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특집/기획

천년고찰 송광사 발길 닫는 곳 마다 역사의 숨결 느껴져(Ⅰ)

임태호 기자 입력 2012.09.21 13:47 수정 2012.09.21 01:47

대웅전, 소조 사천왕상, 소조삼불상 및 복장유물 등 보물창고
가벼운 차림으로 가족과 함께 송광사로 보물찾기 여행 떠나자

소양면 대흥리에 위치한 천년고찰 송광사는 말 그대로 보물창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광사는 통일신라 경문왕 7년(867)에 도의가 처음으로 세운 절이다.

그 뒤 폐허가 되어가던 것을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가 제자를 시켜서 그 자리에 절을 지으려고 했지만, 오랫동안 짓지 못하다가 광해군 14년(1622) 응호·승명·운정·덕림·득순·홍신 등이 지었다고 한다.

이후로도 인조 14년(1636)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절의 확장공사가 있었고 큰 절로 번창했고 현재도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고찰로 그 이름을 높이고 있다.

완주군민신문에서는 2회에 걸쳐 송광사를 소개한다.<편집자 주>


===============
■송광사 대웅전
===============
송광사의 중심에 위치한 대웅전은 보물 제 1243호다.

대웅전은 절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기록에 따르면 조선 인조 14년(1636)에 벽암국사가 다시 짓고, 철종 8년(1857)에 제봉선사가 한 번의 공사를 더하여 완성하였다고 한다.
↑↑ 송광사 대웅전
ⓒ 완주군민신문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전내에는 석가여래삼존불이 안치되어 있으며 대웅전 벽면에는 1857년 중건 당시 그렸던 ‘벽지불탱화’와 ‘십오불탱화’가 남아 있다. 가운데 칸이 비교적 좁고 문 위 벽면에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이 다른 대웅전 건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특징이다.


====================
■송광사 소조 사천왕상
====================
보물 제 1255호인 소조 사천왕상은 절의 초입에 자리하고 있다.

사천왕은 갑옷을 입고 위엄이 충만한 무인상을 하고, 동·서·남·북의 사천국(四天國)을 다스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초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사찰입구에 사천왕문을 세워 모시고 있다.

대웅전을 향하여 오른쪽에는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과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이, 왼쪽에는 남방 증장천왕(增長天王)과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이 위치하고 있다.
↑↑ 송광사 소조 사천왕상
ⓒ 완주군민신문

서방 광목천왕상 왼쪽 머리끝 뒷면에는 조선 인조 27년(1649)에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는 글이 있으며, 왼손에 얹어 놓은 보탑 밑면에는 정조 10년(1786)에 새로이 보탑을 만들어 안치하였음을 알려 주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이 사천왕상은 제작연대가 확실하고 병자호란 이후 국난극복의 강한 의지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천왕상이 지녀야 할 분노상, 용맹상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어 돋보이는 작품이다.


=====================
■소조삼불상 및 복장유물
=====================
소조삼불상 및 복장유물은 보물 제 1274호 지정되어 있는데 신라 경문왕 7년(862) 도의선사가 창건한 송광사에 모셔져 있는 이 삼불좌상은 본존불인 석가불을 중앙에 안치하고, 오른쪽에는 아미타불, 왼쪽에 약사불을 배치하고 있다. 무량사 소조아미타불상(5.4m)과 함께 가장 거대한 소조불상(5m)으로, 신체 각 부분이 비교적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장중하고 원만한 얼굴과 두껍게 처리한 옷은 당당한 불상양식에 걸맞는 표현기법을 보여준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 표현은 강한 인상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 양식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대적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본존불에서는 삼불의 조성기와『묘법연화경』을 비롯한 불경류, 후령통(喉鈴筒)등 다수의 복장품이 발견되었다.『조성기』에 의하면 숭정 14년(인조 5년, 1641) 6월 29일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조속한 환국을 기원하면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명나라와 청나라의 연호를 함께 사용하고 있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당시의 극심한 혼란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난극복의 의지와 역사의식의 반영과 함께 당시의 문화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불상은 만든 연대가 확실하고 역사의식이 반영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로, 불상과 함께 복장유물 12종 중 불상조성기 3점과 후령통 3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
■송광사 종루
=============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종루는 보물 제 1244호로 지정됐다. 이 건물은 조선 세조때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철종 8년(1857)에 다시 세웠다.

건물 평면이 십자모양인데, 일반적으로 십자형 건물은 흔치 않으며 더욱이 종루로서는 이것이 국내에서 유일하다.
↑↑ 송광사 종루
ⓒ 완주군민신문

종루에는 북과 범종, 목어, 운판이 있는데 아침과 저녁 예불 의식전에 울려 땅위의 네발짐승과 땅속의 고통 받는 중생, 물속의 생명, 창공의 날짐승들에게 각각의 울림을 듣고서 몸과 마음의 번뇌를 여의고 영원한 해탈의 마음을 내어 모든 중생들의 자유와 한없는 평화와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발원한다.


저작권자 완주전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