울화가 치밀어 “여러분! 어서 나뭇짐을 지고 나를 따르시오.” 유두식은 ‘너는 이 집에…’, ‘아저씨는 저 집에…’, ‘그대는 저 안집에…’ 짐을 부리고 “내 이야기를 하시오” 금시에 싹 팔아 주었습니다.

⑤이두식은 이들 사이의 ‘고리’ 역할을 하여 일명 이교리(李校理)라 불렀는데, 이들은 전연 건달 깡패 싸움꾼이 아닙니다. 보(洑) 막이나 묘 쓰는 데 나오면 일등 장사, 조용한 장정이었지요.

고산현감이 심심하여 장 구경을 나왔습니다.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5 두식(斗植)’과 마주쳤지요. 마침 잘 됐다며 “니들 나를 따르라.” 동헌으로 데리고 들어가 통인(通引)에게 여기저기 구경을 시키도록 했습니다. 현감은 붓을 들어 가경기(街景記:거리 풍경) 7언절구를 썼습니다.

“말로 심어 거두니 곡식이 천석이요/ 장바닥 안정하니 봄볕이 따뜻하다./ 나 그대 남은 힘 서로 합해 쓰면/ 시골에서 먼 궁전이 오래 태평하리다(斗植播種千石出/ 場街安定暖春光/ 余汝餘力相合用. 鄕遠宮中久太平).

이두식은 슬쩍 보니 글이 워낙 좋아 시장 복판 벽에 붙였습니다. 현감은 명관이라 그 소문 서울까지 뻗혔습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좋은 일을 생각하자며 이두식을 불렀습니다. 두식은 걸인(乞人) 잔치를 열 터이니 솜바지 저고리 한 벌씩만 만들어 주시기를 요청했습니다. 잔치에는 닭, 돼지다리, 떡, 술, 밥쌀이 들이닥쳐 쓰고 남은 건 헤어지며 골고루 나눠졌습니다.

당시 1등 거지는 고산 걸인, 2등은 봉동, 3등은 삼례걸인 이었습니다. 고산 5 두식처럼 인정받는 완주청년들은 누군가요. 두식은 내부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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