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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剛)…민들레의 강인함은 불편한 환경을 극복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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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희태 민들레포럼대표 |
ⓒ 완주군민신문 |
민들레를 재배해보면 민들레가 얼마나 강인한 식물인지 알게 됩니다. 경우에 따라 옮겨심기도 하고, 밟고 다니게도 됩니다만 여간해서 죽지 않습니다.
온 들판을 꽃으로 하얗고 노랗게 물들이고, 씨가 되어 날아간 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민들레가 피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보도블록 틈새에서도 굳건히 싹을 틔우는 것이 민들레입니다.
인생은 마라톤 경주와도 같습니다. 골인 지점까지 달리고 달려야 합니다. 가다가 쉴 수도 있고, 물도 마실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잠시일 뿐. 다시 골인 지점을 향해 나아가야만 합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마라톤처럼 완전히 공정한 게임은 아니라는 점이겠지요.
누군가는 저만치 앞에서 느긋하게 출발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나보다 한참 뒤에서 출발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자갈밭을 달려가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잔디밭을 달리기도 합니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은 이처럼 공정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인생이 불공평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가능성은 열려 있으니까요. 그 가능성을 보고 달린 끝에 성공의 깃발을 들어 올린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혹시 공정한 게임이 아니라고 불만스럽다 해도 누군가를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누구를 탓하고만 있기에는 인생은 짧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포기하고 싶어 하는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그렇게 싸우고 싸워서 골인지점까지 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어려운 젊은 시절을 보냈고,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쉼 없이 노력하다보니 나를 제약하던 불리한 환경들이 하나씩 사라져갔습니다.
게임은 점점 공정한 것으로 바뀌어갔고, 마음껏 경쟁할 수 있는 때가 오더군요. 불편한 환경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실패를 변명하는 핑계거리가 되어선 안 됩니다.
실패의 책임은 나의 것이고, 실패의 결과 또한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오니까요. 환경을 극복하는 민들레의 강인함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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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禮)…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만들어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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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에는 줄기가 없습니다. 줄기처럼 보이는 것은 꽃대입니다. 뿌리에서 바로 잎이 나오고, 꽃이 필 때에만 꽃줄기가 올라오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러 개의 꽃대가 동시에 올라와 개화하는 법은 없습니다.
차례라도 정한 듯이 꽃대가 하나씩 올라와 개화합니다. 순서를 지키는 것이 마치 형이 결혼하기를 기다렸다가 동생이 결혼하는 우리네 법도와 닮았습니다. 장유유서(長幼有序)도 생각나게 하지요.
세상이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생활이 서구화되는 한편, 전통적인 가치는 점차 퇴색하고 있습니다. 가장 현저하게 몰락하고 있는 정신적 가치라면 아마도 예(禮)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라고 하면 전통 유교사회의 엄격한 형식과 절차를 떠올리게 됩니다만, 그런 것들은 실상 예의 외적인 형식일 뿐 전부는 아니겠지요. 예의 핵심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입니다.
요즘 보면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예(禮) 교육은 어릴 적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학교 교육을 통해서 강조되어야 몸에 배어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각박해진 삶 속에서 가정교육을 소홀히 한 탓인지, 내가 살고 봐야한다는 생각만 팽배해 있기 때문인지 아무래도 예는 뒷전인 것 같습니다. 가장의 권위가 몰락한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시대가 변한 만큼 가장이 누리던 가부장적 지위에 대해서는 재검토를 할지언정, 어른에 대한 공경, 타인에 대한 배려의 마음까지도 폐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원만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기본이니까요.
/유희태 = 민들레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