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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완주의 명산> ② 26·27번 국도 따라

임태호 기자 입력 2012.08.01 11:45 수정 2012.08.23 11:45

발길 닫는 곳마다 아름다운 한 폭의 동양화 펼쳐져

눈이 시리도록 빼어난 경관·시원한 계곡 등은 서비스
만덕산·연석산·운장산·원등산·위봉산·경각산·모악산 등

완주군은 산과 들 그리고 첨단산업단지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도시다. 그중에 산들은 군 내 전체면적의 70%정도가 해발 200m 이상의 산지로 이뤄져 있다.

산이 많은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그 이름을 전국에 알리는 산들도 있다. 이들 산속에는 타 시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깨끗한 계곡이 자리하고 있어 휴가철이면 산과 계곡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국도 26호선과 27호선에 위치한 명산들도 그 위엄을 알리고 있다. <편집자 주>



■ 만덕산

만덕산은 말 그대로 구름위에 솟은 바위산을 말하는 것으로 소양면 화심에서 진안으로 가는 구도로의 중간지점 우측에 우뚝 솟아 있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맞이하여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역사적 전적지요, 6.25동란때 공비의 출몰이 심했던 곳으로 곰티재를 지키고 있는 수문장과 같은 산이다.

만덕산의 유래는 한자로 일만만(萬), 큰덕(德)을 써서, 만인에게 덕을 베푸는 산이란 뜻이다. 지역주민들에 의하면, 임진왜란과 6.25를 비롯한 수많은 전란을 겪으면서도 지역주민들이 전화를 입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만덕산이 덕을 베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세가 수려하고 특히 동쪽 산기슭의 암벽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미륵사와 그 아래의 높 50m의 암벽을 타고 비류직하하는 만덕폭포의 장관은 주변의 시원한 계곡물과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여름철의 피서지로서 겨울철은 산악인들의 암벽등반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 연석산

연석산은 동상면 소재지를 미처 못가는, 전주에서 26㎞ 지점에 있는 사봉리 연동부락 동쪽에 우뚝 솟아있는 산이다.

이 산은 공해도 없고,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이 항상 흐르고 있는 아름다운 계곡을 갖고 있다. 연석산 입구에 연석사라 부르고 있는 사찰이 있는데 낡은 건물을 헐고 ‘93년에 새로 대웅전을 웅장하게 지었다.
↑↑ 연석산
ⓒ 완주군민신문

연석사를 지나 정상을 향하여500m쯤 가면 산신령에게 소원성취를 기원하기 위하여 촛불을 켜놓고 아낙네들이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숲으로 우거진 등산로를 타고 10여 분 정도 오르면 각시소가 나온다. 각시소를 지나 숲과 숲으로 덮여있는 낭떠러지에서 일대 장관을 이루고 있는 폭포는 우리의 마음을 한결 시원스럽게하여 피로를 씻어준다. 폭포 바로 위에는 여인이 베를 짜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베틀바위가 나온다.

전설에 의하면 각시가 베틀바위에서 베를 짜면서 피로와 외로움을 잊기 위하여 폭포 아래에 있는 소(沼)에서 목욕을 하였다 하여 각시소(沼)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 운장산

운장산은 해발 1,126m의 비교적 높은 산임에도 교통이 편리하고, 등산코스도 부담스럽지 않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이 잘 보존돼있다. 이곳은 토종꿀, 토종닭, 흑염소도 유명하다.
↑↑ 운장산
ⓒ 완주군민신문




■ 원등산

원등산은 소양면에 자리한 해발 715m의 산이다. 다리목 부락에서 숲속의 등산로를 타고 오르면 자연의 신비에 도취되어 30여분만에 원등산 북쪽 능선에 도착한다.
↑↑ 원등산
ⓒ 완주군민신문

정상에 오르면 송광사 뒤편 종남산(635m) 및 동북 위봉산(524m)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산에는 원등사라는 사찰이 있는데 이 절은 신라 문선왕 2년(1200년) 보조성사가 창건한 고찰로 진묵대사가 오백나한을 위해 창건했으나 임란때 전소된 후 이후 재건했는데 다시 6·25때 전소됐다.

진묵대사가 나한전에서 기도를 하면 나한의 신통력으로 그 뜻이 성취됐다는 전설이 남아있는 원등사 나한의 신통력이 먼 곳까지 빛이 되었다 해서 원등사라 했으며 이 산을 원등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위봉산

60여 미터의 폭포를 자랑하는 위봉산은 일명 추줄산으로도 불리우며, 행정구역상 소양면 대흥리와 동상면 수만리에 경계하고 있다. 송광사에서 더 깊이 골짜기를 타고 4㎞쯤 위봉산 고개길을 오르면 위봉산성 서문이 나온다. 이 위봉산성 서문을 지나 300m쯤 내려가면 위봉사가 나온다.

위봉산성은 이태조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축성했던 성이다. 성의 규모는 길이 16㎞, 높이 4~5m, 폭 3m의 홍예석문이 지방기념물로 보존되고 있다.

이 산성은 1675년 (숙종 원년) 7년의 세월과 인근 7개 군민을 동원하여 쌓은 것을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전주 경기전의 영정과 왕조실록을 묘향산까지 피난시켰고, 무주 적상산성에 설치한 사고도 어려움이 많아 전주에서 가까운 험한 지형을 골라 새로 성을 쌓아서 이태조 영정을 피난시키는데 목적이 있었다. 사찰 앞에서 백여미터 아래에 있는 위봉폭포가 장관이다.



■ 종남산

종남산은 송광사 뒷산이다. 종남산은 송광사를 세운 도의선사가 절터를 구하기 위하여 남으로 내려오다가 이곳에 이르러 땅속에서 깨끗하고 풍부한 영천수가 솟아오른 것을 발견하고는 이곳에 큰절을 세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남쪽으로 내려가는 일을 포기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송광사 뒤편으로 기암괴석과 울창한 잡목숲을 헤치고 오르면 해발 617m의 종남산 정상에 다 다른다. 정상에서 북쪽 능선을 따라 오르고 돌다보면 서방산 정상에 이른다. 종남산 남서쪽 산중턱에 신원사라는 조그만 사찰이 있고, 뒤편 벽면에 90년 10월에 세운 ‘수양산 약사여래삼존불’이 있다.



■ 경각산

경각이란 고래등에 솟아난 뿔을 말한다. 구이면으로 들어서면 구이저수지 동북쪽으로 솟아 있는 산이 경각산이다. 모악산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모악산에 가려 그리 찾는 사람이 적지만 호젓한 산행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 경각산
ⓒ 완주군민신문

경각산의 유래는 한자로 고래 경(鯨), 뿔각(角)을 써서 고래등에 난 뿔처럼 생긴 산이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산 아래의 광곡마을에서 바라보면 모악산 방향으로 머리를 향한 고래의 모습이며, 정상에 있는 두 개의 바위가 마치 고래의 등에 솟아난 뿔의 형상이다.

산행은 계속해서 부드럽고 편안한 능선을 30분 정도 따르는데 추운 겨울에도 빛을 잃지 않는 효관재의 전나무 조림지가 그 동안 산행의 피로를 씻기에 충분한 삼림욕을 제공한다. 동쪽으로 쑥재로 향하는 길은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쑥재부터 임도를 따라 30여분 걸으면 유황성분으로 유명한 죽림·송산온천이 나타난다.



■ 모악산

금만경평야의 젖줄을 담당하는 모악산은 일설에 따르면 모악산의 원래 이름은 금산이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금산(金山)이란 ‘큰산’을 한자음으로 표기했다는 설과 금산사 입구 금평호에서 사금이 나오기 때문에’금(金)’자가 들어갔다는 설로 갈리기도 한다. 또 모악산은 그 정상에 마치 어미가 어린애를 안고 있는 형태로 보이는 바위가 있어 이로부터 생겨난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 모악산
ⓒ 완주군민신문

‘금산사지’에 의하면 모악산은 우리나라 고어로 ‘엄뫼’라는 말이지만 ‘큰 뫼’라는 말은 모두 아주 높은 태산을 의미한 것으로 한자가 들어오면서 ‘엄뫼’는 어머니의 뫼라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의역해서 모악(母岳)이라 했고 ‘큰 뫼’는 큼을 음역하고 뫼는 의역해서 금산(金山)이라고 칭하였다고 적고 있다.

모악산은 한국의 곡창으로 불리는 김제와 만경평야를 그 발 아래 두고 있다. 특히 삼국시대 이전부터 관개시설의 대명사로 꼽혀 온 벽골제의 물이 그 물의 근원을 모악산에 두고 있었다. ‘어머니’산은 양육(養育)을 뜻한다. 그 품안에서 새 생명을 키워낸다.

동쪽으로 구이저수지, 서쪽로 금평저수지, 남쪽으로 안덕저수지, 북쪽으로 또 불선제, 중인제, 갈마제를 채우고 호남평야를 온통 적셔주는 젖꼭지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산이다. 정상에 올라 멀리 바라보면 동으로 전주가 발아래 있고, 남으로는 내장산, 서쪽으로는 변산반도가 멀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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