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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천년고찰 송광사 발길 닫는 곳 마다 역사의 숨결 느껴져(Ⅱ)

임태호 기자 입력 2012.09.28 14:00 수정 2012.09.28 02:00

국가보물과 금강문·명부전 소조지장보살삼존상 등 유형문화재 넘쳐나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역사의 발자취 찾아보자

지난주에 이어 소양면 대흥리에 위치한 천년고찰 송광사를 소개한다. 송광사에는 국가보물 외에 다수의 도지정유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청량한 계절을 자랑하는 가을에 일상의 피로를 씻는 여행을 떠나 보자.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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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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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문은 조선 제 17대 효종 7년(1656)에 벽암대사가 송광사를 중창할 때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17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로 지붕은 단처마로 외3출목, 내4출목이다.
ⓒ 완주군민신문

연등천정이고 원주형 창방, 방형의 평방을 결구하였고 쇠서는 앙서형이다.

대들보는 2량이고 각 대들보는 융기한 자연목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각 공포의 벽화는 보상화문으로 장식됐다. 지붕처마 끝은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막새들을 사용했다.

금강문은 높이 293㎝, 주심간 375㎝,정면 930㎝,측면 565㎝,이단기단정면 1067㎝, 이단기단 측면 67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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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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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172호로 지정된 나한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 건물이다. 각 지주의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하였으며 팔작지붕이고, 우물천장이다.
ⓒ 완주군민신문

내부에는 목조의 석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고 좌·우로 16나한과 오백나한, 인왕상 2구, 동자상 2구, 사자상 2구가 있다.

이 나한전 건물은 조선 제 17대 효종 7년(1656)에 벽암각성대사가 송광사를 중창할 때 건립한 것으로 1934년 해광스님이 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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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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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종은 도 유형문화재 제 138호로 지정됐는데 종루 안에 보존되어 있고, 조선 숙종 42년(1716)에 만들어진 것으로 높이 107㎝ 이다.
ⓒ 완주군민신문

종의 윗부분에는 60개의 꽃무늬가 조각되었으며, 이 꽃무늬 아래에 다시 방패모양의 꽃무늬를 양각하였다. 종의 아래 부분에는 세면에 길이 24㎝ 크기의 보살입상을 조각하였고 가장 아랫부분에 6㎝ 정도의 실상화 당초무늬를 둘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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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 소조지장보살삼존상 및 권속상 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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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 소조지장보살삼존상 및 권속상 일괄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168호다.

높이 1.6m의 거대한 지장보살상은 명부전의 주존불로 봉안하고 있는데 좌측에 보세존자를 모셨으며 그 좌·우 십왕상과 그 권속들이 배치되어 있다. 지장보살상은 목조의 연화좌 위에 안치하였는데 상·하 단엽의 앙·복엽이 조각되어 있다.

머리는 나발이며, 이마에 작은 백호가 있다. 원만한 상호에 오른쪽 손은 가슴 높이로 들어 엄지와 중지를 잡고 반의장 하였으며 왼손은 무릎 위에 놓고 엄지와 중지를 상장했다.

이 지장보살에서 복장유물로 원통형 사리함이 발견되었는데 오색사리6(녹색1, 흑색1, 백색2, 황색1, 진황색1)과 함께 묵기가 발견되어 이 불상의 조성연대가 조선 인조 18년(1640)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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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삼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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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유형문화재 제 170호인 목조삼패전은 대웅전 불단 위에 삼존불을 모셔놓고 그 사이 양쪽에 각기 1위씩 배치된 목패를 말한다.

이중「주상전하수만세」라 기한 목패는 높이 2.28m이며, 다른 2위는 「왕비전하수제년」이라 기한되어 있고, 나머지는「세자저하수천추」라 기한된 목패로 높이는 2.08m 이다.

「주상전하수만세(主上殿下壽萬歲)」목패 뒷면에 묵기가 있어 목패가 인조 때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고, 다른 2위의 목패 뒷면에 있는 묵기를 통해 조선정조 16년(1972)에 3위의 목패를 수리했음을 알 수 있다.

목패는 여러 장의 목판을 결구해 안상형의 주연을 이루어 조성했는데 운용을 투각한 것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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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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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4호로 조선 인조 14년(1636)에 송광사 개창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높이 2.4m, 폭 94㎝다. 비문은 신익성이 짓고 글씨는 의창군 이광이 썼으며 이비는 귀부와 이수가 갖추어졌다.

앞면에는 비명과 고려의 보조국사가 전주의 종남산을 지나다가 절터를 잡아 놓고 제자들에게 절을 지을 것을 당부하셨다는 내용과 보조국사로부터 벽암대사에 이른 계보가 기록되어 있다.

뒷면에는 종남산인 명공의 말을 인용하여 절을 짓게 된 경위 및 벽암의 제자와 시주한 사람 그리고 개창 당시 기술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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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나한전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권속상 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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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169호인 오백나한전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권속상 일괄은 나한전의 중앙본존으로 목조석가여래좌상을 봉안했는데 연화대좌 위에 안치하고 있다.
ⓒ 완주군민신문

나발의 머리 위에 넓은 육계가 있고 이마에 작은 백호가 표현되었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으며, 무릎이 넓어 안정감이 있고 당당한 가슴과 어깨, 정제된 동체, 원만한 상호 등이 조선후기 불상이다.

이 불상에서는 불상 조성의 「원문」 이 발견되어 조선 효종 7년(1656)에 불상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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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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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 송광사로 들어가는 첫 관문인 일주문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4호다.

이 건축물은 조선중엽에 세워졌는데 원래 송광사 일주문은 이곳으로부터 남쪽으로 3㎞ 떨어진 <나드리>라는 곳에 있었으나, 절의 영역이 축소됨에 따라 점차 안쪽으로 옮기다가 1944년 해광스님이 지금의 위치에 세웠다고 한다.
ⓒ 완주군민신문

문의 좌우 측면에는 위아래 굵기의 변화가 없는 중심기둥을 세웠는데, 그 앞뒤에 연꽃을 조각한 보조기둥을 세운 것이 특징이다.

용머리 등으로 장식한 처마가 화려하며, 건물이 전체적인 균형을 이루어 단아한 멋을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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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당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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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당부도는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44호다. 이 부도탑은 병자호란(1636)때 최고의 승병대장이었던 벽암 각성 큰스님을 추모하여 세운 것이다.
ⓒ 완주군민신문

화강암 자연석을 다듬어 1660년에 만들었다. 벽암스님은 당대 최고의 승려로서 나라의 절대적 신임과 수행과 학식을 갖추었다. 나라에서는 그를 대공덕화주로 삼아 50일간 화엄법회를 열고 송광사를 다시 세웠다. 그 후 벽암스님은 본 사찰의 주지를 역임하고, 1660년 이곳에서 열반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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