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 산자락에 묻은 지 수년 지나/ 백 살에 초승달 허리 이마 주름 뒤덮는데/ 왜 어찌 날 안 데려가요이, 제발 후딱 데려가소, 영감/
올해로 101세 되신 백성례 할머니의 ‘영감 땡감’이란 시(詩)의 일부다.
국내 8대 오지라 불릴 만큼 산세가 험했고 삶이 녹록치 않았던 동상면 주민들의 고된 삶과 구구절절한 사연을 한 권의 아름다운 시집으로 출간, 감동을 주고 있다.
국내 최초의 주민 채록 시집인 이 책의 제목은 ‘동상이몽: 홍시 먹고 뱉은 말이 시가 되다’.
270쪽 분량의 이 시집에는 6부로 나눠 ‘호랭이 물어가네’와 ‘다시 호미를 들다’ 등 총 150여 편이 소개돼 있다.
특히 주민들이 함께 울고 웃으며 만들어낸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속삭임으로 담아내 울림이 크다.
마디풀과에 속한 한해살이풀인 ‘여뀌’를 바라보며 인생을 관조하듯 읊은 시는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또한 다섯 살배기 박채언 어린이부터 100세 어르신까지 말문을 연 글에는 고향 홍시감을 먹다 톡톡 뱉어낸 다양한 사연들이 하나의 시가 돼 감동을 준다.
이 밖에 ‘경로당에서 10원짜리 고스톱을 치고 있다’로 시작하는 ‘경로당 수다1’을 비롯 경로당 시리즈 10편 등 산간 오지마을 주민들의 희로애락을 토해낸 주옥같은 시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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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윤 동상면장(좌측 네번째)과 주민 등이 국내 최초 주민채록 시집을 들어보이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
ⓒ 완주전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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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출간되기까지 박병윤(52) 동상면장의 힘이 컸다. 시인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면장 취임 이후 “동네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소용없으니 살아온 이야기를 채록해 놓으라”는 제안을 받았다.
박 면장은 작가나 출판사에 용역을 주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수천만 원의 비용이 드는 데다 코로나19로 외지인과 만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심해 직접 나서기로 했다.
그는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면서 틈틈이 시간을 내 발품을 팔며 어르신들을 찾아가 듣고 적고 녹음하는 등 혼신을 다했다. 그러다 탈진해 두 차례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6개월 만에 원고가 만들어졌고 전국 최초의 구술채록 시집이 탄생했다.
박 면장은 “가슴 속 깊이 맺힌 어르신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직접 담고 싶었다”며 “시집의 주인공은 바로 동상면 주민 모두”라고 말했다.
박성일 완주군수는 서평에서 “시를 읽는 동안 내내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 세대에 겪어야 했던 아픔들이 글에 송곳처럼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아 울먹였다”며 “이제 동상면은 시인의 마을이 됐고, 주민 모두가 살아온 삶이 시꽃으로 피어나 그 꽃향기가 오래도록 퍼져 나가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윤흥길 소설가(제10회 박경리문학상 수상)는 발문 서평에서 “깊은 산골 작은 고장 동상면에 왜배기 대짜 물건이 돌출했다”며 “친숙한 농경 언어와 토착 정서의 때때옷을 입혀놓은 시편 하나하나가 사뭇 감동적인 독후감을 안겨준다”고 평했다.
비매품인 이 책은 동상면의 ‘동상이몽(東上二夢) 시인의 마을공동체 육성 프로그램 교육과 홍보 자료’로 활용되는 등 ‘법정 문화도시 완주군’의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해 활용될 예정이다.
동상면은 또 시집에 그려진 다양한 이야기를 소재로 ‘고종시 마실길’에 ‘주민 시 감상길’을 만들고, 100세 어르신 등 다섯 가정에는 ‘시인의 집’ 이야기가 있는 시골테마 사업, 여산재를 중심으로 한 ‘시인의 마을 아카데미’ 사업 등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한편 ‘동상이몽’은 동상면의 두 가지 꿈을 말하는 데, 첫 번째 꿈은 동상 100년 역사 찾기이며 두 번째 꿈은 동상주민 예술가 만들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