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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문 밖 너른 마당(339회-통합 744회) : 화산면 춘산리 여우고개 착한 사람

admin 기자 입력 2021.07.09 09:26 수정 2021.07.09 09:26

화산면 춘산리 여우고개 착한 사람

↑↑ 이승철 = 칼럼니스트
ⓒ 완주전주신문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밤 주막 사립문 앞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났습니다. “영업 벌써 끝났시유” 자다 깬 주모는 방문을 쾅 닫아버렸습니다. 그 때 열 두어 살 난 꼬마(사동:使童)가 나가보니 질퍽거리는 땅바닥에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술 냄새는 나지 않고 옷은 찢겨졌으며, 삿갓은 내뒹굴고 도롱이는 젖어있었습니다. 사동은 얼른 부축하여 반 평 쯤 되는 제 방으로 모셨습니다. 호롱불빛에서 제대로 보니 볼품없는 노인이었습니다.

날이 새어 노인이 눈을 떠보니 자신은 발가벗은 몸이고 머리맡에 마른 옷이 개어져 있었습니다. 그때 사동이 문을 열고 생긋이 웃으며 “어르신! 아궁이불에 옷을 말려놓았습니다. 입으시지요.”

며칠 후 웬 장정이 들이닥쳤습니다. 주모는 바깥나들이 나가 사동 혼자 있었지요. “너 어디 좀 갈 데가 있다.”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안돼요. 안돼요?”그랬지만 장정은 사동을 번쩍 들어 사립문 밖 말에 태웠습니다.

얼마를 달려 가 고래 등 같은 기와집 앞에 멈췄습니다. 사동은 장정에게 이끌려 사랑채에 이르렀습니다. 유건(儒巾) 쓴 대주 어르신이 빙긋 웃으며 사동의 두 손을 잡고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어! 비 내리던 그날 밤…”, “그렇다. 내가 어머님 묘소에 갔다가 폭우를 만나 하인은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져 죽었고, 난 혼자 길을 잃어 <여우고개> 아래 주막에서 너를 만나 목숨을 건졌다.”

사동은 그제서야 두려움이 풀렸습니다. “너의 바람이 뭔고?”하고 물으니, 사동은 “돈 벌어 주막 도로 찾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원래 <여우고개> 주막은 사동네 것이었으나 이태 전 7년 병석 아버지가 죽자 약값으로 주막이 저잣거리 고리채 영감에게로 넘어 갔던 것입니다. 사동 어머니는 시장 국밥집 찬모로 갔고, 형은 장터 지게꾼이 되었습니다. 지금 주막집 주모는 고리채 영감 사촌여동생입니다.

사동 말이 끝나자 대주 어른은 “몇 년이나 돈을 모아야 그 주막 도로 찾겠느냐?” 사동은 손가락을 꼽짝꼽짝 “한 십년이네요.”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사동을 말에 태워 돌려보냈습니다.

이튿날 대주는 저잣거리 고리채 영감을 찾아가 주막을 샀고, 며칠 후 목수들이 모여들어 ‘뚝딱뚝딱∼’ 집을 새로 세워 석 달 뒤인 시월 상달 넓은 기와집 주막이 완공됐습니다.

어떻습니까?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고 했습니다. 화산면 춘산리에 <여우고개:예곡>가 있습니다. 마음을 촉촉하게 하는 우리고장 전설로 삼으면 어떨까요. 돈 많아야 부자 아닙니다. 착한 맘이 문화입니다. 우리 군민마다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이야기 김덕권 시인(duksan4037@daum.net) 글에서 보았습니다. 사람마다 좋은 이름을 남겨야 합니다.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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