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이번 주에는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품고 있는 고장인 운주면을 소개한다.
운주면에는 호남의 금강이라 불리는 대둔산과 인근에 자리한 이치전적지, 신라 선덕여왕 시대 때 창건된 안심사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또한 대둔산 아래 상가에서는 산채비빔밥과 인삼튀김 등 먹을거리도 많으니 그 어느 때 보다 입과 눈이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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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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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은 완주군 운주면과 충남 논산시, 금산군의 접경에 위치해 있다.
정상인 마천대는 해발 877.7m다. 금남정맥은 운장산 서봉을 일구고 장군봉을 지나 대둔산을 솟구쳐 놓는다. 물줄기는 장선천, 갑천, 논산천을 이루다가 금강으로 합수된다.
정상인 마천대를 비롯하여 사방으로 산줄기와 기암괴석, 수목이 펼쳐져 있어 천하의 명산,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고 있다.
이곳은 1977년 3월 23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83년 6월 10일 국민관광지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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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주군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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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사철 전국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드는 대둔산은 집단시설 시설지구에서 정상인 마천대로 오르는 코스가 인기가 높다. 임금님바위와 입석대를 연결하는 높이 80m 길이 50m의 금강구름다리가 일품이다.
또한 우뚝 솟은 봉우리마다 독특한 형상이 담긴 대둔산은 잘 다듬어진 조각품에 분재의 군락을 보는 것 같은 수석의 보고다.
아울러 올려보든 내려 보든 시선이 멈추는 곳은 모두가 아름답고 좌우로 보면 볼수록 신비하고 웅장해서 입을 벌린 채 산수화 병풍 속에 온 마음을 정좌하게 되는 곳이 대둔산이다.
흙보다는 돌멩이가 많은 산, 돌고 돌더라도 오르락내리락 하기보다는 가파른 비탈길이 심한 곳이다. 이래서 대둔산을 호남의 금강산이라고 격찬한다.
특히 대둔산 관광호텔 뒤편에 위치한 케이블카는 대둔산을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게 해준다.
아울러 정상인 마천대에서 북쪽으로 향하면 서해에 빠지는 태양을 볼 수 있는 낙조대와 태고사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기암괴석의 능선이 줄줄이 서있는 옥계동 계곡으로 이어진다.
그런가하면 남쪽의 석두 골계곡은 대둔산에서는 유일하게 가뭄을 모르는 지역으로 형제바위 등 명승경관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대둔산은 매 계절마다 각기 다른 옷을 갈아입는 산으로 유명해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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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전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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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전적지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 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은 대둔산 주차장에서 충남 금산 방향으로 조금만 더 향하면 완주군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에 전라도절제사 권율의 독전하 동복현감 황진장군 등이 왜적을 격파한 전적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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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주군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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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장 고바야가와 다카가게가 금산에서 웅치 방어선을 뚫고 호남의 수도 전주를 침공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황진 장군은 남원지에서 급히 전주로 와 안덕원까지 침입한 적을 물리치고, 바로 이치로 달려와 휘하의 장수 공시억, 위대기, 의병장 황박 등과 함께 적을 대파한 곳이다.
이때 적의 시체가 수십리에 즐비했지만 아군의 피해는 적었다고한다. 이 전투로 인해 왜적은 전주침공의 야욕을 버렸는데 이 대첩을 임진왜란 3대첩(梨峙 .閑山,幸州)의 첫째로 손꼽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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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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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사는 대둔산 끝자락의 품에 온화하게 안겨있는 사찰이다. 구 주소로는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26번지다.
이 사찰은 6.25전까지 현존했다고 하는데 당시 경내에 30여채의 건물과 주변에 12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공비들에 의해 모두 전소되었다. 안심사 비문에 의하면 이 사찰은 신라선덕여왕 7년(서기 638년) 창건되었다.
문화재로서는 사적비(지방유형 제110호), 안심사 계단 및 승탑군 (지방유형 제109호)이 있으며, 특히 안심사 사적비문을 보면 당시 번창했던 안심사에 대한 내용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안심사 계단
보물 제 1434호인 안심사 계단은 부처의 치아사리 1과와 의습 10벌을 봉안하기 위해 조선 중기(17세기 중반이후 1759년 이전)에 조성되었다.
석조계단은 앞면과 옆면에 긴 직사각형 돌을 놓아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비슷한 크기의 돌판을 한줄로 얹었으며 계단 면석에는 연화문과 격자 문양을 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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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의 중앙에는 석종형 부도가 있고 네 귀퉁이에는 장군모양의 신장상을 놓았다. 석조 조형물들은 그 조형 수법이 탁월하고 연화문과 격자문양의 조각수법은 장식성과 섬세함이 뛰어난 조형미를 표현하고 있다.
△안심사 사적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110호인 이 비는 조선 영조 35년(1759)에 세운 것으로,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비문은 효종 9년(1658)에 지은 것이다.
비석의 형태는 화강암으로 된 직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장방형의 비신을 세우고 비석 상단에는 조선 후기에 흔히 보이는 팔각지붕형의 이수를 갖추고 있다. 비신은 높이 215㎝,너비 104㎝,두께 38㎝이다.
△안심사 소장 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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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사 동종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5호다.
高山 大屯山 安心寺(고산 대둔산 안심사)’라는 명문이 명확하게 나타나 있는 이 동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종의 맨 위에는 용뉴와 음통이 명확하게 남아 있으며 특히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과 음통끝 장식은 조선시대 주조종 가운데 신라적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상대에는 범어가 새겨져 있으며 가운데 부분에는 보살상이 4구 부조되어 있으며 유곽도 4군데 완벽하게 남아 있다. 하대부분은 종의 주조 연대와 관련 시주자의 성명이 나타나고 있다.
△안심사부도군
부도군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 18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구조물은 석가모니의 치아 한 개와 사리 열 개를 모시기 위해 조선 영조 35년(1759)에 세웠다.
부도전은 앞면과 옆면에 긴 직사각형 돌을 놓아 축대를 쌓고, 그 위에 비슷한 크기의 돌판을 한 줄로 얹었다. 돌판에는 연꽃과 回(회)자 문양을 섬세하게 조각하였다.
부도전의 네 귀퉁이에는 장군모양의 돌조각을 놓았다. 부도전 중앙 뒤편에는 종모양의 부도가 있는데, 받침부와 지붕에 새긴 문양이 매우 섬세하다.
부도전을 짓기에 앞서 세조가 직접 글을 짓고 글씨를 써주었는데, 그 글씨를 보관하기 위해 별도의 건물을 함께 지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